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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놀이와 역사와 감동,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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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서울어린이대공원은 올해 어린이날 개장 50주년을 맞는다. 원래 이곳은 조선 순종의 황태자 시절 부인인 순명효황후 민씨의 묘원 ‘유강원’이었다. 민황후의 묘가 순종의 유릉으로 합장돼 간 뒤 그 빈 곳에 한국 두 번째 골프장이 들어섰다. 해방 후 서울컨트리클럽으로 운영되다 1973년 어린이 놀이동산으로 개장했다. 현재는 에버랜드 등 본격적인 테마파크의 인기에 가려졌지만, 70년대 이곳은 전국 아동들에게 꿈의 동산이었다. 놀이시설과 동물원·식물원·공연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지만, 전체 면적의 60%는 녹지와 숲이어서 명칭 그대로 큰 공원의 역할이 더 크다.

공간과 공감

공간과 공감

정문 광장에 면한 꿈마루는 2개 층의 기다란 수평 슬라브가 공중에 떠 있는 예사롭지 않은 건물이다. 골프장 시절 클럽하우스 건물이었다. 원래 설계자는 나상진으로, 실력보다 저평가된 1세대 건축가다. 구조체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콘크리트의 재질감을 노출한 수법은 당시 세계 건축계를 풍미하던 브루탈리즘(Brutalism)의 영향이다. 2011년 후배 건축가 조성룡은 이 건물의 역사적·공간적 가치를 발견해 대대적인 보존 개조 작업을 완수했다. 구조 뼈대는 남긴 채 전체 3분의 1만 내부 시설을 채우고 나머지는 외부화했다. 구조체에 끼워진 사무실과 카페는 새로운 재료로 구성해 ‘집 속의 집’이 되었다. 남자 사우나의 지붕 슬래브를 철거해 조성한 피크닉 정원은 ‘집 밖의 방’이 되었다. 빛과 그림자가 시시각각 변하고 내부와 외부가 유기적으로 연속되는 감동적 공간을 이루었다. 기존 구조에 개입해 현재의 활용이 성공한 리노베이션의 걸작이다.

어린이는 놀이시설의 소비자가 아니다. 소박한 동식물을 만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연 속에서 뛰놀며 가족애를 익히는 주체다. 첨단 놀이 기구로 가득한 곳보다 자연 친화적이고 가족 동화적인 어린이대공원을 좋아하는 이유다. 더해서 유강원의 역사유적과 꿈마루의 예술적 공간까지 있으니 진정한 어린이 공원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