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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이것…한국핵과 미국핵 중 북한은 무얼 더 두려워할까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한ㆍ미 정상회담 이후 관련된 토론이 지속되고 있다. 가장 큰 화두는 워싱턴 선언에 담긴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뜨거웠던 자체 핵무장 여론을 뒤로하고, 한국 정부가 미국의 확장억제를 택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핵무장을 하기에 충분한 국가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비확산의 가치를 따른 한국의 결의를 다시금 높이 평가하고,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통해 더욱 강력한 확장억제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한국 해군 잠수함사령관 이수열 소장(오른쪽)과 미 7잠수함전단장 릭 시프 준장(왼쪽),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함대사령관 타와라 타테키 중장(가운데)이 지난달 18일 미국 괌 미군 기지를 방문해 미 해군의 전략핵잠수함(SSBN) 메인함에 승함했다고 미국 국방부가 4일 국방영상정보배포서비스(DVIDS)를 통해 밝혔다. 미 국방부

한국 해군 잠수함사령관 이수열 소장(오른쪽)과 미 7잠수함전단장 릭 시프 준장(왼쪽),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함대사령관 타와라 타테키 중장(가운데)이 지난달 18일 미국 괌 미군 기지를 방문해 미 해군의 전략핵잠수함(SSBN) 메인함에 승함했다고 미국 국방부가 4일 국방영상정보배포서비스(DVIDS)를 통해 밝혔다. 미 국방부

자체 핵무장과 미국의 확장억제, 둘 중 무엇이 나은 선택인지를 논할 때, 기존의 논의는 놀라울 정도로 우리의 인식과, 평시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대가에 편중돼 있다. 하지만 답을 찾는 더 올바른 방법은 전쟁으로 비화할지 모를 위기 속에서 상대의 인식, 즉, 북한이 무엇을 더 두려워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더욱 두려워한다면, 그래서 북한이 핵공격을 단념해 우리가 지금보다 안심하고 살 수만 있다면, 이로 인한 한ㆍ미동맹의 와해, 경제제재 부과, 국제적 위상 약화 등은 기꺼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북한은, 미국의 확장억제보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더 두려워할까?

향후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먼저 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ㆍ미가 방어연습만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미국은 과거 세 차례에 걸쳐 북한에 대한 타격 옵션을 고려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미국은 결국 외교를 택했다. 중국과의 경쟁이 본격화된 지금, 미국이 다시 중국의 유일한 동맹인 북한을 먼저 공격해 제3차 세계대전을 자초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는 우발적 충돌에 대해 북한이 확전을 감행한 것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북한의 의지 때문에 발발한 것일 것이다. 어떤 경우든,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자위권 차원에서 공격했다고 할 것이다. 이 같은 오인이 ‘핵을 사용해야 정권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는 오판으로 이어진다면, 북한은 핵을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이 전면전을 감행하면서 핵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북한의 첫 번째 핵 공격에 대한 확실한 억제력이 꼭 필요하다. 북한의 핵 공격을 억제하려면,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의 억제력을 믿어 스스로 공격을 자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거부적 억제와 응징적 억제, 즉, 공격을 통해 추구하려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게 하거나, 북한의 공격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치르게 하는 능력을 갖추면 된다. 북한은 목적을 이루지 못할 걸 알면서, 정권의 종말을 야기할 걸 알면서 핵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억제력을 갖는다는 것은 핵만 보유해서 될 일이 아니다. 북한의 공격을 거부하려면 북한 지도부와 군사력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 및 감시정찰 능력, 북한의 다양한 미사일을 무력화할 수 있는 교란 혹은 요격 능력, 핵미사일에 맞더라도 안전할 수 있는 방호 능력 등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의 공격에 응징하려면 핵미사일 관련 시설과 지하 벙커에 숨어있을지 모를 북한 정권 수뇌부에 대한 정밀 타격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목적의 억제력을 갖추는 데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보다 미국의 확장억제가 훨씬 효과적이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거부 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한국의 핵은 굳이 따지자면 응징과 관련이 있는데, 그마저도 기존의 재래식 무기보다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은 북한 정권 수뇌부에 대한 공격이 아닌 북한 주민에 대한 공격이다.

한편 거부를 위한 능력은 재래식 전력에 기반한 능력이며, 사이버ㆍ전자기스펙트럼ㆍ우주 등 새로운 전장 공간을 활용함으로써 현격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한국의 자체적 능력 증강을 꾀하고 있는 동시에, 한미간 상호운용성을 높이고 능력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재래식 수단에 의한 응징적 억제 능력도 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대지 탄도 미사일 ‘현무’는 북한 정권 수뇌부가 은신할 지하 벙커를 파괴할 수 있는 고위력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수천 개에 달하는 핵무기와 다양한 타격 옵션으로 북한 정권의 종말을 야기할 수 있는 압도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핵심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자국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을 위해 핵 버튼을 누를 것인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우리의 안보를 불안하게 한다는 것이 자체 핵무장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체 핵무장이 미국의 확장억제보다 나은 선택이 되려면, 한국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에게 추가적 위험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핵 버튼을 누를 것이라는 것에 대해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핵전쟁의 참화를 목전에 두고 한국 대통령이 마주하게 될 딜레마적 상황은 미국 대통령이 마주할 상황에 못지않다. 북한은 우리의 의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한국의 편에 서서 북한의 표적이 되기로 작정한 미국에, 그 의지가 약해 보일까 봐 더 강력한 공약을 표명하는 미국에, 한국이 여전히 의심을 갖고 무력감을 주는 것은 북한이 가장 원하는 바일 것이다. 따라서 워싱턴 선언 이후 우리가 골몰해야 하는 일은 한ㆍ미 간의 핵협의그룹이 실질적으로 상호간의 이해와 신뢰를 증진해, 살아있는 협의체가 되도록 하는 일이다. 북한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보다, 한ㆍ미동맹의 강력한 결속과 확장억제 강화를 더욱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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