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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풍수지리는 왜 중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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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산임수(背山臨水). 풍수지리학에서 최고로 꼽는 지세다.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물이 흐르는 배치가 지리적으로 가장 이상적이라고 한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이상적인 배산임수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중국이야말로 풍수지리학상 이상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라고 볼 만하다. 뒤로 시베리아 벌판이 놓여 있고 앞으로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사실 인류 문명 발상지들이 모두 물과 산을 끼고 생겨나기도 했다.

중국에게 ‘산’은 러시아다. 서태평양을 두고 미국과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마당에 뒤통수에 있는 러시아까지 신경 쓸 수 없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중국은 2019년 6월 러시아와 ‘새 시대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최고 수준의 외교관계를 형성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 미국에 대적하는 공동 운명체, 순망치한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양국은 해상에서는 미국·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포위되어 있고 육상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정책, 중앙아시아에서 미국과의 주도권 경쟁에 노출돼 있다. 중·러 공동의 안보·경제 협력지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비우호 국가로 전환된다면 고립무원의 형세에 놓이게 된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남동부 방면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것에 국력을 집중하기 위해 러시아와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 후방의 안정화에 소모되는 자원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

?2018년 7월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0차 브릭스 정상회담.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셔터스톡

?2018년 7월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0차 브릭스 정상회담.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셔터스톡

중국에게 러시아는 중요한 에너지와 무기 공급원이기도 하다. 또한 2014년 크림 반도 합병 이후 서방으로부터 경제제재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에게 중국은 최고의 ‘물주’다. 이런 점을 중국은 최대한 활용해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또한 5G 네트워크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기술표준 전쟁을 앞두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대항해 중국이 ‘디지털 동맹’을 형성해야 할 파트너다.

뒤통수를 안정시키면서 중국은 동쪽과 남쪽, 서쪽 세 방향으로 진출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신형대국관계와 일대일로, 대양해군이 그것이다.

이 세 전략은 각각 다른 차원과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신형대국관계가 외교, 즉 연성권력(soft power) 측면의 전략이라면 일대일로는 경제적 측면, 대양해군은 군사적 성격의 전략이다. 신형대국관계가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추구하는 동진 전략이라면, 일대일로는 유라시아 지역에 중국 중심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서진 전략이다. 대양해군은 남중국해를 통해 대양으로 진출, 중국의 군사력을 세계적 범위로 투사하려는 남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세 방향 전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아래 그림과 같은 셈이다.

중국의 세 방향 전략. 사진 필자 제공

중국의 세 방향 전략. 사진 필자 제공

신형대국관계에 대한 언급은 차기 최고지도자로 낙점된 시진핑이 2013년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와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후 그 자신이 신형대국관계에 대해 “(미국과) 충돌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 주는 기반 위에서 윈-윈을 위해 협력을 극대화하는 관계(不衝突, 不對抗, 相互尊重, 合作共嬴)”라고 설명했다. ▶역사상 기존 패권국과 부상하는 강국 간에 발생해 온 갈등·대립의 해소 및 신뢰 구축 ▶양국의 서로 다른 체제에 대한 이해와 각자의 핵심 이익에 대한 존중 ▶반테러, 핵확산, 사이버 안보, 환경문제 등 세계적 현안에 대해 양국 협력을 통한 상호 이익을 실현하자는 의미다.

신형대국관계가 등장한 배경은 이렇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 계기로 미·중 간 국력 격차에 변화가 생겼고, 미국이 반테러에서 아시아·태평양 재균형으로 전략태세를 변화시켰으며, 반소 미·중 협력에서 미·중 경쟁으로 전략의 방침이 변했고, 여러 국제 현안들에 미·중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점들이다.

중국이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운 의미가 가장 명시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2013년 당시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에서다. 만찬에서 시진핑은 “태평양은 무척 넓어서 중·미 양국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태평양 지역을 미국과 반분(半分)하자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이는 곧 동아시아가 있는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해 달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체제 차이에 대한 상호 이해와 각자의 핵심이익에 대한 존중을 내세운 신형대국관계는 그런 점에서 이전 어떤 세대의 구호에 비하더라도 미국을 향한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인정 요구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오바마 집권기간 동안 38차례 신형대국관계를 언급하는 동안 미국은 8차례만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고, 집권 마지막 2년과 트럼프 행정부 기간 동안은 거의 언급이 없었다. 미국은 중국이 내세운 신형대국관계 내용 중 ‘충돌을 회피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상호존중’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에게 자유, 민주,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체제의 차이를 이유로 이런 가치들을 양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풍수지리학상 이상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라고 볼 만하다. 뒤로는 시베리아 벌판이, 앞으로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은 풍수지리학상 이상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라고 볼 만하다. 뒤로는 시베리아 벌판이, 앞으로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사진 셔터스톡

일대일로는 유라시아에서의 지정학적 주도권 경쟁, 에너지 자원 확보와 경제 성장의 돌파구 마련 등 다면적 포석의 국가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대(一帶)에 해당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絲綢之路經濟帶)’는 중국 서부에서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거쳐 유럽과 발트해에 이르는 길,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를 거쳐 지중해에 도달하는 길,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통해 인도양으로 통하는 길을 연결한다. 일로(一路)인 ‘21세기 해상 실크로드(21世紀海上絲綢之路)’는 중국 남동 해안에서 출발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이 있는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과 지중해로 연결되는 길을 개척한다.

일대일로엔 중국의 다면적 전략이 분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중국은 2009년 이후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이 되었고, 에너지 소비원은 동부 해안에서 서부 내륙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말라카 해협 등 중국의 해상 에너지 운송로는 미국과 베트남 등 주변국들에 의해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 중앙아시아를 통한 육상 수송로는 안전하고 중국 서부와 가깝다. 미얀마와 파키스탄을 거쳐 중동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도 안정적인 에너지원 수급을 위해 추진 중인 프로젝트다.

중국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중진국형 경제성장률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존 수출 주도형, 외자 도입형 경제 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국내 과잉 설비와 과잉 생산, 도농 격차 해소와 실업률 관리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중국은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들을 통해 잉여 생산력을 해외로 돌리고 국내 노동력까지 이동시켜 흡수토록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러시아와 함께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투사하기 위한 경쟁을 벌여 왔다. 경쟁의 동기로는 에너지, 경제와 더불어 지정학적 목적이 혼재되어 있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재균형을 선언하며 ‘신 실크로드’ 계획을 주창했다.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TAPI)를 묶어 고속도로, 철도, 가스관 등을 연결하는 TAPI 프로젝트는 그 일환이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의 옛 소련 소속국들과 함께 2015년 유라시아 경제 연합을 설립했고, 군사 공동체로 발전을 꾀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유라시아 중심부를 둔 주도권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앞서 중국 정부가 개방과 협력, 공영(共榮)을 일대일로의 정신으로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대상국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례로 파키스탄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국 내 인프라 건설 자금의 80%(620억 달러)를 중국에서 조달한 이후, 라호르 경전철 건설로 급증한 부채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 자금으로 지어진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는 항구 이용률이 낮아 적자가 쌓이자 지분 80%를 중국 국유기업 자오상쥐(招商局)에 매각하고 99년간 항구 운영권을 넘겼다. 몰디브에 제공한 중국 차관은 금리가 연 12%가 넘었다. 현지 노동자 대신 중국인을 고용하는 방식도 물의를 빚고 있다. 2018년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IMF 총재는 일대일로에 대해 “관련 국가에 부과된 부채가 지나치게 많다”고 경고했다. 일대일로가 중국 정부의 선전과 달리 배타적 국익을 위한 전략임을 방증하는 사례들로 해석된다. 상대국들의 불만과 비판이 커지자 시진핑은 2019년 4월 제2차 일대일로 고위포럼에서 프로젝트의 재정적 지속가능성, 환경보호, 부패에 대한 통제 등을 강조하면서 “일대일로 구상이 국제적 규칙과 기준 및 실천에 따라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양해군 건설은 시진핑 시대 인민해방군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평가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까지 중국 해군은 지상군의 작전을 보조하고 대만 해군과 소련 극동함대의 공격을 연안에서 저지하는 임무가 거의 전부였다. 당시 중국은 소련, 인도, 베트남 등을 상대로 한 지상 군사작전에 치중해야 했다.

1982년 중앙군사위원 류화칭(劉華淸) 제독이 해상 방어선인 도련선 개념을 제시하면서 현대 중국군의 해상 전략 틀이 갖춰졌다. 그는 2000년까지 제1도련선(일본-대만-필리핀-남중국해) 밖에서 방어를, 2020년까지 제2도련선(일본-괌-팔라우) 외곽에서 방어가 가능하도록 해군력 증강을 주장했다. 기존 근해방어전략에 선제공격 개념을 포함한 적극방어전략으로 전환했고 근해의 개념도 일본 본토-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잇는 해역까지 확대했다.

중국이 군사전략을 최초로 공개한 2015년 국방백서에는 ‘해양강국 건설’이 명시되어 있다. 육지를 중시하고 해양을 경시하던 사고에서 탈피하고 해양 관리와 해양권익 수호를 고도로 중시해야 하며, 종전 근해방어형에서 근해방어와 원양호위 조합으로 해군의 전략 및 작전범위를 수정했다. 미국이 전 세계 해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고 분쟁에 개입·조정하는 것처럼 중국도 대양을 무대로 미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대양해군의 위상에 부합하도록 중국 해군이 수행해야 할 주요 작전임무는 동아시아 해상에서 미국에 대해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관철하고, 주변국들과의 영해분쟁에서 주권을 수호하며, 에너지 수송과 대테러 등 해상에서의 국익을 지켜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에 열세인 해군 전력 보강을 위해 중국은 다수의 노후 연안전투함을 폐기하고 새 호위함과 구축함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다중전투함으로 개발하고 있다. 핵전력을 보유한 4척의 진(晋)급 잠수함(SSBN)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 12월 두 번째 항공모함이 실전 배치되었고 핵추진 항모 등 다수의 항공모함을 건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 군함의 접근을 막기 위해 남중국해에 7개의 인공 섬을 건설하고 활주로, 레이더 기지, 지대공 미사일 기지 등을 배치해 미국 및 인접국과 영해 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거점을 마련했다. 해병대 증원도 같은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 국방부는 2개 여단 1만여 명 규모였던 중국 해병대가 2020년까지 7개 여단 3만 명으로 증편되고, 적극적인 원정 작전을 감행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양해군 건설과 맞물려 중국의 해양 정책은 점점 더 공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과거 아세안 국가들과의 해양 분쟁에서 덩샤오핑 이후 고수해 온 ‘주권보류, 공동개발(擱置主權, 共同開發)’ 원칙이 2013년 7월 정치국 집단학습을 계기로 ‘주권중국, 논쟁보류, 공동개발(主權屬我, 擱置爭議, 共同開發)’로 변경되었다. 2014년엔 베트남과 공동개발에 합의한 상태에서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에 일방적으로 석유시추선을 설치해 베트남을 자극했고, 이후로도 감시선과 각종 물리력을 동원해 강압적인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대양해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해군력은 적지 않은 약점에 노출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 해군은 대잠 및 합동작전 능력이 부족하고 군함 부품들에 대한 외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으며 장거리 표적화가 미흡하다. 또 현대적 전쟁 수행 경험이 전무해 교리의 신뢰도가 검증되지 않았다. 혁신적 사고가 부족해 그들이 치른 마지막 전쟁의 교훈이 여전히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지적됐다. 스스로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중국의 국가 전략은 이처럼 배산임수라는 지리적 유리함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충형 차이나랩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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