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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만 20만원'이란 위스키, 서민 술 때문에 못깎아준다…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3월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열린 위스키 할인 행사에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열린 위스키 할인 행사에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귀족의 술’로 불리는 위스키에 붙는 세금을 낮춰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다. 정부는 “신중히 검토한다”면서도 당장 개편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위스키 세금을 낮출 경우 ‘서민의 술’ 소주에 붙는 세금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다.

위스키에 붙는 주세(酒稅)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배경은 최근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를 중심으로 위스키가 인기를 끌면서다. 1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3월 스카치·버번·라이 등 위스키 수입량은 8443t이었다. 1년 전보다 78.2% 급증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1분기 기준 최고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홈술(집에서 먹는 술)·혼술(혼자서 먹는 술) 문화가 확산하고 MZ세대를 중심으로 색다른 술을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위스키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젊은 층에 유명한 스코틀랜드산 발베니 12년 더블 우드(700㎖)의 경우 지난 2월 한 대형마트가 1200병을 11만원에 팔았는데도 당일 완판됐다. 인기를 끈다고 해도 위스키는 여전히 비싼 술이다. 고가의 재료가 들어가고 장기간 숙성해야 해 다른 주종에 비해 출고가 자체가 높다. 여기에 높은 세금도 한몫한다.

위스키는 1968년부터 출고가가 높을수록 많은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를 적용해왔다. 대부분 수입하는 만큼 관세 20%를 부과한 뒤 종가세에 따라 주세 72%를 매긴다. 여기에 교육세, 부가가치세도 붙는다. 예를 들어 10만 원짜리 위스키는 주세가 7만2000원, 교육세가 2만1600원(주세의 30%)이다. 여기에 부가세(10%)까지 얹으면 세금만 11만원이 넘는다. 같은 도수, 같은 용량의 20만 원짜리 위스키는 세금만 20만원 이상으로 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위스키에 붙는 세금을 낮추자는 주장은 종가세를 양이나 알코올 도수에 비례해 과세하는 ‘종량세’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부는 2020년부터 맥주·탁주에 대해 적용하던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꾼 선례가 있다. 수입 맥주의 공세가 거센 상황에서 재료 품질을 높이기 어렵고 주세 부담을 겪는 맥주 업계의 고충을 고려했다. 종량세로 바꾼 뒤 캔맥주 기준 주세가 L당 291원 줄었다.

하지만 위스키와 함께 증류주로 묶여 종가세를 적용하는 소주와 과세 형평성이 걸림돌이다. 만약 증류주를 종량세로 바꾸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 판매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 소주 원료인 주정(酒精) 가격이 최근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소줏값 인상 요인이 있는데 세금까지 올리면 소줏값 인상의 명분만 만드는 셈이다. ‘식당 소주 6000원’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증류주에 붙는 주세를 종량세로 바꿀 경우 위스키의 세 부담은 낮아지는 대신, 소주의 세 부담이 높아질 수 있다”며 “고소득층이 주로 마시는 위스키의 세금을 줄여주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이 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위스키는 종량세, 소주는 종가세를 따로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과거 위스키를 사치품으로 분류해 200% 이상 세금을 매긴 적도 있었다. 그러자 1997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같은 술(증류주)에 다른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WTO는 미국과 EU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우리 정부에 주세법 개정을 권고했다. 증류주 주세를 72%로 통일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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