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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부터 가격까지 무궁무진한 일본 카레라이스의 세계 [쿠킹]

중앙일보

입력

낯선 곳에 맛보는 색다른 음식은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선물합니다. 한 끼도 허투루 먹을 수 없죠. 미식 여행을 즐긴다면 매주 금요일을 주목하세요. 도쿄의 다채로운 음식 문화와 요리 이야기를 담은 책『도쿄에선 단 한 끼도 대충 먹을 수 없어』의 에피소드 중 네 가지를 골라 미리 연재합니다. 도쿄 곳곳에 숨겨진 맛있는 이야기를 중앙일보 COOKING에서 만나보세요.

일본인은 주 1회 카레를 먹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카레라이스는 일본의 대표 가정식으로 꼽힌다. 사진 셔터스톡

일본인은 주 1회 카레를 먹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카레라이스는 일본의 대표 가정식으로 꼽힌다. 사진 셔터스톡

일본의 유명 식품회사 S&B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은 주 평균 1회 이상 카레를 먹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카레는 일본인에게 아주 일상적인 먹거리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카레’는 카레의 본고장인 인도의 ‘커리’와 다릅니다. 한 인도인이 일본에 와서 카레라이스를 먹고는 “이 맛있는 요리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식 카레는 맛도 형태도 본토인 인도의 커리와는 차이가 있는데요. 카레가 일본으로 건너온 지 1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일본만의 조리법이 생겼고, 이제 카레라이스는 일본 사람 그 누구도 외국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와쇼쿠(일본식 식사)가 되었습니다.

카레라이스를 처음 일본으로 전한 나라는 인도가 아닌 영국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인도가 영국령이었던 메이지 시대(明治, 1868~1912)에 인도 요리를 기반으로 한 영국의 ‘커리드라이스(Curried Rice)’ 혹은 ‘커리 앤 라이스(Curry&Rice)’가 일본으로 전해지며 일본 카레라이스의 원형이 되었다는 것이죠. 일본 카레라이스는 대개 며칠간 뭉근하게 끓이는 방식으로 조리하여, 인도 커리와는 달리 상당히 걸쭉합니다. 예전 영국 해군함 식당에서 배의 흔들림에 대비해 카레를 덜 흘리게끔 조리한 방법이 그대로 일본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식 카레라이스의 역사는 영국 식품회사 크로스&블랙웰(Crosse&Blackwell)이 개발한 ‘커리파우더’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시작됐습니다. 1877년 도쿄의 요네즈후게츠도(米津風月堂)라는 프렌치 식당에서 대중에게 첫선을 보였고, 1889년 고베(神戸)의 오리엔탈 호텔(オリエンタルホテル)의 메뉴에 올랐습니다. 이후 1903년 일본판 ‘카레 파우더’를 처음으로 팔기 시작했고, 1906년 고형 ‘카레 루(Curry Roux)’가 등장했는데요.

고형 카레 루의 등장이야말로 카레라이스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식당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접 양념을 조합하여 자체적으로 카레를 끓이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전에는 고형 ‘카레 루’로 카레라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카레라이스가 식당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의 식탁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카레 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발매된 하우스식품(ハウス食品)의 바몬드카레(バーモンドカレー)와 에스비식품(ヱスビー食品)의 골든카레(ゴールデンカレー) 등이 카레라이스의 대중화에 기여한 카레 루 1기 제품들입니다. 카레 루 1기는 순한 맛이 주류였지만, 1960년대 후반 카레 루 2기부터는 매운맛이 추가되는 등 다채로운 제품이 시장을 리드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1970~80년대에는 플레이크 혹은 건더기 타입 등 고품질 재료로 깊은 맛을 낸 프리미엄 제품군이 등장했습니다.

일본의 카레는 맛과 가격이 다양하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의 카레는 맛과 가격이 다양하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오늘날 도쿄의 카레라이스는 종류도 무궁무진하고 가격도 몇백 엔에서 몇천 엔까지 다양합니다. 고급 프렌치 식당에서는 코스의 시메(締め, 마무리 식사 메뉴)로 주방장 특제 카레를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쿄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카레는 역시 그들 생활반경 내에 있는 카레라이스일 터. 그러니 도쿄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있는 인기 카레라이스 집 위주로 드셔 보셨으면 합니다.

[추천 도쿄 카레라이스 맛집]

세븐즈 하우스(セブンズハウス, The Seven’s House)
세븐즈 하우스는 대학교와 출판사가 밀집해 있는 간다진보초(神田神保町)의 가쿠시카이칸(学士会館, 학사회관) 안에 있는 식당입니다. 파스타나 햄버그스테이크 등을 파는 양식당인데, ‘크라크 카레(クラークカレー)’라는 카레라이스가 현지인 사이에서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크라크 카레라는 이름의 유래는 근대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근대화 시기 삿포로농학교(札幌農学校, 현 홋카이도대학의 전신) 창시자였던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교수가 당시 제자들에게 영양식으로 카레라이스를 적극적으로 권했고, 이후 학교 구내식당에서 팔던 카레라이스가 크라크 카레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홋카이도 대학 구내식당에는 지금도 이 메뉴가 있습니다.

크라크 카레를 주문하면 잡곡밥과 얇게 슬라이스 한 스테이크, 당근, 감자, 가지, 피망 등의 향미 진한 유기종 야채를 올린 접시가 나오고, 카레는 다른 그릇에 따로 담겨 나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끓인 카레는 구수한 맛과 단맛, 신맛, 살짝 매운맛이 한데 어우러져 깊은 맛을 냅니다. 점심시간에는 카레와 샐러드, 커피로 구성된 세트 메뉴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고, 디너타임에는 토핑 종류가 추가되어 맛이 더 풍성해진 카레를 즐길 수 있습니다. 애프터눈티 타임에 파는 디저트도 인기 메뉴입니다. 쇼트케이크, 푸딩, 가토 쇼콜라만을 먹으러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1928년에 지어져 높은 천장과 클래식한 가구, 조명들로 중후한 멋을 풍기는 식당 건물은 니혼바시타카시마야(日本橋高島屋)와 데이코쿠호텔 신관(帝国ホテル新館) 등을 설계한 일본 건축계의 거장 다카하시 데타로(高橋貞太郎)의 걸작 중 하나로, 언제 가더라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라는 것도 커다란 매력 중 하나입니다.

이정선 작가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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