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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학폭 끝 찾는 '아늑한 지옥'…소녀 죽음 몬 '울갤' 실체 [울갤 리포트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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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16일 10대 청소년이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하던 실시간 방송을 켜둔 채였다. 수십 명이 생중계된 그의 죽음을 지켜봤다. 온라인 목격자 일부는 조롱했고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부추겼다. 이들 중 다수는 숨을 거둔 소녀가 활동하던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울갤)’ 이용자들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함께 한 사람도 20대 울갤러(우울증 갤러리 이용자)였다.

이날 이후, 울갤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우울증을 앓던 미성년자 울갤러들의 죽음이 처음이 아닐뿐더러, 다수에 달할 거라는 증언이 나왔다. 약물 오남용이나 온라인 상의 성희롱과 스토킹, 미성년자 성착취나 추행 등 범죄가 만연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울갤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나날이 높아지는 1020세대의 자살률과 우울감이 응축되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상당히 아픈 단상(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라고 진단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울갤처럼 우울한 젊은 세대가 모이는 공간은 늘 존재해왔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우울한 아이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낸다”며 “그게 살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위터나 오픈채팅방, 디스코드 등 각종 SNS 상에선 또다른 ‘우울계’ ‘우울방’들이 쉽게 포착된다. 디시인사이드에선 울갤 성장 이전 10년간 ‘아웃사이더 갤러리’, ‘좌절 갤러리’ 등이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중 울갤이 대형 커뮤니티로 성장한 배경으론 접근성이 꼽힌다. 2021년 울갤러 생활을 접었다는 한 경험자는 “울갤은 회원 가입이 필요 없고 간단한 검색만으로 올 수 있는 현실도피 창구였다”고 말했다.

울갤 리포트① 울갤러 10인 심층 인터뷰

 중앙일보는 지난 2주간 울갤을 들여다봤다. 울갤러 1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울갤에 올라오는 글들을 모니터링하며 울갤에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 울갤이 작동하는 방식, 제기된 의혹의 실상 등에 다가섰다. 인터뷰에 응한 울갤러 대부분은 가정에서의 학대나 학교폭력 등으로 상처를 입고 가족이나 친구에 의지할 수 없는 극단적 고립 상태에서 울갤에 발을 들였다. 그곳에서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인간관계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이들은 이용자 절대 다수가 10대 여성과 20대 남성이라고 증언했다. 특히 말문을 뗀 여성들 중엔 실제 우울증 환자가 많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학대와 따돌림…상처 안고 울갤로

 고교 시절 울갤로 외로움을 견뎠다는 직장인 A씨(24·여)는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한 뒤 홀로 남겨졌다. 함께 살던 할머니는 매일 엄마에게 욕을 퍼부었다. 초등학생 때 정신질환을 앓던 친구를 감쌌다가 초·중·고 내내 왕따를 당했다. A씨는 인터넷에 ‘우울증’을 검색했다가 울갤을 알게 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오빠에게 8년간 성폭행을 당했고 지금도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B양(15)도 상처가 깊은 상태에서 울갤을 시작했다. 그는 “중1 때부터 온갖 방법으로 자살을 기도했다. 요즘도 울갤에서 죽으란 얘길 듣고 시도를 계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공황장애가 심해 지난달 자퇴했고, 이혼한 엄마는 타지에서 일하느라 거의 혼자 지낸다” “울갤을 그만두려고도 해봤지만, 여기 아니면 친구가 없어 계속 하게 된다”는 등의 말을 덤덤히 이어갔다. 상담소와 정신과, 폐쇄병동까지 가봤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C양(17)이 자살을 생각하며 엄마에게 보낸 유서. 엄마의 간곡한 만류로 실제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 C양

지난달 26일 C양(17)이 자살을 생각하며 엄마에게 보낸 유서. 엄마의 간곡한 만류로 실제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 C양

 3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온 C양(17)은 올초 울갤을 시작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히키코모리방’에서 친해진 친구를 통해서였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그는 울갤에서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밤마다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다. SNS로 나를 성희롱하던 남자, 빚 때문에 감옥에 간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고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울갤 밖에 없었다.”

서너달 간 C양은 10명 안팎의 울갤러를 만났다. 이들은 모두 미성년자인 그에게 술·담배를 권했다. 성추행을 시도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아늑한 지옥’인 울갤을 떠날 수 없었다. C양은 “죽고 싶다, 괴롭다 털어놓을 데가 울갤 밖에 없다. 위선일지도 모르지만 욕하는 사람만큼 위로해주는 사람도 많아서 계속 하게 된다. 집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직 요리사 D씨(22·남)는 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미대 진학을 꿈꿨던 D씨의 손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을 입었다. 의사는 “어떻게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중증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D씨는 “우울증 약 30일치를 한 번에 털어넣을 정도의 오남용이 이어졌지만 증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찾아간 곳이 울갤이었다.

가족·친구와 단절…‘팸’ 형성해 동거

 우울증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극단적 고립이 된 이들도 울갤에 모여들었다. 온라인에서 맺어진 인연은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는 ‘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서울 신대방동과 신림동에 각각 둥지를 틀었던 ‘신대방팸’과 ‘신림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거주지는 여러 울갤러들의 오프라인 모임 장소로 기능했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E씨(27·남)는 집을 나온 뒤 울갤과 팸을 인간관계의 축으로 삼았다. 그가 친구들과 함께 살던 집은 어느새 울갤러들의 아지트가 됐다. E씨는 울갤러들과 팸에 대해 “같이 잘 살아보자는 목표였고, 갈 데 없다는 친구들 밥 먹이고 집에 받아준 것”이라며 “범죄 소굴처럼 몰리는 건 억울하다”고 했다.

또 다른 팸을 주도한 F씨(22·남)는 “동네 친구들을 오토바이 사고사 등으로 여럿 떠나보냈다”며 “그 뒤 우울증 증세도 겪었지만 현실 세계에선 마음에 맞는 사람이 없었다. 사이가 좋지 않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울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금세 울갤에 녹아든 F씨의 거처는 울갤러들의 모임 장소가 됐다. 그는 “팸을 통해 마음 맞는 또래집단을 만났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우울증 갤러리에는 여전히 '죽고싶다'는 등 우울감을 호소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사진 우울증갤러리 캡처

지난달 30일 우울증 갤러리에는 여전히 '죽고싶다'는 등 우울감을 호소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사진 우울증갤러리 캡처

우울증 없는데 흥미로…“헌팅포차 변질”

 우울증을 앓거나, 사회에서 단절된 이들의 반대편에는 흥미와 자극을 좇아 울갤을 찾은 이들이 있다. 갤러들 다수는 “쉽게 오프라인에서 어울릴 사람을 찾기 위해 유입된 이들도 많다”며 “현재는 진짜 우울한 사람보다 이들을 사실상 ‘먹잇감’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10대 여성에게 성적 목적을 드러낸 한 울갤 이용자의 글. 사진 우울증갤러리 캡처

지난 24일 10대 여성에게 성적 목적을 드러낸 한 울갤 이용자의 글. 사진 우울증갤러리 캡처

4년차 울갤러 G씨(28·남)도 “우울증은 없지만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엔 우울한 사람들끼리 모여 힘내자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헌팅포차로 변질됐다. 50%는 성적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 역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20살 때, 울갤이 아니라 카카오스토리 애니메이션 모임에서 만난 18~19살 친구와 관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H씨(26·남)는 스스로를 거리낌 없이 ‘관심종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릴 적 조현병 증상이 있었지만 울갤을 하기 전 완치됐다”며 “사람 만나서 노는 곳이라고 해서 활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살방조 심각” 커지는 우려

현재는 우울증 갤러리에서 활동하지 않는 J씨는 “당초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의 친목 모임이었던 갤러리 오프라인 모임은 여성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한 남성들의 유입으로 변질됐다”고 전했다. 김홍범 기자

현재는 우울증 갤러리에서 활동하지 않는 J씨는 “당초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의 친목 모임이었던 갤러리 오프라인 모임은 여성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한 남성들의 유입으로 변질됐다”고 전했다. 김홍범 기자

 2013년 좌절 갤러리 시절부터 활동했다는 I씨(27·여)는 “주변엔 우울증 걸린 사람이 없고, 친한 친구도 내 얘기 듣는 걸 힘들어했다”며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서 커뮤니티를 계속했는데, 이곳에서 남성을 만나 잘못된 연애를 하게 되고 집착과 우울이 더 깊어지곤 했다”고 말했다. 2년 전 울갤을 탈퇴한 개발자 J씨(23·남)는 “소위 ‘패션(가짜)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의 친목의 장이 되면서 정신적으로 불안한 10대 여성들이 성적 먹잇감이 되는 걸 보고 활동을 접었다”고 말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과거 범죄자들은 가출 청소년 등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온라인 상에서 범죄자들과 고립된 청소년들의 접촉면이 무차별적으로 확대된 상태”라며 “자살 방조 등이 죄의식 없이 일어나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우울증 사냥꾼’들에 의한 성착취에 노출되거나 더 큰 범죄에 끌려들어갈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울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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