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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3대 개혁, 하나라도 해낼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노동·교육을 새 정부 3대 개혁 과제로 꼽은 게 지난해 5월 16일이다. 취임 첫 국회 연설에서다. “지금 추진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고 했다. 방향을 잘 잡았다. 기대를 모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뭉개거나 망친 것을 바로잡는 의미도 있었다. 1년이 쏜살같이 흘렀다. 유감스럽게 3대 개혁은 별 진전이 없다. 윤 대통령이 “역사적 소명”이라고 칭한 게 무색할 정도다.

 연금개혁은 여야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국회는 지난해 7월 말에야 마지못해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개점 휴업하다가 10월 말 첫 회의를 열었다. 하나 마나 한 덕담만 주고받다 끝났다.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가 지난달 말 두루뭉술한 보고서를 냈을 뿐이다. 사회적 합의는커녕 자체 안도 만들지 못했다. 국민·공무원·군인·사학 4대 공적연금을 들여본다고 했으나 국민연금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특위는 시간만 축내다 이달 말 종료한다.

새 정부, 별 진전 없이 첫해 보내
선거 없는 골든타임 얼마 안 남아
이해당사자 설득할 정치력 의문
낮은 지지율도 국정동력 약화 불러

 노동개혁 상황도 좋지 않다. 윤 대통령이 노조 불법행위에 강경 대응한 것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 주 52시간제를 둘러싼 혼선이 뼈아프다. 정부 안은 일이 많을 때 주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적을 땐 쉬도록 노사의 선택권을 넓히자는 것이다. 이게 매주 69시간씩 일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야당의 주 69시간 프레임에 속수무책 당했다. 윤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하면서 더 꼬였다. 이때부터 정부 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굳어졌다. 지난해 6월에도 대통령이 노동부 안을 뒤집었다.

 여소야대 국회라는 험난한 링에 오르기도 전에 자중지란에 빠졌다.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는 노력 없이 덜컥 정부 안을 내놓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가 뒤늦게 의견 수렴에 나섰다. 일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주 52시간제 개정은 추진동력을 잃은 것 같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진짜 민감한 노동 현안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과보호를 깨고,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체계도 개편해야 한다. 고령화에 대비해 정년을 연장해야 하고…. 할 일이 널려 있는데 안타깝다.

 교육개혁은 출발부터 늦었다. 교육부총리 후보가 연거푸 낙마해 지난해 11월까지 컨트롤타워가 공석이었다. 뒤늦게 교육부가 교육감-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 맞춤형 돌봄 서비스, 디지털 교육 등 10대 과제를 마련했다. 법 개정 사항이 많다. 교육 문제의 핵심은 사교육이다. 이걸 비껴가면 어떤 개혁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사회 격차를 키운다’는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3대 개혁은 앞으로 더 문제다. 우선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올해, 특히 상반기가 골든타임이다. 두 달밖에 안 남았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부터 국민연금 개혁에 착수했는데도 마지막 해 간신히 고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2년 차인 2014년 초 시작한 공무원연금 개혁에 1년5개월 걸렸다. 그나마 둘 다 당초 안보다 크게 후퇴해 50점짜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비겁하게 손도 안 댔다.

 올 하반기부터 총선의 계절이다. 정부 연금개혁안과 주 52시간제 개정안이 가을에 나온다. 애매한 시기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여야 모두 셈법이 복잡하다.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표가 날아간다. 정치권이 선뜻 나설 리 없다. “정파보다 국가를 우선해야 개혁에 성공한다”(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말은 우리 정치 풍토에선 요원한 얘기다.

 둘째, 정부가 개혁을 헤쳐나갈 고도의 정치력을 가졌는지 걱정스럽다. 개혁의 당위성만 강조할 뿐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이나 로드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야당과의 협치는 고사하고, 그 흔한 당정 협의도 눈에 안 띈다. 민관이 머리를 맞대는 공청회도 별로 없다. 3대 개혁은 이해당사자의 대타협이 중요하다. 각자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순간 실패한다. 정부가 국민과 이해집단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행위를 끝없이 반복해도 될까 말까다. 일방통행식 행정과 구호·엄포만으로는 성과를 낼 수 없다. “3대 개혁은 정부 혼자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민·관·정 모두 머리를 맞대고 수용 가능한 개혁안을 도출해야 한다.”(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셋째,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현실적인 걸림돌이다. 지지율은 민심의 바로미터다. 이명박 정부 초인 2008년 봄, 광우병 사태를 겪으면서 지지율이 21%까지 추락했다. 5년 내내 국정 동력 약화로 고전했다. 이번엔 광우병 같은 큰일이 없는데도 30%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에서 이탈 조짐이 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여론조사 방법에 의구심이 있다” “별로 참고하지 않는다”고 애써 의미를 깎아내린다. 그런 태도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총선 치른다고 1년을 또 보내면 어느덧 집권 후반기다. 3대 개혁 중 하나만이라도 성공하길 바라는 쪽으로 눈높이를 낮춰야 할지도 모르겠다.

글=고현곤 편집인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