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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토끼 잡고 누누TV 셔터 내렸지만…그들 족친 베테랑 한숨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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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이끼' 등 작품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가 불법 웹툰 플랫폼 '밤토끼'를 검거한 부산경찰청에 2018년 10월 방문해 전달한 감사장. 사진 부산경찰청

'미생' '이끼' 등 작품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가 불법 웹툰 플랫폼 '밤토끼'를 검거한 부산경찰청에 2018년 10월 방문해 전달한 감사장. 사진 부산경찰청

“방송국과 저작권 계약한 미국 내 합법 방송입니다.”
미국 LA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이 같은 광고를 내걸고 불법 콘텐트 송출 사업을 해온 일당 7명이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201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해외 교민을 대상으로 국내 TV 프로그램 영상을 실시간 송출한 혐의(저작권법 위반)다. 한 달에 최고 29.99달러를 받은 뒤 ‘셋톱박스’로 위장한 중계기를 회원 집에 설치해 국내ㆍ외에서 방영 중인 TV 화면을 곧장 송출하는 신종 수법이었다. 누적 가입자는 2만5000명으로, 6년간  프로그램 25만4000여편(52개 채널)을 송출한 일당은 300억원대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콘텐트 범죄 척결’ 베테랑, 6년간 36명 붙잡았다

'바로TV'라는 이름으로 운영된 이 불법 IPTV 일당을 검거한 건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다. 바로TV로 인해 피해를 보던 JTBC와 MBC, 미국 웨이브아메리카스 측 관계자는 지난 2일 부산경찰청을 방문해 “콘텐트 시장 유통질서를 확립해줬다”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지난 2일 JTBC와 MBC, 미국 웨이브아메리카스 등 방송사 관계자들이 부산경찰청을 방문해 우철문(가운데) 청장과 이재홍(왼쪽에서 네번째) 사이버수사대장에게 바로TV 검거 관련 감사패를 전달했다. 사진 부산경찰청

지난 2일 JTBC와 MBC, 미국 웨이브아메리카스 등 방송사 관계자들이 부산경찰청을 방문해 우철문(가운데) 청장과 이재홍(왼쪽에서 네번째) 사이버수사대장에게 바로TV 검거 관련 감사패를 전달했다. 사진 부산경찰청

부산경찰청은 2018년부터 이 같은 콘텐트 저작권 침해 사건 8건을 수사해 사이트 12곳 ‘셔터’를 내리고 36명(부당이득 352억원)을 검거했다. 2020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 기술 어워드’ 기술 표창을 받는 등 기관과 방송사·작가협회로부터 6차례 감사패 등을 받았다.

3500만 몰린 ‘밤토끼’ 검거 땐 협조체계 기틀  

부산경찰청이 이 같은 콘텐트 저작권 범죄 수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건 2018년 5월 국내 최대 불법 웹툰 플랫폼으로 꼽히던 ‘밤토끼’ 운영자들을 검거하면서다. 총책 A씨 등 5명은 2016년 10월부터 밤토끼에서 웹툰 9만여편을 불법 유포했다. 불법 도박 등 배너광고로 도배된 이 사이트에 한 달에 3500만명이 접속하면서 일당은 9억5000만원 상당 부당이득을 챙겼다. 부산경찰이 내사에 착수하자 웹툰을 유통하는 네이버ㆍ다음 등 주요 포털이 고소장을 냈다.

김명현 웹툰 작가가 '밤토끼'를 검거한 부산경찰청에 전달한 감사장. 사진 부산경찰청

김명현 웹툰 작가가 '밤토끼'를 검거한 부산경찰청에 전달한 감사장. 사진 부산경찰청

콘텐트 저작권 범죄 수사 과정에서는 일일이 화면 캡처나 녹화 등 증거를 통해 실제 저작권 침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피해 규모가 클수록 채증을 위한 이른바 ‘노가다’ 시간도 늘 수밖에 없다. 웹툰 9만여편의 저작권이 침해된 밤토끼 사건 수사를 계기로 부산경찰청은 포털ㆍ작가들과 채증·정보 공유 등 협조 체계 틀을 잡았다. 이후로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면 제보 ·신고는 부산경찰청으로 접수됐다. ‘해외에 설립된 무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라고 소개하며 이용자가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 ‘누누TV’도 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가 부산경찰청에 고소장을 냈다. 수사가 본격화되자 누누TV는 서비스를 접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저작권 사범 수사 18년 베테랑 “처벌 현실화” 호소

이들 사건 수사를 지휘한 건 이재홍(49ㆍ경찰대 12기)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경정)이다. 1996년 경찰 생활을 시작한 이 대장은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원년멤버다. 그는 18년간 저작권 범죄 수사에 매진해온 베테랑으로 평가받는다. 2017년부터 사이버수사대장을 맡으며 밤토끼 등 사건 수사를 이끌었다. 이 대장은 “부산은 2000년대 초반 일본발 포르노 비디오 등이 국내로 유입될 때 통로 역할을 했다. 이후 CD·USB를 거쳐 토렌트 등으로 변화하는 유통경로를 따라 수사 역량을 다져왔다”고 말했다.

이재홍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 김민주 기자

이재홍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 김민주 기자

이 대장은 콘텐트 산업 발전에 따라 ‘어둠의 경로’에서 이들 콘텐트를 악용하는 저작권 범죄도 절정을 맞았다고 본다. 그는 “개인이 비디오를 유통하던 수준이던 저작권 범죄는 20여년 사이 해외에 서버를 둔 조직이 경찰 수사를 따돌릴 정도로 진화했다. 콘텐트를 미끼로 불법 도박ㆍ성인광고 등을 통해 억대 수익을 올리며 ‘2차 범죄’를 유도하는 등 죄질도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저작권 사범 처벌(최고 징역 5년ㆍ벌금 5000만원)도 현실화돼야 한다고 이 대장은 강조했다. 그는 “대형 저작권 범죄는 콘텐트 제작자에게 끼치는 피해가 크고, 내사부터 수사 종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이 들지만, 처벌은 가볍다. 밤토끼 사건은 5명 중 주범 1명만 실형 2년6월을 받았다"며 “콘텐트 산업이 커질수록 이를 악용하는 저작권 범죄도 진화한다. 이런 변화상을 반영해 저작권 사범 처벌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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