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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 최고위-온건 원내…묘하게 닮은 여야 ‘냉온’ 지도부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 인선으로 내년 총선을 이끌 여야 지도부 진용이 모두 갖춰진 가운데 각 당의 지도부 구성이 묘한 공통점을 보인다. 당원이 뽑은 최고위 지도부는 설화가 끊이지 않는 강성파 일색이고 의원이 뽑은 원내대표 및 원내지도부는 비교적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지난 3월 8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장예찬 청년 최고위원, 조수진·김병민 최고위원, 김기현 대표,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왼쪽부터)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 3월 8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장예찬 청년 최고위원, 조수진·김병민 최고위원, 김기현 대표,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왼쪽부터)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국민의힘의 경우 김기현 대표가 뽑힌 3·8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김재원·김병민·조수진·태영호 최고위원(득표순),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중 김병민 최고위원을 제외하곤 모두 강성파로 꼽힌다. 18년간 유지된 ‘국민 여론조사 30% 반영’ 룰을 지우고 당원 100% 투표로 진행돼 나온 결과다.

최고위원 중 1등으로 뽑힌 김재원 최고위원은 선출 직후부터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전광훈 목사 우파 천하 통일” “제주 4·3은 격이 낮은 기념일” 등 쉴 새 없이 설화를 일으켰다. 태영호 최고위원은 “4·3 사건은 김일성 지시로 촉발했다” “Junk(쓰레기) Money(돈) Sex(성) 민주당” “김구 선생은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했다”는 말을 쏟아냈다.

당 중앙윤리위는 결국 지난 1일 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했는데, 이들 외에 조수진 최고위원 역시 지난달 “밥 한 공기 비우기” 캠페인을 제안했다가 “징계 대상이 돼야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민주당도 비슷하다. 이재명 대표가 뽑힌 지난해 8·28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정청래·고민정·박찬대·서영교·장경태 최고위원(득표순) 중 고민정 최고위원은 강성 친문계, 나머지 넷은 강성 친명계로 분류된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대선·지방선거 연패 직후 치러진 터라 강성 당원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난해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장경태ㆍ박찬대ㆍ고민정 최고위원, 이재명 대표, 정청래ㆍ서영교 최고위원(왼쪽부터)이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장경태ㆍ박찬대ㆍ고민정 최고위원, 이재명 대표, 정청래ㆍ서영교 최고위원(왼쪽부터)이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장경태 최고위원은 지난해 “빈곤 포르노” 발언으로 국민의힘으로부터 국회 윤리위에 제소된 데 이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 중 화동의 볼에 입맞춤한 것을 두고 “미국에선 성적 학대로 간주한다”고 주장해 또 제소됐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을 비판하려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해 빈축을 샀다.

숱한 막말로 유명한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 1월 이재명 대표의 검찰 조사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을 밀쳐내는 등 이재명 호위무사를 자처 중이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지난해 이태원 참사 직후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됐다면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고, 서영교 최고위원은 대통령실 영빈관 신축을 비판하려고 “군 장병의 피복 예산을 깎았다”고 주장했는데 추후 거짓으로 드러났다.

반면 현역 의원이 뽑는 원내대표는 양당 모두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평가다. 지난달 선출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지지층만 바라보는 극단적 언행이 난무하여 정치 불신이 높아진다. 정책 중심의 원내 운영과 합리적 메시지로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외쳤다.

지난달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지도부가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왼쪽부터 태영호 최고위원,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지도부가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왼쪽부터 태영호 최고위원,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 연합뉴스

특히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선 경쟁자인 김학용 의원이 강성파 모 의원을 원내수석부대표로 내정했단 소문에 막판 표가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당시 당내에선 “원내지도부까지 강성 일색이면 총선은 어렵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렇게 선출된 윤 원내대표는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실무에 능하고 당내 두루 평가가 좋은 이양수 의원을 원내수석부대표로 임명했다.

민주당 역시 “당의 균형을 잡는 보완재 역할을 하겠다”고 외쳐온 박광온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비주류인 이낙연계였지만 4명 후보 중 과반 득표로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다. 중도 성향인 박 원내대표는 2일에도 “지지자들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고, 반사 이익만으로도 이길 수 없다”며 민주당의 목표를 ‘확장적 통합’으로 내걸었다.

지난 1일 단행한 원내 지도부 인선도 기존 지도부와 다른 색채를 보였다. 원내수석부대표로는 유연하다는 평을 받는 송기헌 의원을 임명했다. 원내대변인엔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출신의 김한규·이소영 의원을 임명했고 추가로 경제담당 원내대변인을 신설해 증권사(미래에셋대우) 사장 출신인 홍성국 의원을 임명했다. 여권에서조차 “과거 엘리트 한나라당을 보는 듯하다”는 말이 나왔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신임대표단 인선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성국 경제 담당 원내대변인, 김한규 원내대변인, 박광온 원내대표, 송기헌 원내수석부대표. 뉴시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신임대표단 인선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성국 경제 담당 원내대변인, 김한규 원내대변인, 박광온 원내대표, 송기헌 원내수석부대표. 뉴시스

강성 최고위에 온건한 원내지도부가 꾸려진 건 여당이든 야당이든 공히 총선을 위한 생존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1000만 당원 시대’에 당원 투표가 주가 되는 최고위 지도부는 정치 성향이 뚜렷한 당원의 표심을 얻으려 점점 거친 말을 하고, 당선되면 다시 강성 당원에 끌려다니는 악순환을 보이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총선은 결국 중도층 싸움”이라며 “제 밥그릇이 걸린 의원들이 당이 강성 일색으로 가는 걸 제어한 결과가 현 원내지도부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출범 초기이긴 하지만 양당에선 모두 신임 원내 지도부가 총선을 앞두고 각종 민생 현안을 잘 풀어나갈 것이란 기대감도 나타난다. 각각 경찰ㆍ기자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윤·박 원내대표는 2일 첫 회동을 갖고 “무쟁점 대선 공약 등에 대해서 여야 원내수석들이 모여 처리할 부분을 협의하기로 했다”(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 브리핑)고 한다. 양당에선 “이제야 정치다운 정치가 시작되는 것 같다”(국민의힘 보좌진) “대책 없이 싸우기만 하는 여야만 보던 국민 피로감도 줄어들 것”(민주당 보좌진)이란 평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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