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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산업재해에 잇단 옐로카드, 그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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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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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김용균씨가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사실이 마지막 작업 영상과 함께 보도되기 전까지 산업 현장 사고의 끔찍함은 딱히 주목 대상이 아니었다.
 업무 현장에 조명을 비추기 시작하자 부두에서 일하다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23살 청년과 제빵공장 반죽 기계에 몸이 끼여 삶을 마감한 23살 여성 노동자의 참혹한 실상이 보였다. 한해 200명 넘는 노동자가 이런 식으로 일터에서 죽어 나간다. 분노와 죄책감은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이어졌다.

2018년 11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고 김용균씨 유품. [연합뉴스]

2018년 11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고 김용균씨 유품. [연합뉴스]

 법의 문구는 다소 과격하다.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가 한 명이라도 사망하면 원청 업체의 대표이사를 1년 이상 교도소에 보내겠다는 경고를 담았다. 위험한 노동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넘기는 상황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하청업체 실정도 잘 모르는 원청업체 대표이사를 감옥에 보내면 대기업 경영자가 남아나겠느냐는 재계 반발이 쏟아졌다. 반면 노동계에선 “이 정도 법으론 부족하다”고 맞선다.
 하청업체는 노동자를 보호할 여력이 없고 대기업은 하청업체 근로 환경에 관심이 없는 현실에서 안전의 공백을 법으로 틀어막은 셈이다. 새 법의 위력이 1년 3개월 만에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6일 첫 판결에서 온유파트너스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 6월 형이 선고됐다. 요양병원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16.5m 아래로 떨어진 사고였다. 집행유예로 구속수감은 면했다.

중대재해법 따른 첫 법정구속

 지난달 26일 나온 두 번째 판결에선 원청업체인 한국제강 대표이사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크레인 작업 중 떨어진 방열판에 왼쪽 다리가 깔린 하청업체 직원이 출혈 과다로 숨진 사고다. 과거엔 이런 일로 원청업체 사장이 형사처벌 받는 일은 드물었다. 이제 모든 사망 사고는 대기업 사장에게도 날벼락이다.

중대재해법 따른 첫 법정구속 #판결문에 나타난 엄중한 기류 #근로자 사망시 최대 ‘징역 45년’

 법원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오히려 검찰의 처벌 의지가 더 강해 보인다. 법원은 원청업체에 적용된 여러 죄목을 ‘상상적 경합’으로 판단했다. 상상적 경합은 여러 개의 범죄를 하나의 행위로 본다는 의미다. 원청업체에 적용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등을 사실상 단일한 범죄로 봤다. 그러나 검찰은 각각의 죄를 별도 행위로 판단해 처벌하는 ‘실체적 경합’을 적용해 기소했다. 실체적 경합을 적용하면 여러 개의 범죄로 처벌을 받게 돼 상상적 경합보다 통상 형량이 무거워진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논란이 된 사안으로 법원의 기류는 ‘상상적 경합’ 쪽이다. 법 시행 직후 발간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재판 실무상 쟁점‘(정현희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에 판단 근거를 담았다.

판결문에 나타난 엄중한 기류

그런데도 검찰은 두 사건 모두 각각의 범죄로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두고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를 상상적 경합으로 본 대법원 판례가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에 비춰봤을 때 별개 행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검찰이 법 집행을 엄정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구본선 전 대검 차장)는 해석이 나온다.

법 시행 직후부터 재계와 노동계 모두 보완 요구를 해왔다. 이 와중에 나온 두 판결에선 대기업 경영진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법원과 검찰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후속 판결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대기업 입장에서 처벌을 줄이려면 사망한 근로자 가족의 용서와 선처를 구해야 한다.
 이상훈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원청 업체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면 증거수집이 쉬워지면서 민사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사고가 났다고 고의성이 없는 원청업체의 경영자를 엄벌하는 방식이 우리 법체계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근로자가 사망하고 법인의 잘못이 분명한데도 개인의 역할은 분산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측면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 사망시 최대 ‘징역 45년’

 법의 보완을 기다리기에 앞서 기업들은 더는 깔려 죽고 끼여 숨지는 비극을 방치하지 말라며 옐로카드를 꺼낸 두 건의 중대재해처벌법 판결문을 곱씹어 봐야 한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첫 판결문은 그러나 열람이 제한된 상태다. 당사자가 사생활 비밀 등의 이유로 열람 제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형사소송법 59조 3항에 따른 조치라는 게 법원 측 설명이다.
 두 번째 판결문을 읽다 보면 눈에 확 띄는 대목이 나온다. 원청업체 대표이사에게 적용되는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다. 무려 ‘징역 45년’까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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