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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금지" 현수막에도 사료 와르르…골목마다 캣맘과의 전쟁 [월간중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책임없는 쾌락’과 ‘동물보호’의 두 얼굴


주차장과 주거지 가리지 않는 길고양이 돌봄에 시민들 고통 호소
이웃 배려 없는 무책임한 활동에 부정적 인식과 갈등 사례 늘어

길거리 급식소에서 길고양이들이 단체로 먹이를 먹는 모습. / 사진:커뮤니티 캡처

길거리 급식소에서 길고양이들이 단체로 먹이를 먹는 모습. / 사진:커뮤니티 캡처

3월 30일 땅거미가 질 무렵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운동장에 모자를 눌러쓴 등산복 차림의 여성이 캠퍼스를 서성였다. 운동장을 두세 바퀴쯤 돌던 여성은 갑자기 학교 후문 분수대 쪽으로 향했다. 분수대 앞의 불 꺼진 건물에 다다르자 지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고양이 사료가 담긴 비닐봉지였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사료를 꺼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들, 이리 온.” 말이 끝나자마자 수풀 속에서 고양이 세 마리가 튀어나와 여성의 손에 놓인 사료를 먹었다. 고양이들을 바라보는 여성의 표정은 흐뭇했다. 근처에는 ‘교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나 귀여워요? 이런 애들이 길거리에 있는 게 얼마나 불쌍하던지, 그래서 밥을 주기 시작했어요.” 나이 쉰다섯의 이 여성은 외대 인근 석관동에 산다고 했다. 굳이 외대까지 오는 이유를 묻자 “처음에는 집 근처에서 밥을 줬는데 동네 주민들이 하도 항의해서 (외대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 길고양이 먹이 주는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0년째다. 그가 길고양이 밥을 챙기는 이유는 “소중해서”다. 자기가 밥을 줘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고양이를 집에 데려가 키울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집이 좁고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서 못 데려간다”며 “집 안에서 못 키울 뿐이지 (교내 길고양이들도) 제가 키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길고양이 사료를 정기적으로 챙겨주는 사람을 ‘캣맘’이라고 부른다. 2010년 초부터 등장한 이 용어의 의미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보살피는 사람’을 통칭했지만, 점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무분별하게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서 각종 민원과 피해가 끊이지 않아서다.

“고양이가 싫은 게 아니라 캣맘이 싫어”

‘길고양이가 불편하면 외부 주차장을 사용하라’는 아파트 내 안내문. 캣맘이 붙인 것으로 추정돼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 사진:커뮤니티 캡처

‘길고양이가 불편하면 외부 주차장을 사용하라’는 아파트 내 안내문. 캣맘이 붙인 것으로 추정돼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 사진:커뮤니티 캡처

“원래는 (길고양이에 대해) 별생각 없었는데, 캣맘 때문에 길고양이를 싫어하게 됐어요. 그 피해를 자기들도 당해봐야 알지.” 서울 성동구 용답동 주민 박영섭(77)씨는 자기 집 근처로 몰려든 길고양이를 지팡이로 쫓아내려다 동물학대범으로 몰렸다고 했다. 집 인근에 있던 길고양이 급식소를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길고양이가 보이면 지팡이를 휘둘러 쫓은 게 화근이었다. 어느 날 캣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그에게 “말로 하지 왜 맘대로 버리고 고양이를 괴롭히느냐”며 타박했다고 한다. 캣맘과의 말싸움 끝에 자기 집 근처에 먹이를 두지 않기로 약속 받긴 했지만 생각할수록 기가 차더라고 회상했다. 박씨는 “(캣맘은) 어쨌거나 사람이니까 직접적으로 화풀이할 순 없지 않나? 먹이를 보고 몰려드는 고양이가 미워져 해코지하고 싶은 생각이 크게 들었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캣맘에 대한 분노가 고양이에게 표출돼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빈번하다. 작년엔 충남 계룡시에서 20대 남성이 길고양이 급식소에 부동액을 뿌리다 경찰에 적발돼 조사 받았다. 이 남성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길고양이 학대 관련 내용을 꾸준히 올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자취하고 있는 주상호(가명·27)씨도 캣맘과 다투다 경찰서에 갈 뻔했다. 캣맘과 다투던 중 신체 접촉이 생겼는데, 캣맘이 성추행으로 고소한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빌라 출입구 근처에 고양이 사료가 담긴 밥그릇이 놓여 있는 것을 본 주씨는 “그날부터 길고양이들이 빌라 주위로 몰려들었다”고 했다. “2주도 지나지 않아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빌라에 터를 잡았어요. 고양이 분뇨 냄새가 진동하고, 밤엔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주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던 어느날 늦은 밤 귀가하던 중 우연히 캣맘과 마주쳤다. 한 여성이 주씨의 빌라 앞에서 사료를 붓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주씨는 일부러 소리를 크게 지르고서 먹이를 주던 여성의 손을 잡았다. 갑작스런 소란에 주씨가 사는 빌라의 집주인도 합세했다. 알고봤더니 캣맘은 주씨의 자취방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대학생이었다. 여성에게 굳이 여기까지 와서 먹이를 준 이유를 묻자 “(자신이 머무는) 집주인이 싫어할까 봐”라고 답했다. 주씨는 “적당히 훈계하고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캣맘이 ‘아까 손잡은 건 성추행’이다”며 “경찰서에 간다고 하길래 황당했다”고 말했다. 집주인이 나서 “법대로 하면 우리도 (캣맘을) ‘건조물 침입 및 불법 건조물 설치’로 고소할 수밖에 없다”고 되받아친 덕분에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개인 간 갈등뿐 아니라 후원금 의혹도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의 플래카드. 한국외대 교내 고양이들을 관리하는 ‘냥만외대’가 걸어놓았지만 먹이를 주는 외부인이 아직 있어 마찰을 빚고 있다. / 사진:독자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의 플래카드. 한국외대 교내 고양이들을 관리하는 ‘냥만외대’가 걸어놓았지만 먹이를 주는 외부인이 아직 있어 마찰을 빚고 있다. / 사진:독자

캣맘 활동으로 인한 갈등은 개인이 불편을 겪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캣맘들이 모여 만든 단체의 후원금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이들은 동물 애호가들의 후원금을 받아 고양이 구조나 급식소 활동 경비를 충당한다. 법적으로는 10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은 ‘기부금품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등에 신고해야 한다. 문제는 등록 절차가 복잡해 대개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데 있다.

대표적인 갈등 사례가 ‘이문냥이’ 후원금 횡령 의혹 사건이다. 이문냥이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 구역에 있는 길고양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생겨난 단체다. 단체 결성에 앞장선 문모씨를 중심으로 이문냥이는 지난 3년간 이문동에 있던 100마리 이상의 길고양이를 구조했다. 단순 구조뿐만 아니라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TNR)과 건강 검진까지 진행해 약 70마리를 입양 보내기도 했다. 이문냥이의 활동은 기존 캣맘들이 가장 큰 비판을 받았던 ‘책임감 없는 양육’ 문제를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에서도 이문냥이의 프로젝트를 캣맘 활동의 모범 사례로 조명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이문냥이가 받았던 후원금 약 1억6000만원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다. 이는 삽시간에 횡령 의혹으로 번졌다. 문씨는 당시 “그동안 고양이 구조에 전념해서 2000여 장에 달하는 영수증을 제때 처리하지 못했다”며 “이른 시일 내로 정산해 공지하겠다”고 해명했다. 의혹 제기 후 한 달이 지난 작년 4월 20일, 문씨는 회계사의 도움을 받아 후원금 정산 내용을 회원들에게 보고했지만, 의혹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회원들이 문씨를 기부금품법 위반, 기부금 횡령으로 고소했다.

성동구 용답동에 있는 길고양이 급식소. ‘CCTV 작동 중’이란 경고문과 함께 ‘길고양이를 사랑해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사진:이상우 인턴기자

성동구 용답동에 있는 길고양이 급식소. ‘CCTV 작동 중’이란 경고문과 함께 ‘길고양이를 사랑해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사진:이상우 인턴기자

경찰 조사 끝에 문씨는 횡령 건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기부금품법 위반이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다. 문씨는 후원금 관련 의혹에 대해 “10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은 분명 미리미리 처리하려 했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 부주의했다. 지금은 회계사에게 아예 후원금 처리 내용을 맡기고 있다”고 했다.

캣맘들도 성숙한 시민의식 필요한 시점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밥비(고양이 구조 시 발생한 검진비, 치료비 등 병원비, 고양이가 먹은 밥, 사용한 모래 비용 일부) 관련 글. 이러한 입양 행태는 불법이지만 관례란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 사진:커뮤니티 캡처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밥비(고양이 구조 시 발생한 검진비, 치료비 등 병원비, 고양이가 먹은 밥, 사용한 모래 비용 일부) 관련 글. 이러한 입양 행태는 불법이지만 관례란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 사진:커뮤니티 캡처

때로는 캣맘들의 과도한 ‘집착’이 고양이 애호인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캣맘 커뮤니티에서 고양이를 입양하려다가 끝내 포기한 대학생 정유림(26)씨도 그런 예다.

정씨에게 고양이를 보내기로 한 캣맘은 ‘고밥비(고양이 구조 시 발생한 검진비, 치료비 등 병원비, 고양이가 먹은 밥, 사용한 모래 비용 일부)’ 10만원을 요구했다. 자신이 길고양이를 구조해 사용한 비용을 보전해 달라는 건데, 동물 애호가들 사이에선 이런 고밥비가 동물 매매를 금지하는 법을 우회한 사실상의 ‘거래’라고 본다. 고밥비는 대개 5만~1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정씨는 “길고양이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당당히 돈을 요구하는 게 황당했다”며 “몇 번이나 (고밥비를 받는 행위가) 불법이라 말했지만, 상대방은 남들 다 그러는데 왜 유난이냐며 저를 오히려 타박했다”고 했다. 실제로 캣맘 커뮤니티에선 아직도 공공연하게 고밥비를 요구하는 입양 관련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캣맘들끼리 길고양이를 두고 부딪히는 일도 생기곤 한다. 4월 3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한신아파트를 취재하던 중 주민 김경림(55)씨와 홍영숙(74)씨가 다투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두 사람은 아파트 내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는 캣맘이었다. 아파트 화단에 놓인 길고양이 급식소엔 김씨가 준 사료와 홍씨가 준 음식이 각각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길고양이 관리자라고 우기다가 결국 다툼을 벌였다. 김씨는 “내가 2년 전부터 단지 내 고양이들을 관리해왔는데 어느 순간 어르신(홍씨)이 무단으로 제가 만든 급식소에 밥을 주기 시작했다”며 “사료도 사람들이 먹는 참치 통조림 같은 것을 줘 사실상 고양이를 죽이는 짓을 하고 있다”고 화를 냈다. 홍씨는 어이없다는 입장이다. “(먹이를) 주고 싶은 사람이 개방된 장소에다가 먹이를 주는 건데 뭐가 문제냐”며 반박했다.

캣맘 간의 갈등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외대에서 고양이 먹이를 주는 배성희씨 역시 외대 재학생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교내 고양이를 관리하는 단체 ‘냥만외대’ 회원들이 배씨에게 교내 위생과 고양이 안전을 위해 몇 번이나 무단으로 먹이를 주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소용없었다. 배씨는 “자기들만 길고양이를 관리하려는 게 웃기다”며 오히려 냥만외대 회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길고양이로 인한 갈등은 최근 생태계 교란 문제로도 확산되고 있다. 물론 찬반 양쪽의 주장은 한치 양보도 없이 각자의 논리를 편다. 논란을 촉발하는 건 사람이지만, 결국 피해는 애꿎은 동물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자 정부도 길고양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지난 3월 농림축산식품부는 길고양이 복지 개선 협의체를 만들고 ‘길고양이 돌봄 가이드라인’을 올해 안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엔 캣맘의 길고양이 돌봄 매뉴얼이 포함될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매뉴얼이 확립되면) 캣맘과 일반 시민 간 갈등도 줄어들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캣맘에 대한 혐오는 지양하고 캣맘 역시 그에 맞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이상우 월간중앙 인턴기자 shineto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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