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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실내악, 그 순수한 아름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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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음악적 아름다움은 오로지 음악적인 것이다. 다른 어떤 예술에서도 느낄 수 없는, 음과 음의 결합을 통해 나타나는 그 어떤 것! 그것이 음악의 진짜 아름다움이다. 음악미학자 한슬릭(E Hanslick)의 주장이다. 이러한 생각은 철학자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도 공유했다. 쇼펜하우어는 기악음악이 “예술 중에서 가장 강렬한 예술로서 자신이 감지하는 영혼을 완전하게 표현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가사가 있는 성악보다 기악이, 기악 중에도 표제가 없는 실내악이나 교향곡 같은 음악이 진정한 음악이라 보았다.

봄날 찾아온 서울실내악축제
슈베르트·베토벤·브람스…
가족과 함께하는 기악의 향연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 C장조 D. 956’을 연주하는 음악가들. 왼쪽부터 강동석·조가현(바이올린), 이한나(비올라). 박진영·문태국(첼로). [사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 C장조 D. 956’을 연주하는 음악가들. 왼쪽부터 강동석·조가현(바이올린), 이한나(비올라). 박진영·문태국(첼로). [사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한슬릭과 쇼펜하우어에 공감하면서, 순수한 음악적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자리에 다녀왔다. 서울스프링실내악 축제(Seoul Spring Festival of Chamber Music) 시리즈 중 지난달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린 ‘첼리시모의 향수’ 공연이다. 피아티(A Piatti)와 슈만(R Schumann)에 이어 연주된 슈베르트(F Schubert)의 ‘현악 5중주 C장조 D. 956’(1828)은 큰 전율을 던져주었다. 바이올린  2대, 비올라 1대, 첼로  2대가 엮어내는 사운드는 특별했다. 슈베르트의 곡이 흐르는 약 1시간은 세상의 복잡함과 개인적인 희로애락이 완전히 지워진, 몰입의 순간이었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음악적인 순수한 아름다움이기도 했고,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의 세계이기도 했다.

슈베르트가 죽음을 앞두고 작곡한 이 곡에는 슈베르트 특유의 우울과 비극적 분위기가 대규모 소나타 형식에 겹겹이 담겨 있다. 전 악장에 나타나는 주제들은 한계를 넘어서는 독자적인 다이내믹을 펼치며 장대한 선율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섬세하게 구분된 폴리포니적 층을 이루는 반주 성부는 음악적 깊이를 더한다.

제1악장의 열정적인 제1 주제와 꿈을 꾸는 듯한 제2 주제는 이례적으로 모두 첼로가 연주하며 독특함을 보여주고,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제2악장에서는 폭넓은 표현적 흐름 속에서 중간 성부가 선율을 연주하고 높은 음역의 바이올린과 낮은 음역의 첼로가 이를 감싼다. 휘몰아치는 제3악장은 강한 역동성을 보이는 부분과 느린 아다지오가 대조를 이루며 큰 폭의 감정적 곡선을 이끌어낸 후, 민속적 춤곡의 주제가 등장하는 제4악장의 힘찬 스트레토로 마무리된다.

이날 바이올린 강동석·조가현, 비올라 이한나, 첼로 박진영·문태국은 그들의 화려한 명성에 걸맞게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바이올린 파트의 정교하고 섬세한 연주는 슈베르트 실내악의 의미를 깊이 있게 드러냈다. 두 대의 첼로가 등장하는 독특한 편성에서 기대되는 나지막하지만 강렬한 첼로 사운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섯 악기가 때로는 격렬하게 화합하고 때로는 각자의 세계에 몰입하여 내면으로 침잠하면서 빚어내는 음색은 슈베르트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올해로 18회를 맞는 서울스프링실내악 축제는 지난 26일부터 오는 7일까지 총 12일간 열리고 있다. ‘음악을 통한 우정’이라는 모토로 2006년 강동석 예술감독과 서울시가 함께 시작하여,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음악축제로 자리 잡았다. 실내악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조차 어려운 장르로 여겨지지만, 이 축제는 보다 넓은 층의 청중이 실내악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게 해주었다.

이번에는 ‘다다익선’(The More, The Merrier!)이라는 주제로 큰 편성의 실내악을 중심으로 열리며, 총 13회 공연에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자 66명이 참여한다. 평소 독주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연주자들이 서로 함께 화합하며 엮어내는 사운드를 감상하는 것도 큰 재미다.

공연 프로그램도 위트가 넘친다. ‘작품번호 18번’ 공연(4월 28일)에서는 베토벤·생상스·브람스의 op.18이 연주되었고, ‘베토벤의 SNS’ 공연(4월 29일)에서는 베토벤이 오늘날 살았다면 SNS에서 ‘좋아요’를 누를 만한 작곡가들이라 할 수 있는 하이든·리스·모차르트·훔멜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오늘 5일에는 아름다운 한옥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에서 가든 콘서트가 열리고, 비제의 ‘네 개의 손을 위한 아이들의 놀이’가 연주되어 어린이날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며, 6일 가족음악회에는 음악과 마임이 만나는 재미있는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 실내악이 건네는 순수한 음악적 아름다움을 매해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내년 봄도 기대가 된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