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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시다, 오염수·북핵·공급망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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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호 03면

12년 만에 한·일 셔틀외교 복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와 지난 3월 16일 도쿄 긴자의 한 식당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와 지난 3월 16일 도쿄 긴자의 한 식당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7일 서울에서 열린다. 기시다 총리가 ‘이번에는 내가 (한국에) 가야 한다’며 한·일관계 정상화에 강한 의욕을 나타냄으로써 방한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2018년 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이후 일본 총리로서는 5년3개월 만의 방한이다. 어렵사리 시동이 걸린 한·일관계 개선 노력에 일본이 화답하여 12년 만에 셔틀외교가 복원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기시다는 왜 조기 방한을 결정했나=당초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5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인 7월 정도로 예상됐다. 방한 일정이 G7 회의 이전으로 급변경된 것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요청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한·일관계를 정상화한 후 G7 정상회의에서 북한 핵·미사일 이슈를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인식했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윤 대통령의 대승적 조치를 환영했고, 지역 및 경제 안보에 관한 3국 협력으로 이어지는 한·일 간 협력 확대를 강력하게 지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시다 총리도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시다가 처해 있는 정치환경은 만만한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자민당은 4승 1패로 승리하였지만, 무당파층의 동향은 결코 자민당에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선거구제의 개편을 통해 치루어지는 다음 선거에서는 도시 지역 선거구가 늘어나면서 무당파층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보면 기시다의 조기 방한 결정에는 G7 정상회의 이전에 한·일관계 개선을 어필하여 지지율을 더욱 끌어올리겠다는 계산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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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결단에 기시다 총리가 화답함으로써 한·일관계 개선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민간 교류는 활성화되고 안보, 경제 부문의 협력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이전 정부 시절 극단적인 한·일 간 대립으로 국제관계에서 서로 피해를 보는 경우도 발생했지만 셔틀외교 복원을 시작으로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앞으로의 방향성 채워갈 시작점=이번 셔틀외교는 앞으로의 방향성과 내용을 채워나가는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단지 정상 간의 신뢰회복에 집중된 나머지 친교만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 셔틀외교야말로 보여주기식 논의가 아니라 한·일 양국이 가지고 있는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에게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회담 의제에는 후쿠시마 오염수(일본은 ‘처리수’란 용어 사용) 안건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감정적 대응보다 과학적 논의를 전제로 상호협의해야 할 사안이다. 한국의 원칙을 정확히 주장하여 서로의 타협안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실시간 정보공유도 처리되어야 할 안건이다. 한·일 양국이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보공유의 수준을 정하는 것은 한·미·일 안보협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한·일 양국은 한·미·일 협력 속에서 유사시 어떻게 군사적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경제안보 분야에서도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논의는 절실하다. 한·일이 윈윈할 수 있는 호재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자본과 기술의 국내 유치에만 역점을 두기보다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부응하는 기업 간 협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협력은 더욱 더 속도를 내야 한다. 3월 윤 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한·일 파트너십 기금’을 마련하자고 논의한 이후에도 그 진전사항은 알 수가 없다. ‘10억+10억’원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확대하면서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과거사, 기시다는 어떻게 호응해 올까=최근 한국의 관심은 기시다의 과거사에 대한 사죄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윤 대통령의 방일 때 일본 측의 호응 조치가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일 양국이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넘어 한층 더 높은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일본의 호응조치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본은 더 이상 사죄와 반성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후속세대에까지 ‘사죄의 짐’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이 원하는 수준의 발언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든 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정부도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부담감은 가지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사죄를 표명하지 않으면 한국 여론의 악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기시다 총리가 이번 방한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는 수준의 발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자’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되돌리지 않도록 한·일 양국의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한국이 G8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일본에 피의자 의식의 굴레를 계속 씌우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제 한국은 일본보다 소비 지수가 높고 선진국이라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을 극복하고 일본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이제는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일본의 양심에 맡기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한국에 앞서 선진국이 된 일본도 이를 명심해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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