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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배 레버리지·절세에 감시 사각지대…‘꾼’ 놀이터 된 CFD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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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호 14면

SG증권발 주가 조작 의혹 확산

가수 겸 배우 임창정 등 유명인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3일 이원석 검찰총장의 “주가 조작 가담 세력과 부당 이득 수혜자를 철저히 색출해 엄정하게 처벌하겠다”는 선언을 시작으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합수단)은 주가 조작 총책으로 의심받고 있는 라덕연 호안 대표의 비밀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섰다. 합수단은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인력을 참여시켜 수사에 필요한 팀을 구성한 바 있다.

이번 주가 조작 의혹은 지난달 24일부터 선광·하림지주 등 8개 종목 매물이 외국계 증권사 SG증권을 통해 쏟아져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불거졌다. 이들 종목 주가는 지난해 4월 이후 강세를 보이면서 지난달 초까지 꾸준히 오르다가 순식간에 폭락했다. 주가 조작 세력이 금융당국의 조사를 의식, 급하게 매물을 던지면서 주가 폭락 사태가 일어났다는 심증이 형성된 배경이다. 특히 주가 조작 경로가 증권사의 차액결제거래(CFD)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핵심 논점으로 떠올랐다.

CFD 투자 자격 완화돼 거래액 8배 늘어

CFD는 투자자가 기초자산을 보유하지 않아도 가격 변동분에 대해서만 차액을 결제할 수 있는 장외 파생상품 중 하나다. 즉, 레버리지(부채를 끌어다가 자산 매입에 나서는 투자 전략)를 통한 거래다. 국내에서 CFD는 최대 2.5배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다. 예컨대 수중에 1억원만 있어도 그 2.5배인 2억5000만원어치 주식을 매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파생상품이다 보니 금융투자협회 심사 후 자격이 부여되는 ‘전문투자자’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투자할 수 있다.

그런데 2019년 금융위가 자산시장 활성화 및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목적으로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을 대폭 완화하면서 고수익을 노린 개인 투자자, 이른바 ‘개미’들이 입소문 속에 CFD로 몰리기 시작했다. 당시 금융위는 5억원 이상이던 전문투자자의 금융투자상품 잔고 기준을 10분의 1 수준인 5000만원 이상으로 낮췄고, 소득 기준도 완화했다. 이에 국내 증권사들까지 앞다퉈 CFD 서비스에 나섰다. 그러면서 2019년 8조3754억원이던 국내 CFD 거래액은 2021년 70조702억원으로 8배 넘게 증가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단순히 고수익이 기대되는 상품이라서 투자자들이 몰려든 것만은 아니다. CFD가 절세 수단이라는 점을 증권사들이 적극 홍보했고, 개미뿐 아니라 사업가나 연예인 등 고액 자산가들도 여기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해외 주식에 직접투자하면 그 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 22%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CFD는 파생상품이라 양도세는 11%로 절반 수준이 된다. 문제는 하락장일 때다. CFD로 매입한 주식의 가격이 떨어져 증거금(결제를 이행하기 위한 보증금)이 부족해지면 투자자는 다음 거래일까지 부족한 금액을 채워 넣어야 한다.

증거금을 넣지 못하면 증권사가 2거래일 뒤 ‘반대매매’에 나선다. 고객이 기간 내에 변제하지 못했으므로 고객 의사와 관계없이 고객의 주식을 강제로 일괄 매도 처분하는 것이다. 하락장일 땐 CFD에서 이런 반대매매가 급증하다 보니 주가가 자연스레 폭락한다. 이번 같은 주가 폭락 사태 때 CFD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CFD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상품이다 보니 통상 국내 증권사들은 헤지(위험 분산)를 위해 이번 SG증권의 경우처럼 외국계 증권사와 계약해 CFD를 서비스해왔다.

투자주체 외국인으로 잡혀, 공시 의무 없어

그런데 이 때문에 내국인 고객이 주문했더라도 최종 주문 주체가 외국계 증권사인 것처럼 되어 외국인으로 잡힌다. 투자자들이 특정 종목에 외국인의 수급이 몰린 것으로 오해해 잘못된 투자 판단을 할 개연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CFD는 장내가 아닌 장외 파생상품이면서, 투자 주체가 외국인으로 잡혀 법적으로 공시 의무가 없다”며 “한마디로 감시·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상품”이라고 전했다. 이 같이 누가 어떤 종목에서 CFD에 투자했는지 금융당국에서 파악하기 힘든 맹점 때문에 주가 조작 세력이 활개를 치기도 쉽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FD는 투자자가 투자 전략을 노출하고 싶지 않을 때 내가 아닌 증권사가 거래하는 것처럼 포장해 명의를 감출 수 있는 상품”이라며 “일반 투자자 입장에선 전략상 장점이 되지만, 이번 사태로 주가 조작 세력이 역이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크게 부각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이번에 주가 조작 세력이 불공정거래와 관련된 감시·감독을 피하기 위해 CFD에서 여러 갈래로 나눠 투자해 (정보를) 더 알 길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논란 속에 지난달 25일부터 증권사들은 주가가 폭락한 종목을 신용대출 종목군에서 제외하거나, 이들 종목의 증거금률(증거금으로 주식을 매수할 주체가 보유해야 하는 현금 비중)을 높이는 조치에 나섰다. 투자자들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조치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증거금률을 높인 건 피해 속도를 늦추는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일 순 없다”며 “CFD의 구조적 허점을 노려 5년 정도로 길게 잡고 (세력들이) 주가 조작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CFD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주가 조작 등 범죄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9년 금융위가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을 완화한 게 문제”라며 “2019년 이전 수준으로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도 “주가 조작 세력들엔 선진국처럼 강력한 징벌적 조치로 엄청난 불이익을 주는 등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국내에선 주가 조작으로 유죄 판결이 나와도 징역 3~4년형 수준의 처벌만 내려져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와 달리 미국은 금융 범죄에서 피해 규모에 따라 종신형 수준인 50~150년형까지도 선고한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은 2일 국회 정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주요 증권사들에 대한 CFD 관련 검사 방침을 보고했다. 정무위는 오는 11일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어 제도 개선 방안을 공론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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