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 군기 빠졌으면…러, 술취한 군인 '땅구덩이'에 가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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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영병 속출에 만취 전투까지…. 러시아군이 병사들의 이런 심각한 기강 해이에 몸살을 앓고 있다. 급기야 문제 병사를 땅 구덩이 속에 넣는 등 중세 시대에나 했을 법한 가혹한 처벌로 내부 단속에 나섰다는 서방 군 당국의 첩보가 공개됐다.

러시아군 지휘관들이 군기를 잡기 위해 음주 등 문제를 일으킨 병사에 대해 땅 구덩이에 넣는 등의 처벌을 내리고 있다고 영국 국방부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밝혔다. 사진은 러시아 병사들이 지난 4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승전기념일 군사 퍼레이드 리허설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러시아군 지휘관들이 군기를 잡기 위해 음주 등 문제를 일으킨 병사에 대해 땅 구덩이에 넣는 등의 처벌을 내리고 있다고 영국 국방부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밝혔다. 사진은 러시아 병사들이 지난 4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승전기념일 군사 퍼레이드 리허설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국방부는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황 정보를 갱신하면서 "최근 몇 달간 러시아군 지휘관들이 규율을 위반한 병사들을 구덩이 모양의 '진단(Zindan)'에 구금하는 방식으로 처벌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런 처벌은 음주나 탈영, 명령 불복종 등 군 기강을 해친 병사들에게 내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 감옥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진단'은 땅을 파고 그 위를 쇠창살로 막아 급조한 구덩이 형태의 임시 감옥이다.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쓰인 처벌 수단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진단에 감금됐다는 사진 기록도 남아있다. 뉴스위크는 이를 근거로 수 세기 전인 중세 시대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러시아 독립 매체 아스트라도 "음주 문제를 일으킨 러시아군 장병이 진단에 갇혀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는 내용을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은 러시아 남서부 사라토프 지역에 있는 99연대 정찰대 소속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지난 4월 도네츠크 바흐무트 마을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이 지난 4월 도네츠크 바흐무트 마을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이처럼 군기 잡기에 나선 건 우크라이나 전황이 불리해진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쟁 초기 몇 개월만 해도 러시아군 지휘관 상당수는 징집을 거부한 군인들을 조용히 귀국시키는 등 규율을 집행하는 데 있어 비교적 가벼운 접근법을 택했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주요 전선(북동부 하르키우와 남부 헤르손)에서 밀리면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영국 국방부의 설명이다.

특히 지난해 1월 발레리 게라시모프(68) 러시아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이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에 임명된 이후 이런 경향이 짙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직후, 참전한 러시아 군인 전원에 비공식 군복과 민간 차량, 휴대전화 사용 등을 금지하고 머리와 수염을 짧게 깎으라고 명령하는 등 군 기강 세우기에 나섰다.

문제는 러시아군 장병의 일탈과 사기 저하가 심각해 군기 위반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즉 군기 잡기가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러시아군 사상자 가운데 일부는 음주 등 전투와 상관없는 원인으로 발생했다고 영국 국방부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자포리자의 한 훈련장에서 군사훈련 중 대전차 자주포(SPG-9)를 발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자포리자의 한 훈련장에서 군사훈련 중 대전차 자주포(SPG-9)를 발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정보기관을 통해 입수한 우크라이나 전황 정보를 매일 발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영국 정보 당국이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선전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한편 CN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의 봄철 대공세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러시아도 국방차관을 전격 교체하는 등 대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알렉세이 쿠즈멘코프 대령을 국방차관에 임명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차관은 사실상 병참의 최고 책임자이다.

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드니프로내 주거지역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드니프로내 주거지역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을 앞둔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병참 책임자를 교체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러시아 측은 구체적인 교체 이유를 밝히진 않았으나, 전날 러시아가 2014년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 내 유류 저장고가 우크라이나군의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은 게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으며 공세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난달 28일엔 중부 드니프로·크레멘추크 등을 공격해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2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어 지난달 30일엔 동부 바흐무트의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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