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강한 가족] 감염 취약한 중증 소아환자 ‘치과 치료 체계’ 구축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기고 김영호 아주대 치과병원장

30년 전 백혈병 환자가 많이 입원하는 대형병원 치과에 근무한 적이 있다.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 치료 중인 아이가 이가 아프다고 치과에 내원했다. 검진 결과 오랜 시간 치아 신경 손상 후 치아 주위에 염증이 심했고, 응급 처치를 했지만 불행히도 치아 감염이 혈액으로 전파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파리한 얼굴을 마주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어린아이의 사망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치아 신경이 손상돼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을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백혈병 등 중증 소아 환자는 감염 위험으로 치과 외래에 쉽게 올 수도 없으니 치아 통증이 있어도 차일피일 미뤄 시간이 장기간 경과할 수 있고, 어린아이라서 증상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을 못해 의료진이 인지하기 어려웠거나 구강 내 감염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그저 “백혈병이 심해 사망했다”고 치부하면 될까.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일어난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

대형병원에 중증 소아환자 치과 치료를 위한 의료진이 상주해 감염에 취약한 아이를 위해 무균실, 수술실 등에서 철저한 감염 관리하에 정기적인 구강 검진을 시행하고 치료했으면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대형병원에는 중증 소아환자의 치과 치료를 위한 체계는 거의 갖춰지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치과 전문의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알다시피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므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아이들을 치료하듯 아이들의 치과 치료는 ‘소아치과’ 전문의를 포함한 전문의료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중증 소아환자 치과 치료를 위해 신속하게 협진할 수 있는 전담팀 구성은 생각조차 못 하고, 치대병원을 제외한 대형병원에 ‘소아치과’가 거의 개설돼 있지도 않다.

소중한 생명인 중증 소아환자를 무너뜨리려는 질병의 파도를 지키기 위한 의료 장벽에 ‘작은 구멍’이 생기면 결국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일상에서 실수나 문제는 주로 사소하다고 여기는 부분에서 생기듯, 소아 중증 환자의 치아 감염 또한 사소하게 여겨진다면 견고한 의료 장벽에 치명적인 ‘작은 구멍’이 돼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치아 감염으로 허망하게 중증 소아환자의 귀한 생명을 놓치면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치과 치료의 공공성 강화는 극한의 생명 사투를 벌이는 소아 중증 환자에게는 절실한 ‘의료 장벽의 구멍 막기’ 처방전이다. 대형병원에 ‘소아치과’ 전문의를 포함한 ‘중증 소아환자 치과 치료 전담팀’이 구성돼야 치아 감염의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생명 위주의 정책’이 절실하며, 중증 소아환자에 있어 ‘치과 치료의 공공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