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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개인 맞춤형 행정서비스 앞당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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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2024년 5월 나행복씨 가족은 정부로부터 맞춤형 서비스를 휴대전화 문자로 받았다. 퇴직한 행복씨에게는 연금 안내에 이어 지역 여가 프로그램, 재취업 안내 문자가 왔다. 퇴직 후 수입이 줄어 부담되었던 아파트 세금 납부 정보도 자동 계산돼 제공되었다. 행복씨 부인 활달씨는 지난해 건강검진 이후 건강 관리 조언과 함께 가까운 병·의원 의료 서비스들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안내하는 정보가 왔다.

또 퇴직 후 창업을 준비하는 큰아들 도전씨는 인근 청년창업지원종합서비스센터에서 창업 금융 지원과 기업 컨설팅 정보를 제공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딸 기회씨는 기본 정보를 입력하자 관심 분야 취업 정보와 함께 맞춤형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소개받았다.

성큼 다가온 AI 적극 활용해야
부처간 정보 칸막이 의미 없어
개인정보 보호장치 선결돼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디지털플랫폼정부’ 실현 계획이 펼치는 세상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 서비스는 원스톱에서 노스톱(No-stop)으로 진화한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예산·정보가 통합 관리된다. 데이터 공유를 가로막은 규제는 철폐되고, 따로 놀았던 1만7060개의 정보시스템은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전자정부 시절의 행정 효율을 넘어 국민이 체감하는 빠르고, 수준 높은, 그러면서도 개방된 정부를 지향한다. 디지털 강국 한국의 공공부문 혁신이 이제 글로벌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성과라 할 수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가 성공하려면 세 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첫째, ABCD에 충실해야 한다. 과거 비효율과 관료주의의 대명사였던 대민 행정은 현장에서부터 중앙부처까지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국민의 다양한 정책 수요를 실시간으로 취합해 적시에 최적의 수준으로 충족시키려면 제한된 인력과 정보로는 불가능하다. 한층 다양해진 정책 대상과 이해 관계자들에 대한 정보가 의미 있는 데이터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정보 축적·활용이 선순환을 이루는 빅데이터(Big Data)로 구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분절적으로 생산된 정보들이 통합 관리되고, 나아가 맞춤형 정보를 촘촘하게 제공할 수 있는 클라우드(Cloud)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개별 부처 수준에서 완벽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더라도 부처 간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프라 구축 비용은 늘고, 중복 사업 집행으로 예산만 낭비하게 된다. ABC 기본에 충실할 때 디지털플랫폼정부(D)로 거듭날 수 있다.

둘째,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요구된다. 저출생·고령화, 저성장, 재정수지 악화, 미래  세대 복지 부담 증가를 누구나 얘기한다. 타당한 걱정이나 이러한 우려는 현재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하거나 악화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디지털정부 혁신을 통해 행정 낭비를 초래했던 근본 원인을 찾아내고, 중복 사업을 없애며, 전달 체계 투명성을 높여 중간에 새는 돈을 줄인다면 청년을 위한 주택, 금융 취약층 회생 프로그램, 장애인 맞춤형 서비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아이 돌봄서비스 등이 국민의 큰 추가 부담 없이 가능하다. 정부 효율 극대화를 통한 재원 확보야말로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정부가 혈세 낭비의 주범이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셋째, 맞춤형 공공서비스 제공과 개인정보 통합 관리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빅데이터가 ‘빅 브러더’로 바뀌는 감시사회를 누구도 원치 않는다. 챗GPT의 출현과 함께 인간이 고유하게 만들어 온 언어·창발성·소통의 방식에 전면적인 도전이 예상된다. 여기에 더해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 구축한 빅데이터들이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의료·자산·금융 정보에 대한 생산·유통 과정의 전면 점검과 보호 장치가 요구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만 1년을 맞는다. 대내외 도전은 격화되고 있다. 패권국 간 경쟁 구도에서 우리의 선택지는 크게 좁아지고 있다. 정쟁과 정파를 넘어 국가 혁신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디지털플랫폼정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국민의 고단한 삶을 보다 세밀하게 추적하고, 정부 혁신을 통해 기본에 충실하되 국민 행복을 실현하는 글로벌 선도 혁신 모델을 정부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