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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김대중과 와카미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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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호 31면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수년 전 타계한 와카미야 요시부미( 若宮啓文) 아사히신문 주필은 테니스 친구였다. 실력은 별로였지만 시합은 열심이었다. 어느 날 테니스를 마치고 저녁을 함께하면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논설을 쓰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물론 그는 난색을 보였다. 나는 명분과 실리 양면에서 설득하였다. 일본이 군국주의 척결을 앞세우면서 다른 곳도 아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독도는 일본의 군사적 팽창의 상징과도 같은 섬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이런 주장으로 한 민족의 나쁜 감정을 살 뿐 일본에 이득이 되는 일은 없다. 독도는 우리에게 국익(national interest)의 문제만이 아니고 민족의 윤리(national ethics)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또다시 일본에 영토의 일부라도 빼앗기는 일이 있다면 일본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에 앞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동은 드디어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며 한·일간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하고 호감을 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긍정적인 영향은 한국뿐만 아니라 지역적 혹은 세계적으로 평화주의 일본의 격을 높여 줄 것이다. 일본으로선 명분과 현실 양면에서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몇 차례 더 주저한 끝에 그는 결국 해보겠다고 했고 곧이어 약속을 행동으로 지켰다. 용기 있는 행동이고 양식 있는 언론인으로 하여야 하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에게 그런 일로 뒷말을 한 일은 없었다. 와카미야는 친한 인사였는가.

친일, 친한 오해 사면서까지도
세론 따르는 편리한 입장 서지 않고
신념 따라 옳다고 생각한 일 실천
제2의 김대중, 와카미야 있는지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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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흔히 친일이란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을 하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본의 천황을 일왕이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그 나라 사람들이 천황이라고 하면 우리도 그에 따라 천황이라 부르는 것이 정상적인 처사 아닌가. 구태여 일왕이라 부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독도 문제에 관하여서는 우리가 너무 과잉 반응을 한다는 말도 자주 했다. 현재 일본에게 빼앗긴 것도 아니고 우리가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에 관하여 일본이 법적인 주장을 한다면 외교부가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옳다. 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마치 금세 독도가 침탈을 당하는 것같이 행동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반응은 오히려 일본의 주장을 더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국전쟁 당시 일본의 경제가 도약한 것을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기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경제를 회복하고 발전시킨 것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일본이 가까이 있어서 병참 지원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는 일본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평화주의와 함께 후발 개도국을 많이 돕는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였다. 김대중은 친일이었는가. 국빈 방일 때 옛 스승을 만나 “도요타 다이쥬입니다”라고 인사했다는 것을 트집 잡아 그를 친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와카미야는 한국이 일본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에 관하여 때로는 옳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한국 일부에서 일본을 아직도 군국주의 나라로 여기는 것같은 경우에 그랬다. 그는 또 한국에서 비난의 표적이 된 박유하 교수 같은 분을 한·일 간의 진정한 이해와 화해의 희망이라고 칭찬하였다. 박 교수의 저술들은 한때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 지정을 받기도 했고, 진보 신문에서 지면 전체에 걸친 호의적 서평을 실은 일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친일로 몰려 형사 사건으로까지 되었다. 와카미야는 일본·미국 등의 진보적 지식인 70여 명과 연명으로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민주주의의 상식과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판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박 교수의 재판은 1심에서 무죄, 2심에서는 유죄 판결이었고 대법원으로 간 뒤 5년 반 동안 판결은 물론 지연에 관한 설명도 없이 계류 중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도쿄대 강연 초청을 받아 일본에 온 일이 있었디. 때마침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일 관계가 껄끄러운 시기여서 일본 정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을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숙소인 호텔 방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현직 중의원 의장을 포함, 전직 총리들도 다수 참여하였다. 그 자리에서 김대중은 통역을 물리고 일어로 긴 발언을 하였는데 마치 스승의 나무람을 듣는 제자들의 모임과 같이 숙연한 분위기였다. 일본의 지도자급 중진 혹은 원로 정치인들이 한마디의 반론은 물론 아무런 이의를 달지도 않고 모두 깊이 반성하는 모습으로 말씀을 듣는 것은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한국은 물론 어느 나라 정치인이 이런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다른 나라 정치 지도자들을 대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였다. 와카미야가 그저 친한 인사가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김대중도 친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이해와 세론에 따르는 편리한 입장에 서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였을 뿐이다. 우리가 그런 분들을 편리하게 “친한”이니 “친일”이니 불렀을 따름이다. 지금 한일 양국에 과연 제2의 김대중, 제2의 와카미야가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전 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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