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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대학'도 '나혼산'도 못 한다"…웃다가 정색한 이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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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최근 사회적 이슈를 10분 안팎 대화에 위트 있게 담은 단편 6편을 묶은 옴니버스 작품. 올해 49주년을 맞는 서울독립영화제가 기획, 제작, 배급을 맡았다. 사진은 수록 단편 중 최하나 감독의 '진정성 실천'편 한장면이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최근 사회적 이슈를 10분 안팎 대화에 위트 있게 담은 단편 6편을 묶은 옴니버스 작품. 올해 49주년을 맞는 서울독립영화제가 기획, 제작, 배급을 맡았다. 사진은 수록 단편 중 최하나 감독의 '진정성 실천'편 한장면이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약자를 편드는 재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힘든 시대잖아요. 자본이 많이 드는 방송국 예능은 광고주 눈치를 보게 되고, 조회수‧협찬광고가 중요한 유튜브도 기업 친화적인 콘텐트를 만들 수밖에 없죠.”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로 한국판 정치 시트콤의 가능성을 증명한 윤성호(47) 감독이 단돈 6000만원의 순제작비를 들인 초저예산 옴니버스 영화로 돌아왔다. 17일 개봉하는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이하 말바말)’는 올해 49주년 서울독립영화제가 기획‧제작‧배급하는 작품. 독립영화 ‘은하해방전선’(2007)으로 장편 데뷔해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2) ‘출출한 여자’(2013~2016) 등 실험적 웹 시트콤을 만들어온 윤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가 그간 눈여겨봐온 김소형‧박동훈‧최하나‧송현주‧한인미 감독들과 함께 각각 10분 안팎씩 총 6편 단편을 각본‧연출했다.

17일 개봉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총괄 프로듀서 겸한 윤성호 감독 #"우스개는 비분강개보다 강하죠"

남혐논란·지역갈등·환경…"웃다가 정색하게 돼" 

최근 사회 이슈를 두루 담은 옴니버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총괄 프로듀서를 겸한 윤성호 감독은 제목에 대해 ″'말이야 바른 말이지'라는 표현에 이어서 정말 '바른 말'들을 내놓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남들 앞에서 버젓하게 발언하기엔 문제가 있는 편견이나 오류를 넌지시 드러내고 싶을 때 이 말을 들이민다″고 했다. ″그렇게 힘이 세지도 않은 우리가, 그렇게 많이 가진 것도 아닌 우리가, 그런 우리보다도 덜 가진 존재, 조금 더 약한 존재를 밀어낼 때, 그 머쓱하고 켕기는 과정을 나름 합리적이고 매끄럽게 포장하기 위해 더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최근 사회 이슈를 두루 담은 옴니버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총괄 프로듀서를 겸한 윤성호 감독은 제목에 대해 ″'말이야 바른 말이지'라는 표현에 이어서 정말 '바른 말'들을 내놓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남들 앞에서 버젓하게 발언하기엔 문제가 있는 편견이나 오류를 넌지시 드러내고 싶을 때 이 말을 들이민다″고 했다. ″그렇게 힘이 세지도 않은 우리가, 그렇게 많이 가진 것도 아닌 우리가, 그런 우리보다도 덜 가진 존재, 조금 더 약한 존재를 밀어낼 때, 그 머쓱하고 켕기는 과정을 나름 합리적이고 매끄럽게 포장하기 위해 더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여섯편을 한 줄로 요약하면 “웃다가 정색하게 되는”(왓챠피디아 관람평) ‘을(乙)’들의 작당모의다. ‘남성혐오’ 발언을 연상시키는 마케팅 문구가 논란이 되자 수습에 나선 팀장과 사원(‘진정성 실천편’), 태어날 손주의 본적지를 두고 갈등하는 아버지와 딸(‘당신이 사는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과한 프러포즈 행사로 쓰레기를 양산하는 커플(‘손에 손잡고’) 등을 그린다. 평범한 일상 대화에서 노사‧동물권‧젠더‧지역‧환경 문제를 재기발랄하게 짚어내 무겁지 않지만 매 번 한방 여운을 남긴다. 지난해 전주‧무주산골‧정동진‧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공감간다는 평가가 많았다.
 드라마는 윤 감독이 중심이 돼 2018년 시작한 ‘시트콤협동조합’이 공동 제작했다. 이 조합의 창립작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가 노동환경이란 묵직한 주제를 블랙코미디에 담아 SNS(소셜미디어네트워크)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말바말’도 기발한 순간포착, 탁구공 튀는 듯한 말맛이 나는 대사가 특징이다. 대기업 말단 관리자와 하청업체 대표가 하청 직원들을 상대로 악랄하게 노동착취한 경험을 무용담 겨루듯 자랑하는 윤 감독의 단편 ‘프롤로그’가 그렇다.
 5일 윤 감독은 전화 인터뷰에서 “독립영화 만들던 시절 우연찮게 읽은 한 싯구절 ‘우스개는 비분강개보다 강하다’는 문장이 내게 경구가 됐다”며 “비장하고 창대한 서사는 워낙 많으니까 우리는 좀 더 작게, 날렵하게, 가뿐하게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윤성호 "우스개는 비분강개보다 강하죠"

당초 생각했던 제목은 ‘공모’. 윤 감독은 “예전엔 재벌‧기득권층이 탄압한다고 시민들이 공분했는데 요새는 시민들이 먼저 장애인 시위나 퀴어 퍼레이드를 못마땅해 한다”며 “대단찮은 ‘을’이 ‘병(丙)’을 밀어내는 느낌, 중산층 아파트 단지의 서민이 임대 아파트 단지 신축을 싫어하는 사회 분위기를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윤 감독 등은 영화 주제에 맞게 제작 과정에서 ‘열정페이’를 차단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빠듯한 제작비에 맞춰 각 단편의 주인공은 동물 포함 세 캐릭터 이내, 감독을 비롯해 5인 이하 스태프가 한 장소에서 6시간 내 촬영을 마쳐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제약 속에 창의력이 나온다”며 “좋은 뜻에서 영화를 만들려다 민폐를 끼치면 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독립영화계 김병욱? 마음속 드라마 스승이죠"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수록 단편 중 윤성호 감독이 연출한 '프롤로그'. 대기업 과장(왼쪽)과 하청업체 사장의 악덕 노동 착취 경험담 대결을 블랙 코미디로 비틀어 담았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수록 단편 중 윤성호 감독이 연출한 '프롤로그'. 대기업 과장(왼쪽)과 하청업체 사장의 악덕 노동 착취 경험담 대결을 블랙 코미디로 비틀어 담았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윤 감독은 웹 시트콤 ‘출중한 여자’(2016)의 천우희, ‘출출한 여자’의 박희본 등 개성 강한 신진 배우‧감독도 꾸준히 재발굴해왔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로 유명한 김병욱 PD에 빗대 ‘독립영화‧웹 시트콤계 김병욱’이라는 수식어가 나올 정도라고 하자 "김병욱 PD는 나의 드라마 스승”이라고 했다. “만난 적은 없지만 김병욱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2) ‘순풍산부인과’(1998~2000)를 너무 좋아해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봤다”고 소개했다. ‘서울의 달’(1994) ‘한 지붕 세 가족’(1986~1994)을 쓴 김운경 작가도 ‘마음속 스승’ 중 하나다.
“요즘은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 예능, ‘피식대학’ ‘숏박스’ 등 유튜브 콘텐트가 옛날 시트콤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개인이나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얘기하기는 어렵다”며 “결국 관객과 대화할 기회를 얻기 위해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진짜로 원하는 건 영화 속 주제에 대해 관객과 이야기 나누는 기회"라며 "공동체 상영도 좋고, 일상의 자잘한 기운을 재미 있게 전하는 작품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수록 단편 중 한인미 감독의 '새로운 마음'. 회식자리 사건을 둘러싼 직장상사(왼쪽)와 부하직원의 전혀 딴판인 속마음이 어느 야식 시간에 터져나오는 상황을 그렸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수록 단편 중 한인미 감독의 '새로운 마음'. 회식자리 사건을 둘러싼 직장상사(왼쪽)와 부하직원의 전혀 딴판인 속마음이 어느 야식 시간에 터져나오는 상황을 그렸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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