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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주의해주길” 머리 타박상 입었던 한 포수의 읍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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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박세혁. 고봉준 기자

NC 박세혁. 고봉준 기자

포수는 야구에서 ‘극한직업’으로 불린다. 경기의 절반은 무거운 장비를 찬 채 홈플레이트 뒤에서 쪼그려 앉아있어야 한다. 또, 수비 내내 벤치로부터 사인을 전달받고, 이를 투수와 긴밀하게 나눠야 한다.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모두 뒤따르는 직업이 바로 포수다.

예측 불가능한 공포와도 싸운다. 타자의 방망이다. 스윙이 큰 타자의 경우 자칫 배트가 포수의 머리까지 향할 수 있다.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대목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타자의 배트에 맞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포수가 많아지고 있다. NC 다이노스 박세혁(33)도 그런 경우다. 박세혁은 지난달 14일 인천 SSG 랜더스전에서 상대타자 기예르모 에레디아의 배트에 부상을 당했다. 풀스윙한 방망이가 뒤통수를 때렸고, 박세혁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한동안 고통을 호소했다.

왼쪽 머리 3㎝가량을 꿰맨 박세혁은 결국 다음날 1군에서 제외됐다. 이어 2군에서 열흘간 몸과 마음을 치유했고, 지난달 25일 1군으로 복귀했다. 어렵게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의 짐은 쉽게 덜어내지 못했다. 최근 6경기 내리 안타 없이 침묵했다. 그러나 9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5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으로 맹활약하며 16-4 대승을 거뒀다.

박세혁은 “2년 전에도 안와골절 부상을 당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머리 부위를 다쳤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께서 걱정해주셔서 빨리 나을 수 있었다. 신경이 아예 안 쓰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고 현재 몸 상태를 먼저 말했다.

담담하게 경기 소감을 말하던 박세혁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이 자리를 빌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포수의 고충 그리고 타자의 동업자 정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박세혁은 “포수는 굉장히 힘든 직업이다. 주전과 백업 모두 정말 고생이 많다. 물론 그만큼 대우를 받기도 하겠지만, 쉬운 포지션은 아니다”면서 “타자들이 안일하게 생각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수가 스윙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리를 지켜야 한다. 타자들이 조금은 주의를 해줬으면 좋겠다. (과거 큰 스윙으로 문제가 됐던) 박동원 선수처럼 타석을 앞으로 조금 옮겨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심 어린 읍소였다. 야구가 시작되면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불필요한 부상만큼은 만들지 않도록 하자는 외침처럼 들렸다. 박세혁은 “타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동업자 정신을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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