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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800만원 어떻게 갚나"...임창정에 쓴 수법, 줄줄이 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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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로 졸지에 수억원의 빚더미에 앉은 투자자들은 손실로 인한 박탈감과 추심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 라덕연 R투자자문사 대표 등은 점조직을 꾸린 뒤 원금의 수배에 달하는 레버리지 투자(CFD)를 대신했는데 수년 간 우상향하도록 관리해 온 특정 종목의 주가가 지난 24일 폭락하자 피해자들은 예상치 못한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됐다. 일부 피해자는 적게는 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월 수천만원까지 빚을 갚아야할 처지에 놓였다. 피해자 중엔 라 대표 등 점조직의 상층부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였다.

가져가야할 수수료를 내 통장에?…“얼마나 믿으면”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로 불거진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과 금융당국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2일 오전 투자자 모집 창구 역할과 수수료 명목의 돈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는 서울 강남구의 한 골프아카데미의 문이 닫혀 있다. 이 골프아카데미의 대표는 모집책 역할을 한 전직 프로골퍼 안모씨다. 연합뉴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로 불거진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과 금융당국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2일 오전 투자자 모집 창구 역할과 수수료 명목의 돈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는 서울 강남구의 한 골프아카데미의 문이 닫혀 있다. 이 골프아카데미의 대표는 모집책 역할을 한 전직 프로골퍼 안모씨다. 연합뉴스.

 3일 중앙일보와 만난 피해자 A씨는 “라씨 등을 잘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지만 결국 믿게 됐다”고 말했다. A씨는 “라씨 측이 (수익금의) 50%는 저에게 주고 나머지 50%는 자신들이 가져가는 구조였다”며 “그런데 투자금과 수익금이 높아져도 제 계좌에서 (수수료를) 가져가지도 않고 오히려 내 명의의 다른 계좌에 수수료를 예치했다”고 말했다. A씨는 “얼마나 우리를 믿으면 가져가야 할 수수료를 내 계좌에 둘까 생각했다”며 “여러 계좌를 뚫어 신용대출까지 일으킬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A씨는 “집안이 풍비박산이고 이대로 은행 채권 추심이 들어오면 살 집도 없게 됐다”며 “너무 암담해 잠도 못 잔다”고 말했다.

투자자에게 일시적으로 거액의 예금을 보유하게 만드는 것은 라씨 등이 신뢰를 얻는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가수 임창정씨도 같은 방법에 넘어갔다. 2022년 11월 라씨와 모집책 역할을 한 전직 프로골퍼 안모(33)씨 등은 임씨에게 투자 명목으로 계약서도 없이 25억원을 임씨 회사의 계좌에 송금했다. 당시 임씨가 “나도 검증을 해야지 않겠냐”고 했더니 안씨 측이 “어떻게 증명하면 되겠나.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임씨 측은 25억원을 돌려줬지만 결국 30억원을 라씨에게 재투자했다.

 “소개시켜준 회장님도 초상집…다단계 연상”

지난달 28일 'SG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투자자 모집과 수수료 편취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는 서울 강남의 한 실내골프연습장 앞에 한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8일 'SG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투자자 모집과 수수료 편취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는 서울 강남의 한 실내골프연습장 앞에 한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라씨 일당에게 신분증이나 계좌를 맡기진 않았지만 문제의 시세조종 의혹 종목에 직접 투자한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자매가 함께 투자해 약 3억1000만원의 피해를 봤다는 B씨는 “주변에 주식을 잘 안다는 회장님을 통해 (시세조종 의혹) 종목에 돈을 넣었다”며 “저희를 소개한 회장님은 라대표에게 계좌를 맡기고 투자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도 지금 초상집 분위기”라고 말했다. A씨 역시 “안씨의 부친을 아는 지인의 말을 믿고 신분증과 차명 휴대전화를 개설해줬다”고 말했다. 안씨의 부친은 가구업체를 운영하던 인사로 안씨와 함께 투자금이 큰 VIP모집을 담당했다고 한다.

증권·경제범죄 수사 경력이 풍부한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투자자들은 라씨나 안씨 등을 알지 못하고 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개받은 경우가 대부분으로 보인다”이라며 “라씨 일당이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며 일종의 다단계를 연상시키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0억→-3억…채권추심 공포에 떠는 피해자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투자자들 사이에서 추심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다. 3일 서초동에서 만난 피해자 C씨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 계좌에 추정 자산이 10억이었는데, 24일 하한가를 치고 미수금 2억2700만원이 찍혔다”며 “오늘 (증권사에서) 전화 와서 울고불고했다. ‘전 재산을 다 넣어서 방법이 없다’고 하자 증권사에선 ‘12개월 할부로라도 갚으라’고 하는데 원금 상환액만 월 1800만원”이라고 호소했다.

3일 기준 총 340여명의 피해자가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선 추심 상황을 공유하는 문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피해자들은 “XX 증권은 아직이다”, “증권사 변제계획서는 어떻게 써서 내셨냐”며 정보를 수소문하고 있다. 피해자들 중 일부는 R 투자자문사에 맡긴 휴대전화를 돌려받지 못해 추심 문자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금감원에 확인했었는데 분명 합법 업체였다” “골프장 법인을 미국에 세운다며 엄청 홍보했다” 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법 위반 의심되지만…‘금융위 진정’ 기대 힘든 이유

 피해자 측은 채권추심을 유예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을 금융위원회 측에 넣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자들 자체 결정으로 이른바 ‘고위험 고수익’ 투자에 수억원에서 수십억을 넣은 것이기 때문에 전세 사기 등과는 경우가 다르다”며 “결국 피해자들이 고소를 통해 형사소송을 치르고, 그 결과에 따라 민사적인 변제를 주장하는 방식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씨는 “변호사 수임료까지 손해 보는 거면 방법이 없다”며 “개미들은 좋은 마음으로 ‘너도 사봐’ 하면서 딸·아들한테까지 가지치기 한건데…”라며 말을 잇지 못 했다.

법조계에선 라씨 등의 행위가 자본시장법·전기통신사업법·전자금융거래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사법절차를 통해서 얼마나 피해를 복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수사 결과 라씨 등의 행위가 고의적인 사기로 규명된다면 이를 토대로한 손해배상 소송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그런 경우에도 실질적인 피해회복 여부는 자신도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라씨 등에게 남은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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