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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통째로 빌려 9m 땅굴, 송유관 30㎝ 앞두고 딱 걸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대전경찰청 송유관 기름 절도 일당 검거 현장 모습

대전경찰청 송유관 기름 절도 일당 검거 현장 모습

국도변의 모텔을 임차한 뒤 지하에 매설된 송유관까지 땅굴을 뚫어 기름을 훔치려 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송유관에서 기름을 빼내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송유관 안전관리법 위반)로 8명을 붙잡아 이 가운데 A씨(50대 남성) 등 4명을 구속, 나머지 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9일 밝혔다. A씨 등은 충북 청주의 한 모텔을 임차한 뒤 지하실에서 송유관까지 땅굴을 파 기름을 훔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경찰에 따르면, 범인 일당은 총책 A씨와 자금책 2명, 기술자 B씨(60대), 작업자 등으로 역할을 나눠 범행을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B씨가 교도소에서 출소하자 범행 모의를 시작했고, 10월부터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B씨는 대한송유관공사에 몸담았던 직원 출신으로, 과거에도 송유관 절도 범죄에 가담한 전력 때문에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유관은 공사 측이 24시간 관리하는 데다 지름도 45㎝가량이나 돼, 구멍을 내서 기름을 빼내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경찰 수사 결과 일단은 송유관에서 기름을 빼낸 뒤 이를 판매까지 하기 위해 당초 충북 청주와 옥천 등 주유소 2곳을 빌렸다. 청주 주유소는 판매 목적, 옥천 주유소는 송유관까지 땅굴을 파 기름을 빼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옥천 주유소에서 땅굴을 파던 중 지하에서 물이 너무 많이 나오자 1m 정도 파다가 작업을 중단했다. 해당 주유소에서 송유관까지 거리도 50m 정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범행 장소를 추가로 물색하던 일당은 올해 1월 초 국도 17호선이 지나는 충북 청주시 남이면의 한 모텔을 통째로 임차했다. 송유관까지 거리가 불과 9m에 불과했고, 도로에 인접한 건물이었다. 모텔 주인은 “(모텔) 영업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는 일당의 제안에 월세 450만원에 계약했다.

이들은 모텔 지하 벽면을 부수고 송유관까지 폭(가로) 81㎝, 높이(세로) 78㎝의 땅굴을 팠다. 소음과 진동으로 범행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대부분 삽과 곡괭이 등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이들은 송유관을 불과 30㎝ 앞두고 경찰에 적발되면서 범행에 실패했다.

국가정보원을 통해 관련 제보를 접수한 대전경찰청은 지난 3월 3일 현장을 급습해 땅굴을 파고 있던 작업자 4명과 A씨 등 7명을 검거했다. 지난 달에 자금책 1명까지 추가 검거했다. A씨 등은 훔친 기름을 자신들이 당초 빌린 옥천 주유소로 옮겨 판매할 계획이었다. 범죄 수익은 역할과 자금 투자 규모에 따라 나누기로 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A씨는 “ℓ당 400∼500원의 수익금을 주겠다”고 하며 공범을 모집했다.

A씨 등이 판 땅굴은 국도 바로 아래를 지났다. 경찰에 따르면, 땅굴이 지난 해당 지점은 하루 평균 자동차 6만6000여 대가 지나는 지점으로, 땅굴로 인해 지반이 약해져 붕괴 위험이 우려됐다고 한다. 경찰은 일당을 검거한 뒤 관계 기관에 통보해 땅굴 등 범행 흔적을 원상 복구했다.

대전경찰청 김재춘 강력범죄수사대장은 “송유관 절도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폭발이나 화재에 따른 인적·물적 대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회·경제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송유관 관련 범죄에 단호히 대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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