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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더 밀리면 나가" 약속했어도…대법 "코로나 시기 예외"

중앙일보

입력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월세가 밀려 점포를 비워줘야했던 임차인이 소송 끝에 시간을 벌게 됐다. 코로나 시기인 2020년 9월부터 6개월간 연체된 임대료는 연체액으로 계산하지 않는 특례 규정이 적용된 결과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임차인 A씨가 임대인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7월부터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상가를 보증금 1575만원, 월세 260여만원(부가가치세 별도), 관리비 100만원(부가가치세 별도)에 계약했다. 계약 후 A씨가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하자 임대인 B씨는 계약 해지를 주장하면서 건물을 명도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2019년 3월 법원에서 조정으로 해결됐는데, ‘조정 후 밀리는 월세와 관리비가 석 달 치가 되면 계약은 자동으로 해지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이후 2020년 7월에는 보증금과 월세를 일부 올려 한 차례 계약을 갱신했다.

2020년 9월 말 A씨는 B씨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법원 조정 이후 밀린 월세와 관리비가 이미 석 달 치를 넘었다는 이유였다. 그 전에 밀린 것까지 합치면 연체액은 3600만원이 넘은 상태였다. B씨가 건물명도 집행을 하려 하자 A씨는 “밀린 연체액이 석 달 치를 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코로나19로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근거가 됐다. ‘법이 시행된 2020년 9월 29일부터 6개월간 연체된 임대료는 연체액으로 산입하지 않는다’는 임시적 특례 규정이다. 코로나로 임차인의 매출과 소득이 줄어 임대료가 부담되는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A씨가 이 법 시행 전날까지 밀린 돈은 약 920만원, 법 시행 이후부터 6개월간 밀린 돈은 약 2553만원이었다. 법에 따라 6개월간 밀린 돈을 연체액 계산에서 빼고 남은 돈만 보면 석 달 치 금액까지는 되지 않는다는 게 A씨 주장이었다. 1심 재판부는 A씨 손을 들어줬다.

B씨는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2심에선 A씨가 중간에 갚은 돈을 어떻게 계산할지가 쟁점이 됐다. 법 시행 기간인 2020년 9월~2021년 3월 A씨는 약 1015만원을 갚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가 이 돈으로 2020년 9월 이전까지 진 빚인 약 920만원을 먼저 갚은 것이라고 계산했다.

1015만원으로 920만원을 갚고 남은 돈으로 법이 적용된 6개월간의 빚을 갚았다고 계산하면, 6개월간 밀린 돈은 약 2456만원이 된다. 1심 변론이 종결된 2021년 9월 기준 연체액 3670여만원에서 2456만원을 빼면 여전히 석 달 치를 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1015만원을 2020년 9월부터 6개월간 진 빚을 갚은 것이라고 본다면, 연체액으로 보지 않는 금액이 커져 B씨에게 좀 더 유리한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B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법에서 채무자가 어떤 빚을 갚은 것으로 계산해야 하는지에 대해 순서를 정하고 있긴 하지만,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고 보는 상가임대차법 15조가 우선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대법원은 “특례규정의 임차인 보호 취지에 따라야 한다”며 “6개월간 연체된 임대료를 먼저 갚은 것으로 계산할 수 없고, 당사자나 임대인이 이와 달리 계산하는 것은 임차인에게 불리해 무효”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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