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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34) 십면매복에 괴멸한 원소군, 또 쫓기는 신세가 된 유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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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는 패잔병을 이끌고 여양(黎陽)으로 달아났습니다. 조조는 군마를 정돈해 추격했습니다. 원소는 기주로 돌아와 흩어진 군사를 모으고 다시 군사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군중(軍衆)에서 들려오는 말이 심상찮았습니다.

만일 전풍의 말을 들었다면 우리가 어찌 이런 화를 당했겠는가?

이 말을 들은 원소는 후회막급했습니다. 전풍을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원소의 말을 들은 봉기가 기회를 타고 전풍을 모함했습니다.

전풍은 주공께서 싸움에 지셨다는 말을 듣자 옥중에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과연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무녀리 같은 선비 놈이 어찌 감히 나를 비웃는 것이냐! 내 기필코 죽여 버리겠다.

원소는 사자에게 보검을 주며 먼저 가서 전풍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전풍은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고는 세상에 태어나 섬길만한 주인을 찾지 못한 지혜를 한탄하며 스스로 자결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전풍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옥중에서 자결하는 전풍. [출처=예슝(葉雄) 화백]

옥중에서 자결하는 전풍. [출처=예슝(葉雄) 화백]

어제 아침엔 저수가 군중에서 죽더니 昨朝沮授軍中死
오늘은 전풍이 옥 안에서 죽는다네 今日田豊獄內亡
하북의 기둥감이 모두 절단 나노니 河北棟梁皆折斷
원소가 어찌 패망하지 않으리오 本初焉不喪家邦

원소가 기주로 돌아오자 아내 유씨는 빨리 후사(後嗣)를 세울 것을 요청했습니다. 원소에게는 장남 원담, 차남 원희, 막내 원상이 있었는데, 막내는 유씨가 낳은 자식이었습니다. 원소가 참모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심배와 봉기는 원상을 보좌했고, 신평과 곽도는 원담을 보좌했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조조와 결전을 치른 후에 정하기로 했습니다.

원소는 아들들과 사위가 이끌고 온 군사를 모아 30만 명의 대군을 편성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조조와 맞섰습니다. 조조는 정욱의 십면매복(十面埋伏) 계책에 따라 황하 연안에 열 개의 부대를 매복시켰습니다. 그리고 조조가 직접 나서서 원소군을 유인했습니다. 원소는 또다시 대패하고 피를 토하며 탄식했습니다.

조조에게 참패한 후, 세 아들을 안고 통곡하는 원소.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에게 참패한 후, 세 아들을 안고 통곡하는 원소. [출처=예슝(葉雄) 화백]

나는 여태껏 수십 곳에서 전쟁을 치렀지만, 오늘 이렇게까지 낭패를 당할 줄은 몰랐구나! 이것은 하늘이 나를 망치려는 것이다. 너희들은 각각 맡은 고을로 돌아가서 맹세코 조가 놈과 한번 자웅을 겨루어 달라.

조조는 군사들에게 상을 줘 사기를 진작시키는 한편, 기주의 동태를 살피도록 했습니다. 원소는 병중이고 원상과 심배가 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러 장수가 서둘러 공격할 것을 건의하자 조조는,

지금은 농작물이 들판에 있으니 백성들의 생업을 그르치지 않을까 걱정이오. 잠시 기다렸다가 추수가 끝난 뒤에 빼앗아도 늦지 않을 것이오.

나관중본에는 이 문장 뒤에도 몇 문장이 더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부하들이 주장했다. 

백성을 아끼다가는 반드시 큰일을 그르칩니다.

조조가 타일렀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안정되는 것이오. 만약 그 백성들을 버리면 빈 성을 얻은 들 무슨 쓸모가 있겠소?

유비의 전매 특허나 다름없는 말이 조조의 입에서도 나왔습니다. ‘조조악인론’의 연의를 만든 모종강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차 없이 삭제해버렸습니다.

조조가 기주공략을 미루자고 할 때 순욱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여남에 있는 유비가 허도로 쳐들어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여남으로 향했습니다. 가던 도중, 허도를 기습하러 오던 유비와 마주쳤습니다.

나는 너를 상빈(上賓)으로 대접했는데 너는 어째서 의리를 배반하고 은혜를 저버렸느냐!

너는 한나라 승상을 사칭하고 있지만 실은 나라를 훔치려는 역적이다. 나는 한황실의 종친으로 천자의 밀조(密詔)를 받들고 역적을 토벌하러 왔다!

첫 싸움은 유비가 승리했습니다. 유비는 조운을 내세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싸움을 걸었지만 조조군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종강본에는 이렇게 내용이 전개됩니다. 하지만 나관중본에는 첫 싸움에서 승리한 후의 유비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유비가 기분이 좋아 사람을 보내 알아봤더니 조조의 군사는 50~60리를 물러갔다고 했다. 유비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번에 조조의 날카로운 기세를 꺾을 줄은 몰랐소.

관우가 말했다.

얕봐서는 안 됩니다. 조조는 간사한 계책이 지극히 많아 반드시 무슨 계교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이번에 물러갔으니 그가 싸움을 겁내는 것일세.

조조군은 열흘이 되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비는 불안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군량을 가져오다가 포위되고 여남성은 이미 하후돈에게 빼앗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비는 조조군이 앞에 있는 줄 알았는데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것이었습니다. 유비는 갈 곳이 없이 쫓기는 신세가 됐습니다. 유비는 한숨을 쉬며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재상이 될 만한 인재들인데 불행하게도 유비를 따르고 있구나! 나의 명운이 군색(窘塞)해 그대들까지 고생하는 것이다. 오늘날 나에게는 송곳을 꽂을만한 땅도 없으니 진실로 그대들이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대들은 어째서 나를 버리고 현명한 주인을 찾아가 공명을 이루려 하지 않느냐?

모종강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유비의 본심을 밝혔습니다.

‘유비가 여러 장수를 애석하게 여기면서 보내 주려 한 것은 바로 여러 사람을 잡아두기 위함이었다. 보내주겠다고 하면 더욱 남아 있으려고 하고 작별하겠다고 하면 더욱 놓아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니 상심하실 것 없습니다. 여기서 형주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유표는 아홉 고을을 지키고 있어 군사도 강력하고 군량도 풍족합니다. 게다가 그와 공은 모두 한황실의 종친입니다. 어찌 그리로 가서 의탁하지 않습니까?

유비를 위로한 손건은 즉시 형주로 가서 유표를 만나 설득했습니다. 유표는 크게 반겼습니다. 하지만 그의 참모인 채모가 반대했습니다.

유비는 처음에 여포를 따르다가 조조를 섬겼고, 근자에는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었으나 모두 끝까지 섬기지 않았으니 그의 사람됨을 족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그를 받아들이면 조조는 반드시 우리에게로 군사를 돌려 쓸데없이 전쟁을 해야 될 터이니 손건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바치는 것이 낫습니다.

유비의 손발인 손건.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의 손발인 손건.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표는 손건의 부연설명을 듣고 유비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조조가 이 소식을 알고 곧장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정욱이 아직 원소를 제거하지 못했으니 군사의 힘을 기르며 봄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말렸습니다. 원소를 쳐부수고 유표를 공격하는 전략입니다. 조조는 정욱의 말대로 힘을 기른 후, 봄이 되자 관도로 진격했습니다.

원소는 지난번 얻은 병이 아직 다 낫지 않았습니다. 원상에게 대항하라고 하는 한편 청주의 원담, 유주의 원희, 병주의 고간을 불렀습니다. 이제 제2의 관도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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