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핀란드가 자국 내 미군기지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안보 불안을 느낀 핀란드는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우산 아래 들어간 데 이어 미군 주둔이란 안전판까지 확보하려는 모습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핀란드 최대 일간지 헬싱키 사노마트에 따르면 핀란드 정부는 이미 미국과 미군기지 건설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미카엘 안텔 핀란드 외무부 정치외교 담당 부국장은 "안보협력 강화를 위해 미국과 양자 간 '국방협력협정(DCA)'을 맺고, 이를 토대로 핀란드에 미국의 주요 군사 인프라 건설을 허용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며 "지난주 수도 헬싱키에서 미국 측과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고 이날 밝혔다.
안텔 부국장은 또 "미군기지는 두 곳 이상이 될 수 있다"며 "성사되면 핀란드 내 미군 병력 배치, 군수물자 조달 및 저장 등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안보 상황에서 미국과 신속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미군기지의 규모와 배치 병력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안텔 부국장은 미국의 F-35 스텔스 전투기가 배치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앞서 지난해 핀란드는 노후화된 핀란드 공군의 F-18 전투기를 교체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F-35 전투기 64대를 94억 달러(약 12조5000억원)에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미국은 나토 회원국의 6개 공군기지에 전술핵무기를 두고 있다. 유사 시 F-16ㆍ토네이도 전투기 등으로 투발할 수 있는데, F-35에 탑재할 수 있는 개량형 전술핵폭탄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이와 관련, 현지 매체는 "전술핵무기 배치 등은 이번 DCA 논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1945년부터 75년간 중립국을 유지했던 핀란드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역내 안보 불안정성이 커지자 나토 가입을 추진했고, 지난달 4일 나토의 31번째 정식 회원국이 됐다. 이로써 핀란드는 '동맹국이 침공받았을 때 공동 방어한다'는 나토 헌장 제5조의 적용을 받게 됐다.
마티 페수 핀란드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뉴스위크에 "핀란드는 러시아의 침략을 억제하기 위해 소규모라도 미군이 주둔하길 희망할 것"이라며 "나토와 별개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억지력 강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설립에 대한 핀란드 내 여론은 분분하다. 최근 현지 방송 MTV 여론조사에 따르면 핀란드 국민은 나토 가입엔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으나, 나토나 미군의 핀란드 영구 주둔에 대해선 39%만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규모 미군 병력의 영구 주둔이 아닌 군수품이나 비축 물자만을 핀란드에 배치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은 전 세계 80개국 이상에 약 750개의 군사기지를 갖고 있다. 이중 유럽 전역에 6만명이 주둔하고 있는데, 독일에 가장 많은 3만3900명이 배치돼 있다. 미국은 또 다른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덴마크와도 DCA 체결을 추진 중이다. 스웨덴 역시 핀란드처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튀르키예 등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 회원국이 되진 못했다.
이와 관련, 지난 1월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런 협정은) 국가간 안보 파트너십을 심화할뿐더러, 다자 안보 작전에서 긴밀한 협력을 확보하는 등 대서양 전역의 안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