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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질때까지 스케치 10만점 남겼다...'부자=금시계' 공식 깬 남자 [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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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젠타(Gerald Genta·1931~2011). 시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이름이다. 이름을 몰라도 그가 디자인한 시계를 대면 업계에서 얼마나 큰 활약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급시계 디자이너 제럴드 젠타. [사진 IWC]

고급시계 디자이너 제럴드 젠타. [사진 IWC]

올해 시계박람회 워치스앤원더스를 통해 다시 선보인 IWC의 인제니어 이외에도 오데마 피게 로열오크, 파텍필립 노틸러스와 골든일립스, 불가리 옥토와 불가리 불가리, 까르띠에 파샤 드 까르띠에,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등이 그의 두뇌와 손을 거쳐 완성된 시계다. 이 시계들은 현재 각 브랜드의 효자로 탄탄한 입지를 가진 컬렉션이다. 짧게는 30여 년, 길게는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제럴드 젠타는 1931년 스위스로 이주한 이탈리아 출신 부친과 스위스 모친 사이에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좋지 않았고 부친의 조국 이탈리아가 제1차 세계대전의 주범이란 이유로 순탄치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젠타는 금과 보석 세공을 공부해 학위를 받았지만, 주얼리보다는 시계 디자인에 더 관심이 많았고 재능도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시계 스케치를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스물셋 나이에 당시 크로노그래프 시계로 명성을 크게 얻던 유니버설 제네바 회사에 입사해 시계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었다.

 IWC 인제니어SL의 초기 스케치와 2023년 새로 발표한 인제니어 오토매틱 40.

IWC 인제니어SL의 초기 스케치와 2023년 새로 발표한 인제니어 오토매틱 40.

40대를 바라볼 즈음인 1969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시계 회사를 차린다. 유명 브랜드와 협업 제품을 내놓거나 고객이 주문한 특별한 시계를 만드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젠타가 1972년 내놓은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는 기존 손목시계에서는 볼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 원형이거나 사각 일색인 시계 케이스 디자인에 팔각형을 내세웠다. 게다가 ‘고급 시계=금’이라는 공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테인리스 스틸을 시계 케이스 소재로 택했다. 발표 초기에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열 오크는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리며 그의 진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로열 오크가 시선을 끈 건 케이스 형태 이외에도 시계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시곗줄)을 연결해 주는 부품인 러그(lug)를 없앤 것이었다. 케이스에 시곗줄을 바로 부착하는 독특한 디자인 덕에 케이스와 시곗줄은 매끄럽게 이어졌고, 시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놨다.

1976년 선보인 파텍필립 노틸러스와 IWC 인제니어SL 역시 러그가 없는 케이스 디자인이었다. 다이얼과 이를 에워싼 베젤의 디자인에는 차이가 있지만 한눈에 봐도 제럴드 젠타가 디자인한 시계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업계에서는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 그리고 인제니어를 제럴드 젠타 디자인의 3부작이라 부른다. 그리고 현대적 럭셔리 스포츠 시계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다.

IWC는 올해 워치스앤원더스를 통해 젠타의 유산을 기리고자 1976년 인제니어SL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제니어 오토매틱 40 컬렉션을 공개했다. 초기 모델 당시의 대담한 디자인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동시에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했다. IWC가 인제니어를 재출시한 이유는 분명했다. 현재 럭셔리 스포츠 워치 시장이 최고 호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쉐론 콘스탄틴 오버시즈, 브레게 마린, 쇼파드 알파인 이글 등 스포티한 외관의 시계를 매장에서 좀처럼 찾기 힘들다. 어떤 제품은 3~4년을 기다려야 손에 쥘 수 있다.

2011년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10만 점이 넘는 시계 스케치를 남겼다. 1990년대 후반까지 자신의 이름을 다이얼에 새긴 시계를 세상에 내놓으며 시계 제작자로서 명성을 떨친 것도 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아내 에블린 젠타는 “제럴드가 다른 사람의 시계를 보는 일은 없었죠. 그렇게 되면 자신이 시계를 디자인하는 데 있어 창의성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현재 제럴드 젠타 헤리티지 재단을 운영 중인 그는 주변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창의성이야말로 제럴드 젠타가 시계 업계에 족적을 남길 수 있던 이유라고 말했다.

파텍필립 노틸러스

파텍필립 노틸러스

오데마 피게 로열오크

오데마 피게 로열오크

불가리 옥토

불가리 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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