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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기숙이 소리내다

총선 압승 민주당, 왜 尹에게 졌나…3년 전, 이 제도가 문제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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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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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을 앞두고 일반 국민의 의사가 전적으로 반영된 후보를 뽑는 경선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일반 국민의 의사가 전적으로 반영된 후보를 뽑는 경선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왜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 후 2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을까. 그것도 탄핵의 폐허로부터 겨우 일어선 국민의힘과 경험이 부족한 정치 초년생 후보에게 말이다. 왜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된 지 1년도 안 돼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 수준이고, 국민의힘의 새 대표 체제는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양당 외면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문제는 무엇일까. 이를 타개하기 위한 길은 없을까.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도입한 100% 안심번호 공천시스템을 허물고 권리당원에게 50%의 공천권을 준 제도적 변화가 정권교체의 시작을 알리는 나비의 날갯짓이라고 나는 진단한다. 이해찬 대표가 “20년 가는 정당”을 외치며 당원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 의도치 않게 민주당을 포퓰리즘 정당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민주적으로 사용하는 절제와 관용을 훈련 받은 적 없는 당원에게 너무 큰 권력을 준 게 비극의 씨앗이었다.

2016년 1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차 중앙위원회의에서 대표직을 사퇴한 문재인 대표(왼쪽)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1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차 중앙위원회의에서 대표직을 사퇴한 문재인 대표(왼쪽)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다면 어떻게 민주당은 그 공천 제도로 2020년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할 수 있었나. 민주당의 대승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과 외신의 극찬, ‘조국 선거’(2019년 조국 사태의 영향)는 피하고 위성정당 창당에선 명분을 잃지 않은 이해찬 대표의 선거 관리, 새누리당의 분열과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의 자폭성 선거운동에 기인한다. 민주당의 새로운 공천 제도는 그때까지만 해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경선 탈락 두려움에 당 잘못 침묵

문제는 총선 승리 후에 시작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공수처법) 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한 금태섭 전 의원이 무명의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하고, 김해영 전 의원이 본선에서 패하자 그 공포가 과장되면서 당원의 영향력이 부풀려진 것이다. 당론과 다른 목소리를 냈던 박용진, 조응천 의원은 승리했음에도 당원에게 찍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잘못된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의원과 당 지도부는 물론 장관도 당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당원이 문자폭탄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의원과 지도부를 압박한 건 꽤 오래됐는데 왜 이전에는 문제가 없었나. 문재인 후보 지키기, 박근혜 탄핵, 의원내각제 개헌 저지 등에서 문파로 통칭하는 강성당원의 활동은 맹렬했지만 적어도 민심을 거스르진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활동은 민주당에 득이 됐다. 이때만 해도 서로 의견이 다르면 논쟁을 통해 문파를 설득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탄핵과 대선에서 과도한 효능감을 경험한 강성당원들은 오만해졌다. 문 대통령의 초기 높은 지지도에 힘입어 새로운 지지자가 대거 유입되자 권력 맛을 본 지지자들은 의원 길들이기를 시작했다. 민주당이 명분을 잃은 결정적 계기는 조국 사태였지만, 총선 승리로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선거 때 숨죽였던 강성당원은 승리 후 검찰과 언론에 복수극을 시작했다. 일부 장관마저 민생과 개혁은 외면한 채 강성당원에 휘둘리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로 만들어줬다.

21대 총선 정당별 의석수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1대 총선 정당별 의석수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인터넷의 발달은 민주당 게시판과 SNS에서 강성당원의 의사가 과대 대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이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한 의원도 적지 않았겠지만 다음 총선에서 경선 탈락이 두려워 침묵을 택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포퓰리즘이 민주당의 주요 이념이 되었다. 2021년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시작해 2022년 대선, 지방선거에서 3연패를 했지만 민주당은 지금도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며 강성당원이 자신들의 오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끌려 다니자 당 지지도 바닥  

윤석열 당선의 일등공신은 이준석 전 대표와 20∼30대 남성 당원이라 할 수 있다. 이준석을 당 대표에서 제거하고, 유력한 후보를 하나씩 주저 앉히며 김기현 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은 민주정당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당 대표 경선과정에서 후보들이 경쟁하며 반짝 올랐던 국민의힘 지지도는 이변 없이 윤심 뜻대로 당 지도부가 꾸려지자 바닥을 찍었다. 당이 일방적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제어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자 민심도 더는 기대할 게 없다며 등을 돌린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8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입장하며 당대표 후보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3월 8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입장하며 당대표 후보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우리 정당은 당 대표 선출이나 후보 경선에서 민심을 반영하는 다양한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정당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양당은 후퇴했다. 민주당이 포퓰리즘 정당으로 전락했다면, 국민의힘은 최고 지도자의 심기만 살피느라 당원의 목소리가 실종된 권위주의 정당으로 후퇴했다. 포퓰리즘과 권위주의는 다름을 용인하지 않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흑백논리가 만연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공천권 국민에게 돌려줘야  

정당을 민주적으로 혁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천권을 정치권력의 원천인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모든 정당이 상향식 예비선거를 도입하고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정한 관리를 맡는다면 역선택의 두려움 없이 국민이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공천권을 둘러싼 당내 권력 투쟁이나, 2012년 한나라당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사건도 더는 벌어질 이유가 없다. 당 대표는 당을 위한 봉사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관념론적 진보 지식인은 유럽의 이념정당을 이상으로 간주해 공천권을 당원에게 주면 한국의 정당도 유럽 수준이 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미국에 유럽식 이념 정당이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미국엔 계급적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구조가 완전히 다른 21세기 미국이나 한국에서 20세기식 유럽 정당이 적실성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겉모습만 베껴온다고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거란 가정도 터무니없다.

미국식 개방 경선이 외부 무분별한 유권자의 유입에 의해 도널드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예비경선이 없는 유럽 국가를 먼저 휩쓸었고 지금도 기승 중이다. 미국은 포퓰리즘을 제도적으로 배제했기에 안심하다 트럼프의 당선을 경험하게 됐다. 미국 국민은 포퓰리스트의 당선이 얼마나 위험한지 학습했고, 그 결과 트럼프 재선을 막아냈다.

제도는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 집단적 학습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토양에 맞게 착근해 나간다. 민주당은 2016년 100% 안심번호시스템공천을 통해 새누리당의 승리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제1당이 되었다. 이런 상향식 개방경선이 본선 경쟁력에도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 역사상 최초로 30대 당 대표를 선출했고 다수의 청년을 당원으로 영입했다. 양당의 성취가 예비경선 도입을 통해 계승, 발전돼 깨끗하고 공정한 총선 경쟁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