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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 한국 뿐…전세가 월세되니 건보료 5만→0원 뚝,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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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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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 지사. 중앙포토

건강보험공단 지사. 중앙포토

잇따른 전세 사기 여파로 전세 대신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월세 100만원 넘는 오피스텔 임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전세의 위험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이다. 반면 월세 전환은 가처분소득을 줄이기 때문에 절대 달갑지 않다. 다만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일 경우 월세로 전환하면 건보료가 줄어드는 뜻하지 않은 효과가 생긴다.

세계서 보기 드문 전월세 건보료 #지난해 28만세대 2755억원 부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크게 감소 #"월세부터 없애거나 전면 폐지를" #

전세를 월세로 바꾸면 건보료가 대폭 줄어든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는 직장인과 달리 재산에 건보료를 부담한다. 본인 소유 재산은 물론 전세나 월세에도 부담한다. 지난해 약 28만 세대가 2755억원을 냈다. 전세금 전액에 부과하지 않고 30%만 잡는다. 여기서 재산 공제(5000만원)를 한 뒤 부과한다. 가령 전세가 3억1000만원이면 이의 30%인 9300만원을 먼저 잡고, 5000만원을 공제해 4300만원에 물린다. 재산 건보료는 60등급(건강보험법 시행령)으로 나누어져 있고, 등급별로 점수가 있다. 점수에 점당 단가(올해 208.4)를 곱해 산출한다. 이렇게 하면 4300만원에 대한 재산 건보료는 월 5만850원이다.

난수표 같은 전세·월세 건보료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좀 더 복잡해진다.

◇전세 3.1억원→'보증금(2억원)-월세'로 돌리면=서울의 전월세 전환율 5%(한국부동산원, 2월 기준)를 적용하면 1억1000만원에 해당하는 월세는 46만원이다. 전세 3억원을 '보증금 2억원-월세 46만원'으로 전환한 것이다. 건강보험법에서는 월세를 전세금으로 환산해 부과한다. 월세 46만원은 전세 1840만원이다. 이것과 보증금 2억원을 더하면 총 전세금이 2억1840만원이 된다. 이에 대한 건보료가 2만210원이다. 전세금 1억1000만원을 월세로 돌렸더니 재산 건보료가 40%로 줄어든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세 3.1억원을 월세로 돌리면=서울 기준으로 월 129만원이다. 이걸 전세로 환산하면 5160만원이다. 그러면 건보료는 0원이 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전세 2억원일 때 건보료는 1만3750원이다. 전액 월세(83만원)로 돌리면 건보료가 0원이 된다.

월세 건보료 계산식 34년간 방치  

월세 건보료가 낮은 이유는 전세 전환 지수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1989년 지역 건보를 도입할 때 '월세 거주자=사회적 약자'라고 보고 건보료를 매우 낮게 잡았다. 34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전직 복지부 고위공무원 A씨는 "아직도 그대로라고요?"라고 반문했다. 89년 당시 금리가 12%를 넘나들 정도의 고금리 상황을 반영한 것인데, 34년간 주택시장이나 금융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않았다.

지난해 건보료 총액은 76조7703억원이다. 이중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약 10조원이며 소득분이 54.06%, 재산(본인 소유) 41.37%, 자동차 1.84%이다. 전월세는 2.73%이다. 전월세 건보료 부담자는 약 28만 세대이다. 2021년 126만 세대에서 크게 줄었다. 지난해 9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면서 재산 공제를 500만~13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세 계약을 갱신할 때 월세로 돌리면 다음 달부터 자동으로 건보료가 내려간다. 확정일자 도장을 받은 경우 바로 정부 전산망에 등록돼 매달 업데이트된다. 확정일자 확인을 늦게 받아도 소급해 건보료에 적용한다. 전세 등기를 하면 자동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서류를 들고 건강보험공단 지사를 방문해야 한다.

전세와 월세 건보료의 불균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월세의 전세 환산 지수를 올려서 월세 건보료를 높인다? 그건 아닌 듯하다. 월세나 전세에, 나아가 재산에 건보료를 물리는 그 자체가 문제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맞다. 재산 건보료를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재산에 건보료를 물리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일본도 재산 건보료를 점점 축소하고 있다. 자동차 건보료는 한국에만 있다.

소득 다 드러나는데 재산에 왜 부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재산 건보료는 1989년 자영업자가 주류인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이 낮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도입했다. 34년 전과 지금은 소득 파악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물건을 살 때도 신용카드를 쓸 정도다. 대부분의 소득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지역가입자에게만 재산 건보료를 매기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특히 은퇴자를 비롯해 소득이 100% 드러난 사람은 이중부과와 다름없다고 느낀다. 현금 소득이라곤 국민연금 정도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고통이다. 한 은퇴자는 지인의 사업체 직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편법을 동원한다. 근거를 남기기 위해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월급을 계좌로 받는다. 그리고 현금으로 되돌려준다. 그랬더니 30만원 넘던 건보료가 몇만 원대로 줄었다.

가장 깔끔한 방법은 재산·전월세·자동차를 없애는 것이다. 직장 건보료처럼 소득에만 물리자는 뜻이다. 하지만 당국은 난색을 보인다. 왜냐하면 재산·전월세·자동차 건보료 수입만큼 구멍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세 가지 건보료가 4조6341억원이었다. 전체 건보료 수입의 6%를 차지한다. 이를 대체할 만한 부과 대상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2018년 부과체계 개혁 때 양도소득·퇴직소득 등에 부과하자는 안이 나왔으나 없던 일이 됐다. 최근에는 일용소득에 부과하자는 안도 나온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세와 월세 건보료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월세 건보료를 올리는 건 말이 안 된다. 재산·전월세 건보료를 없애는 게 맞지만 그게 힘들다면 재산 공제(5000만원)를 확대하고 월세 건보료만이라도 먼저 폐지하는 게 맞다"고 말한다. 신 박사는 "그나마 전세는 재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월세는 쓰는 돈, 즉 비용인데 이걸 전세로 환산해 보험료를 매기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