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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들의 작당모의 코미디…“우스개는 비분강개보다 강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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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남성혐오 논란을 다룬 단편 ‘진정성 실천편’.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남성혐오 논란을 다룬 단편 ‘진정성 실천편’.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로 한국판 정치 시트콤의 가능성을 보여준 윤성호(47) 감독이 순제작비 6000만원의 초저예산 옴니버스 영화로 돌아왔다. 17일 개봉하는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이하 말바말)’는 올해 49주년을 맞은 서울독립영화제가 기획·제작·배급하는 작품이다. 독립영화 ‘은하해방전선’(2007)으로 장편 데뷔해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2), ‘출출한 여자’(2013~2016) 등 실험적 웹 시트콤을 만들어온 윤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가 그간 눈여겨봐온 김소형·박동훈·최하나·송현주·한인미 감독들과 함께 각각 10분 안팎씩 총 6편 단편을 각본·연출했다.

과대 프러포즈 이벤트를 꼬집은 ‘손에 손잡고’.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과대 프러포즈 이벤트를 꼬집은 ‘손에 손잡고’.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여섯 편을 한 줄로 요약하면 “웃다가 정색하게 되는”(왓챠피디아 관람평) ‘을(乙)’들의 작당모의다. ‘남성혐오’ 발언을 연상시키는 마케팅 문구가 논란이 되자 수습에 나선 팀장과 사원(‘진정성 실천편’), 태어날 손주의 본적지를 두고 갈등하는 아버지와 딸(‘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과한 프러포즈 행사로 쓰레기를 양산하는 커플(‘손에 손잡고’) 등을 그린다. 평범한 일상 대화에서 노사·동물권·젠더·지역·환경 문제를 재기발랄하게 짚어내 무겁지 않지만 매번 한방 여운을 남긴다. 탁구공 튀는 듯한 말맛이 나는 대사도 ‘말바말’의 특징이다. 대기업 말단 관리자와 하청업체 대표가 하청 직원들을 상대로 악랄하게 노동착취한 경험을 무용담 겨루듯 자랑하는 윤 감독의 단편 ‘프롤로그’가 그렇다.

노동 착취 대결을 그린 ‘프롤로그’.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노동 착취 대결을 그린 ‘프롤로그’.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5일 윤 감독은 전화 인터뷰에서 “독립영화 만들던 시절 우연찮게 읽은 한 싯구절 ‘우스개는 비분강개보다 강하다’는 문장이 내게 경구가 됐다”며 “비장하고 창대한 서사는 워낙 많으니까 우리는 좀 더 작게, 날렵하게, 가뿐하게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윤성호 감독은 “힘없는 ‘을’이 더 약한 ‘병’을 밀어내는 사회 분위기를 영화에 담았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윤성호 감독은 “힘없는 ‘을’이 더 약한 ‘병’을 밀어내는 사회 분위기를 영화에 담았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윤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프롤로그’에 대해 “예전엔 재벌·기득권층이 탄압한다고 시민들이 공분했는데 요새는 시민들이 먼저 장애인 시위나 퀴어 퍼레이드를 못마땅해 한다. 대단찮은 ‘을’이 ‘병(丙)’을 밀어내는 느낌, 중산층 아파트 단지의 서민이 임대 아파트 단지 신축을 싫어하는 사회 분위기를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말바말’ 제작 과정에선 ‘열정페이’를 차단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빠듯한 제작비에 맞춰 각 단편의 주인공은 동물 포함 세 캐릭터 이내, 감독을 비롯해 5인 이하 스태프가 한 장소에서 6시간 내 촬영을 마쳐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제약 속에 창의력이 나온다”며 “좋은 뜻에서 영화를 만들려다 민폐를 끼치면 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영화 속 주제에 대해 관객과 대화할 기회를 얻기 위해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요즘은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 예능, ‘피식대학’ ‘숏박스’ 등 유튜브 콘텐트가 옛날 시트콤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이를 통해) 개인이나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얘기하기는 어렵다”면서 “공동체 상영도 좋고, 일상의 자잘한 기운을 재미 있게 전하는 작품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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