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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고생깨나’ 한 사랑도 마침내, 사랑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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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영화 ‘헤어질 결심’은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과 변사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의 아슬아슬한 러브라인을 그리고 있다. 영화엔 주요 장면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추격 신 하나가 나온다. 해준이 살인범 산오(박정민)를 뒤쫓는 장면이다.

숨 가쁘게 쫓고 쫓기던 두 사람이 연립주택 옥상에서 대치한다. 산오는 죽음을 결심한 듯 흐느끼며 말한다. “가인이한테 ‘나 너 때매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요렇게 좀 전해주세요.” (※산오는 가인이 때문에 “죽음보다 더 무서워하던” 감옥에 갔다 왔고, 살인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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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고? 이 말은 앞뒤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감정, 즉 원망과 사랑이라는 양가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고생깨나 시킨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있다. 그가 ‘고생깨나’ 한 것은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보라. 고생깨나 시킨 것은 가인이가 아니라 가인이를 사랑했던 산오 자신이다. 이 사실은 ‘사랑’이란 두 글자에 만남의 설렘이나 기쁨만이 아니라 고통도 내장돼 있음을 말해준다.

보고 싶어 잠 못 들던 날들도, 애태우고 속 끓였던 과정도, 그 사람 때문에 갈림길에 서야 했던 기억도 서래의 대사를 빌리자면 “마침내”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생깨나 했지만’은 순정을 다 바쳐서 사랑했다는 강조의 표현이 되고, “너무 쉬운 사랑은 다 거짓말”(버스커버스커)이 아닌지 묻게 만든다.

○○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당신이라면 ○○에 누구를, 무엇을 넣을 것인가. 자녀? 배우자? 연인? 종교? 돈? 직장? 아이돌? 중요한 건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내 인생 공허하지 않았다”고 외칠 만한 그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있느냐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