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극단적 선택’이라는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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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눈이 부시게 화창한 봄날에 나누기 무거운 주제지만, 봄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이는 ‘봄의 피크(Spring Peak)’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19세기 말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겨울에 비해 날씨가 온화할 때 모든 국가에서 자살률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통계를 살펴보면 겨울(12~2월) 자살자 수는 6만1606명인 데 비해 봄(3~5월)은 7만5583명으로 훨씬 많다. 여름(6~8월)과 가을(9~11월)은 각각 6만9725명과 6만5500명이다.

5월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월별 데이터로 보자면 3월이 가장 높고, 다음이 5월과 4월 순이다. 지난 10년간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달은 대부분 봄이었는데(3월 5회, 4월 1회, 5월 3회), 예외적으로 2020년에만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국가적 긴장 상태가 시작됐던 봄을 지난 7월이었다. 사회적 재난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시기엔 자살이 감소하는 경향은 역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참고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자살사망자 수는 1만3195명으로 2019년 1만3799명에서 낮아졌으며, 2021년에는 1만3352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최근 자살 급격한 증가는 충격적
‘극단 선택’이라는 완곡한 표현은
개인적 책임으로 돌리는 부작용
사회가 정면 응시해야 해결 시작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의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도 봄철인 10월 근처에 자살률이 높은 것을 보면 계절적 영향은 분명해 보인다. 가장 화창한 계절에 왜 자살률이 높은가에 대해선 여러 이론이 있다. 일조량이 늘어나며 급격한 뇌 기능의 변화로 감정 기복이 심해져 충동적 행동을 하며, 기분이 가장 침체했던 겨울보다 우울이 조금 회복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자살위험이 오히려 더 커진다고 정신의학은 설명한다. 아름다운 계절에 다른 이들은 활기차고 행복해 보이는데 자신만 불행한 듯한 상대적 박탈감과 초라함으로 설명하는 심리적인 관점도 있다. 각종 활동이 시작되는 봄에 사회적 역할 및 직업·신분 변화로 받는 압박감이 더 심해진다는 사회적 설명도 가능하다. 참고로 호주 등 남반부 국가의 회계연도는 북반구와 반대로 7월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런 설명이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격하게 증가한 10·20대의 자살은 큰 충격이다. 이 연령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것은 질병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그 증가율은 심각하다. 10대 자살률은 2019년 인구 10만명당 5.9명, 2020년 6.5명, 2021년 7.1명으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자살을 온라인 라이브 방송으로 중계해 충격을 준 일이 일본 10대 사이에서 일어난 지 불과 며칠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다. 온라인 우울증 커뮤니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그 안에 죽음을 부추기는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진다.

‘스프링 피크’로만 보기에는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전하는 미디어의 제목마다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는 완곡한 표현이 사용된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금기 문화도 있지만, 자살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려는 언론계의 자발적 노력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기사 제목에 ‘자살’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극단적 선택’ 등을 사용하여 자극적 보도를 자제할 것을 권고한다. 그런 선의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첫째, ‘선택’이라는 표현을 통해 마치 자살이 개인의 여러 선택 중 하나인 것처럼 전달되었다. 특히 자살은 많은 사회적 원인에 영향을 받는 것임에도 개인에 책임이 있는 듯 초점이 맞춰졌다.

둘째, 실제 내용의 문제다. 제목에선 ‘극단적 선택’이라 완곡하게 사용되지만 일부 기사의 본문에서는 자극적으로 전달되는 등 원래의 취지가 왜곡된 경우가 많았다.

셋째, ‘극단적 선택’이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은 20년 이상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어온 자살 문제에 대한 직시를 방해할 수 있다.

넷째, 어떤 표현을 사용하든 자살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혹자는 용어 사용이 부수적인 문제라 지적할 수도 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근본적인 자살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점에선 옳은 비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자살 문제에 직시한다는 선언으로서 용어 변화라면 의미 있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유일한 대안이 죽음밖에 없는 듯 생각될 수 있으나, 사람이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세상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며, 여러 선택 중 하나가 되어서도 안 된다.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이 주어져야 한다. 인간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폭력과 빈곤, 경쟁과 부조리에 대응하고, 정신건강과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며, 자살 문제를 직시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할 책임이 국가와 사회에 있다. 화창한 봄의 ‘스프링 피크’라 더욱 시급하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