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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북한인권 개선, 이젠 말보다 행동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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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탈북민 1호 박사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탈북민 1호 박사

탈북민 출신인 필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미국 국빈 방문 일정 중에 유독 주목했던 장면이 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북한에서 괴롭힘을 당한 끝에 끝내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격려하는 모습이었다.

2016년 북한 관광 중 김정은의 북한 체제 전복 혐의로 17개월간 억류됐던 웜비어는 풀려난 지 6일 만인 2017년 6월 19일 사망해 인권 침해 논란을 빚었다. 웜비어 가족이 2019년 11월 방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으나 당시 청와대는 “일정상 어렵다”며 거부해 ‘인권 변호사’가 북한 눈치를 보며 인권 피해자를 홀대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방미 중 웜비어 가족 만남 환영
북한 동포들의 인권 개선 위해
북에 바깥세상 소식 더 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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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 간담회는 지난 26일 워싱턴의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에서 황준국 유엔 주재 한국대사의 사회로 1시간가량 비공개로 진행됐다. 그 자리에는 정박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 수전 숄티 북한자유연합(NKFC) 의장, 북한 출신으로 미국에서 인권 운동을 하는 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 컬럼비아 대학원에 재학 중인 탈북민 이서현씨 남매, 탈북자 출신인 조셉 김 부시연구소 북한 담당 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웜비어의 모친은 “우리가 서울까지 찾아가 한국 대통령을 만나자고 했지만, 그들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이번에 미국 국빈 방문 중 가슴에 피눈물을 안고 사는 저희를 만나준 김건희 여사의 뜨거운 온정에 목이 멘다”고 말했다. 이어 “악(evil)을 향해서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침묵을 지키면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며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그날 북한 인권 간담회는 북한의 심각한 인권침해 실상을 세계인이 주목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 인권은 철저하게 외면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을 되돌아본다. 당시 서울과 평양의 인권 무시 카르텔은 2500만 북한 동포를 인권 사각지대로 내몰았다. 북한 통치자에게는 집권이 우선이지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적어 놓고 18세 미만 청소년에게 종교를 권유하면 총살하는 정권이다.

문 정부가 그런 북한의 장단에 맞췄으니 개탄스럽다. 살겠다고 남으로 넘어온 두 명의 탈북 청년을 안대까지 씌워 판문점으로 끌고 가 북한군에게 넘겨줬다. 북으로 안 넘어가겠다고 몸부림치는 청년의 모습을 촬영한 북한 정권은 중국과 러시아 등 해외에 파견된 근로자·무역일꾼·외교관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자, 보라. 남조선으로 탈북하면 저렇게 된다”고 사상 교양을 실시한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3만4000여 탈북민이 지금도 북한 인권개선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탈북민은 고통받는 북한 동포들의 대변자이며 그들의 자아와 인권을 개선할 의무를 진 사람들이다. 탈북민들은 대북 전단을 다시 뿌리고 휴전선에서 대북방송을 재개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일방적 재개가 아니라 북한 정권의 인권개선이란 전제 조건을 걸고 등가교환 전략을 구사하자는 것이다.

북한에는 ‘아는 게 적을수록 잘 복종한다’는 말이 있다. 북한에서 인권침해는 인민들이 실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문 정부 시절 강행 처리한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악법이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그 악법의 망령은 오늘도 여의도 국회를 배회하고 있다. 다행히 얼마 전 대법원은 대북 전단이 북한 주민에 실상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인정했다.

지구 위에서 온대 기후권 국가 중에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다. 보편적 천부 인권이 유독 북한 땅에서 유린당하는 참상을 보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침묵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고 일갈했는데 이런 원칙을 철저히 지켜가야 한다.

북한 동포들에게 바깥세상의 정보와 지식을 보내줘 그들을 일깨우는 일부터 시작해 북한 인권 개선의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북한은 표피적 외과수술 한 번으로 달라질 정권이 아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손잡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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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탈북민 1호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