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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디데스의 함정' 앨리슨 교수, 워싱턴선언 극찬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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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지난 2019년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지난 2019년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세계적인 석학이자 국제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83)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가 최근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에 대해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통해 한국의 핵무장을 막았다는 측면에서 오랜 미 국가안보전략의 성취”라고 평가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포린폴리시(FP)에 기고한 ‘왜 바이든과 윤석열 대통령의 합의가 빅딜(Big Deal)인가’ 제하의 칼럼을 통해서다.

앨리슨 교수는 국제 안보·군사 정책 전문가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 특보,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 등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미 정부에 국방·안보 자문을 해온 현실 참여 학자다. 미·중 전략 경쟁을 일촉즉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내포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으로 설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윤 대통령이 미 국빈 방문 기간 연설했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앨리슨 교수는 기고문에서 지난 26일 한·미 정상이 발표한 워싱턴 선언에 대해 한·미 간 ‘핵 협의그룹(NCG) 신설' 등 확장억제 강화 부분의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선언은 북한에 대한 핵 억제력을 강화하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사한 협의 그룹(NCG)을 한·미 간에 창설해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는 더 강한 확신을 부여하게 했다”며 “많은 이들이 이번 합의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지만, 수십 년간 전세계 핵무기의 확산 방지라는 미 국가 안보전략의 가장 위대한 업적을 상기시키는 선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뒤 인사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뒤 인사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앨리슨 교수는 또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핵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약속을 재확인하고, 대신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핵을 쓰겠다는 미측 약속에 조국의 생존을 걸었다”며 “이는 한국이 핵 개발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핵무기는 더이상 첨단 기술도 아니다”고 짚었다.

그는 "핵무기가 실제 전쟁에 쓰인 지 78년(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투하)이 지났고, 핵확산 방지라는 국제 질서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1962년 미·소 간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만 해도,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은 “1970년대까지 전 세계 핵 보유국이 15~20곳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면서다.

인류의 공멸을 불러올 ‘도미노 핵무장’ 위기가 분명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핵무기 보유국은 공식적으로는 5개국(미·영·프·러·중)이며,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이외 국가를 포함해도 최대 9개국이다. 워싱턴 선언은 이 같은 비확산 기조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게 앨리슨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워싱턴 선언은 전세계 핵 확산이란 뚜껑을 덮기 위해 가한 못질 가운데 가장 최신의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10월 22일 백악관에서 쿠바 해상봉쇄를 발표하고 있다. 소련이 쿠바에 준중거리탄도미사일과 핵탄두를 배치하면서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의 한 장면이다. 당시 위기에서의 정책 결정 과정을 연구한 그레이엄 앨리슨은 『결정의 에센스』라는 책을 펴냈다. 사진 미 내셔널 아카이브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10월 22일 백악관에서 쿠바 해상봉쇄를 발표하고 있다. 소련이 쿠바에 준중거리탄도미사일과 핵탄두를 배치하면서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의 한 장면이다. 당시 위기에서의 정책 결정 과정을 연구한 그레이엄 앨리슨은 『결정의 에센스』라는 책을 펴냈다. 사진 미 내셔널 아카이브

앨리슨 교수는 “안보 위협에 맞서 핵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는 한국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도 똑같은 논쟁이 있었다”며 “이 같은 우려는 사라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으로선 "동맹국들에게 확실한 핵우산을 보장하는 것으로 이들의 안보 불안을 불식시켜야 하는 도전 과제가 놓여있다"면서다. 앨리슨 교수는 “한국의 경우 ‘오늘 밤 싸울 수 있는 대비 태세(ready to fight tonight)’의 주한미군 2만 8000명이 기초가 될 것이고, 협의체(NCG) 신설을 통해 미국의 핵 운영 정책에 대한 관여를 강화했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도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국이 미국 측의 확장억제 강화 약속을 받아내긴 했지만, 한국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 약속을 불안해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앨리슨 교수는 “한국의 대통령과 군·정보·외교 당국, 의회는 물론 시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고 솔직한 대화가 필요한 이유”라면서 “적어도 현재까진 윤 대통령과 동료들의 우려를 존중하면서 그들이 대안(자체 핵무장)보다 미국에 의존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미국 팀에는 큰 승리”라고 덧붙였다.

앞서 외교 전문매체 더 디플로맷도 워싱턴 선언에 대해 평가하면서 “공인된 핵 보유국이 되려는 북한의 확고한 의지 탓에 한국 내 핵 보유 요구가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진 않다”는 점을 한계로 들었다. 매체는 “미국의 핵 전략자산의 한국 배치만이 이 같은 불만을 달랠 수 있다”면서 “향후 모든 시선은 한미 간 핵 협의체인 NCG에 쏠릴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향후 NCG가 북핵 위협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응안을 내놓지 못하면 한국의 핵무장 열망이 커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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