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빈방 줄게 연금 다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영국은 2018년 ‘조 콕스(Jo Cox) 고독위원회’ 권고에 따라 고독부를 신설하고 고독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을 임명했다. 조 콕스는 노동당 하원 의원으로 브렉시트를 앞두고 2016년 극우주의자의 총에 사망했다. 동 위원회는 고독 문제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으려 했던 그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본도 2021년에 ‘고립·고독 대책담당실’을 신설하고 세계 2번째로 고독부 장관을 임명했다. 여기에는 ‘1인 가구 시대’라는 사회 변화가 한몫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1인 가구 증가
고령 1인 가구, 곧 청년 앞질러
고령 여성가구 ‘저소득’ 풀어야
일본은 빈집, 한국은 빈방 넘쳐

은퇴와 투자

은퇴와 투자

우리나라 1인 가구 증가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660만에 이르는 1인 가구수는 20년 후에 900만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2005년에 1인 가구수가 불과 310만이었음을 감안하면 가히 상전벽해라 할만하다. 총가구에서 차지하는 1인 가구 비중도 2020년 32%에서 2040년에 38%에 이르게 된다. 2040년에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중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보다 높은 수준이 될 전망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우리나라 1인 가구의 연령별 특성 변화다. 30대 이하 1인 가구수(청년 1인 가구수)는 2005년 132만에서 2020년 245만으로 무려 113만 가구가 증가했다. 청년들의 주거 문제가 근래 핵심 이슈로 떠오른 이유다. 한편, 60대 이상 1인 가구수(고령 1인 가구수) 역시 2020년 223만 가구로 2005년에 비해 125만이 증가했다. 지금까지 전 연령에 걸쳐 1인 가구가 증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연령별 구성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다.

향후 20년 동안 전체 1인 가구수는 여전히 240만이나 증가하지만 이중 청년 1인 가구수는 오히려 27만 감소한다. 반면, 고령 1인 가구수는 무려 250만 증가한다. 그리하여, 지금은 고령 1인 가구수가 청년 1인 가구수의 0.9배에 불과하지만 2040년에는 2.2배, 2050년이면 3배를 넘게 된다. 1인 가구의 주인공이 청년에서 고령으로 넘어가는 대역전이 일어난다. 1인 가구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변화가 있다.

여성의 수명이 길다 보니 고령 여성 가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현재 여성 1인 가구 중 70세 이상이 27.3%에 이르는 반면 남성 1인 가구 중 70세 이상은 8.8%에 불과하다. 앞으로 고령 가구수가 급증하면서 자연히 고령 여성 가구가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2040년에도 현재 성별 구성이 유지된다면, 전체 1인 가구의 25%가 70세 이상 여성 가구가 된다.

여기에는 저소득 문제가 대두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이 직장에서 오래 일한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령 1인 가구 중에서 여성 빈곤층 수는 남성의 1.5배에 이른다.

1인 가구의 주거 점유 유형이 달라진다. 20대 1인 가구는 자기집이 8%, 월세가 64%를 차지하는 데 반해 70세 이상은 자기집에 사는 비중이 65%, 월세 비중이 20%에 이른다. 향후 청년 1인 가구가 줄고 고령 1인 가구가 증가하게 되면 1인 가구의 주거 점유 유형도 월세에서 자가로 옮게 가게 된다. 지금은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주택 수요가 월세를 중심으로 증가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추세가 약화할 것이다.

주거에서 공간 비효율성 문제가 나타난다. 1인 가구 중 20대 이하는 1~2개의 방을 가진 비중이 64%인 반면에 70세 이상은 3~4개의 방을 가진 비중이 83%에 이른다. 1인 가구의 흐름이 청년에서 고령으로 변하게 되면 혼자서 3~4개의 방을 갖고 사는 가구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1년에 몇 번 찾아오지도 않는 자녀 방문을 대비해서 3~4개의 방을 보유하고 있게 되면 공간 효율성 문제가 대두한다. 아파트 중심이라 빈방의 임대도 쉽지 않다. 일본이 빈집이 문제라면 우리나라는 빈방이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 1인 가구가 청년에서 고령으로 바뀌면서 ①고령 여성 1인 가구가 지배 가구가 될 것이며 ②주거 점유의 유형도 월세에서 자가의 비중이 높아지고 ③1인 가구의 빈 공간이 많아진다.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령 여성 1인 가구 증가에 대해서는 저소득 대책과 함께 고독 및 요양 대책이 필요하다. 가족 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공간과 관련해서는 고령자에게 최적화된 소규모 주택 공급을 통한 주택의 다운사이징과 주택을 통한 현금흐름 창출이 필요하다. 고령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고립과 공동체의 분절화에 대해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1인 가구 변화를 단순히 총량 증가라는 면으로 대응하면 잘못이다. 1인 가구가 청년에서 고령자로 바뀌는 패러다임 변화와 여기에서 파생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