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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귀싸대기 날렸다"…정명석과 싸움 결심한 28년전 그날 [월간중앙-김도형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명석, 영원히 감옥에서 못 나올 수 있다”

“대학 때 친구 따라 찾아간 이단 교회서 정명석과 질긴 악연 시작”
“성범죄 피해자 4명 정명석 추가 고소 예정…JMS 완전히 없애야”

김도형 단국대 수학과 교수(JMS 피해자 모임 엑소더스 전 대표)가 3월 28일 오후 충남 천안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김성태 객원기자

김도형 단국대 수학과 교수(JMS 피해자 모임 엑소더스 전 대표)가 3월 28일 오후 충남 천안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김성태 객원기자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교주 정명석(78)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넷플릭스 웹다큐 [나는 신이다]에 그의 악행이 집중 조명되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정명석은 2001~2006년 여신도 4명을 성폭행 또는 추행한 죄로 2009년 4월 23일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정명석은 출소 이후에도 악행을 멈추지 않았다. 2018년 2월 23일 대전교도소에서 풀려난 뒤 여신도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28일 다시 구속 기소됐다. 대전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나상훈)의 재판을 받고 있는 정명석은 현재 대전교도소에 구금된 상태다. 검찰과 경찰은 최근 JMS 본거지인 충남 금산군 진산면 월명동 수련원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여죄를 밝혀내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나는 신이다] 공개 이후 정명석 못지않게 화제가 된 인물이 김도형(50)씨다. 단국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대학 시절 잠깐 JMS에 몸담았지만, 이후 반(反) JMS 단체 ‘엑소더스’를 이끌며 여성 피해자들을 도왔다. 정명석의 범행을 세상에 알리고 그를 구속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얼굴을 마주한 김 교수는 “대학 4학년 때 친구 따라 찾아갔던 교회라는 데서 JMS와의 질긴 악연이 시작됐고, 이참에 JMS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한국인 여성 3명과 독일인 여성 1명이 조만간 정명석을 상대로 추가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명석 성범죄 좌시할 수 없어 ‘저격수’ 자처

 충남경찰청 과학수사대 차량이 정명석 JMS 총재의 여신도 성폭행 혐의 사건 관련 압수수색을 위해 3월 23일 충남 금산군 월명동 수련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충남경찰청 과학수사대 차량이 정명석 JMS 총재의 여신도 성폭행 혐의 사건 관련 압수수색을 위해 3월 23일 충남 금산군 월명동 수련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학 시절 잠깐 JMS 신도였다고 들었다.

“KAIST(카이스트) 학부과정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 때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교회는 서울에 있었다. 대전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주말에 서울 올라갈 일이 없으면 교회를 못 가곤 했다.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대전에 위치한 교회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중 친구 권유로 따라간 게 하필 거기였다. 1995년 3월이었다. 대전에서 가장 큰 JMS교회였다.”

첫인상이 어땠나?

“그냥 정상적인 교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목사 설교 내용이 일반 교회와 너무 달랐다. 자기들만의 독특한 교리를 교육시켰다. 뭐 이런 데가 있나 싶어 알아보니 이미 정통 교단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힌 곳이었다. 교주 정명석에게 성추행 당한 여대생들의 폭로 수기도 접하게 됐다. 곧바로 KAIST 신자들을 관리하던 JMS 간사에게 ‘이 교회 이상한 곳 아니냐’고 따졌더니 그 간사가 감당이 안 되겠던지 대전 지역 전체를 관리하는 전도사를 소개해줬다. 연상의 여자 전도사가 나를 설득하겠다고 왔는데, 예뻐 보였다. 그러다 그를 좋아하게 돼버렸다. 팔자가 꼬인 계기였다(웃음).”

정명석 성추행 의혹부터 캐물었겠다?

“자기가 선생님을 직접 모셔봤는데, 여신도를 성추행한 일은 절대 없었다고 펄쩍 뛰었다. 멀쩡하게 생긴 4년제 대학 나온 여자가 억울해 죽겠다고 하니 잠깐 생각이 바뀌었다. 더 다녀보기로 했다. 그리고 좀 지나서 정명석 설교를 직접 듣게 됐다. 되는 대로 지껄이는 데다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초미니스커트 차림의 키 큰 아가씨들에 둘러싸여 있는 정명석 꼬라지를 보고 이게 무슨 교회냐 싶어 3~4개월 만에 탈퇴를 결심하게 됐다.”

바로 탈퇴했으면 그 단체와 엮일 일도 없지 않았나?

“이미 여자 친구가 돼버린 전도사가 마음에 걸렸다. 고생고생 끝에 겨우 빼낼 수 있었는데, JMS를 탈퇴하고 나서야 자신도 정명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하더라.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자 귀싸대기를 날린 게 그때였다. 배신감에 자동으로 손이 올라갔다. 남자친구도 속일 정도면 JMS 전도 대상이던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 피해를 당했겠나? 수상쩍은 마음에 교회에 처음 갔을 땐 보였다가 안 나오던 여자들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해봤다. 그이들도 이미 정명석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해 JMS를 탈퇴한 상황이었다.”

당시 여자 친구까지 돌려세웠으면 그만 아닌가?

“성범죄 피해자를 실제 확인한 뒤부터는 이걸 그냥(묵인하고) 넘어가기가 힘들더라. 가해자인 정명석을 내 두 눈으로 봤고, 범죄 사례를 귀로 들었고, 전국의 대학에 정명석에게 여대생을 갖다 바칠 목적의 JMS 서클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정명석은 닥치는 대로 성범죄를 저지를 자라는 확신이 생겼다.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

교주 성범죄 은폐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JMS

 정명석 JMS 총재. / 사진:엑소더스

정명석 JMS 총재. / 사진:엑소더스


그래서 어떻게 했나?

“피해자들을 제대로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성범죄 관련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기 전까지 가해자 수사 등을 위해선 반드시 피해자의 고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피해자들은 비슷한 소리만 했다. ‘부끄럽고 무섭다’는. 김도형 당신이 내 인생 책임질 거냐고 따지는 이도 있었다. 너무 화가 났다. 매일같이 술 마시고 JMS 측에 전화 걸어 ‘정명석 개XX 바꾸라’고 소리 질렀다. 내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다 남겨가면서 연락하곤 했다. 우연히 정명석이 카이스트 바로 옆 충남대 최고경영자 과정에 재학 중이라는 얘길 듣게 됐다. 어느 날은 전화해서 그랬다. ‘정명석이한테 전해라. 내가 그 대가리에 구멍 내주려고 산탄총 사뒀으니 학교 갈 때는 헬멧 쓰고 다녀라’고. 그랬더니 학교에 안 오더라. 실제로는 겁이 엄청 많은 자였다.”

그들이 가만히 있던가?

“정명석의 경호원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다. 1998년 2월 벌어진 일이다. 만날 월명동 JMS본부에 전화해 소리 지르고 여기저기 언론사에 제보하고 다니니까 결국에는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장교 출신이라는 경호원이 날 찾아와 폭행했다. 대전의 한 레스토랑에서다. 대화 도중 ‘야! 김도형이 네 부모도 그룹섹스하고 성병 걸리냐’면서 유리컵을 제 얼굴에 다짜고짜 집어던지며 폭행했다. 그 레스토랑 지배인이란 작자도 웃기는 자다. 112에 신고해달라니까 나보고 ‘당신이 직접 하라’고 하더라. 신고하겠다던 직원까지 뜯어말렸다.”

그 뒤론 어떻게 됐나?

“얼굴 등 서른 바늘 정도를 꿰맸다. 경찰에 신고하고 전치 3주 진단서도 제출했다. 어이없게 가해자도 전치 1주 진단서를 끊었더라. 저는 결국 기소유예됐다. 상대는 기존 폭행 전과가 있었음에도 150만원 벌금형에 그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건을 맡았던 검사가 JMS 신도 이 모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되묻겠다. 그런 험한 일을 당하고도 공격을 멈추지 않은 이유가 뭔가?

“너무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에 손을 뻗치는 나쁜 자들이고,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있으니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이후에도 JMS 측에 수도 없이 전화해 욕설을 퍼붓고, 그러다가 상대방과 오히려 친해질 정도로 그랬다. ‘야 이 XX야 이제 좀 바꿔줘’ 그러면, ‘야 김도형 너도 이제 적당히 좀 해’라고 받아칠 정도였다(웃음).”

정명석의 성범죄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언제인가?

“1999년 1월 6일 저녁 ‘황 모씨 납치 사건’이 터지면서부터다. JMS를 탈퇴한 여신도 황씨를 서울에서 광신도들이 납치해 월명동으로 끌고 간 사건이다. 황씨 친구 신고로 납치범들이 금산에서 잡혔다. 황씨가 경찰서에서 정명석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고, 나 같은 여자가 100명이 넘는다고 진술하면서 JMS 실체가 드러났다. 이튿날 아침 방송사 등에서 일제히 사건 소식을 다뤘고, 정명석은 바로 해외로 도피했다.”

사회 곳곳에서 정명석 비호하고 보복 폭행까지

 검·경은 정명석 JMS 총재의 여신도 성폭행 혐의 사건과 관련해 3월 23일 충남 금산군 월명동 JMS 수련원과 세계선교본부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JMS 세계선교본부 앞. / 사진:연합뉴스

검·경은 정명석 JMS 총재의 여신도 성폭행 혐의 사건과 관련해 3월 23일 충남 금산군 월명동 JMS 수련원과 세계선교본부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JMS 세계선교본부 앞. / 사진:연합뉴스

엑소더스 대표를 맡아 피해자들을 본격적으로 돕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뉴스가 터지니까 JMS 신도로 정명석 뒤를 봐주다 옷을 벗은 당시 이 모 검사가 저에게 전화해 ‘인생 망가지기 싫으면 조심하라’고 협박하더라. 현직 검사가 겁을 주니 어쩌겠나. 기숙사에도 못 들어가고 학교 근처 여관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학교에 사연이 알려져 ‘김도형 학우 돕기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비대위에서 따로 인터넷 홈페이지도 만들어줬다. 소식을 들은 탈퇴 신도들이 홈페이지에 찾아와 엑소더스를 만들었고, 정명석에 분노한 일반인들이 정의연대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그러다가 2000년 두 모임이 합쳐지면서 회장이 됐다. 정명석이 중국 공안에 붙잡혀 2008년 2월 국내로 송환될 때까지 직을 맡았다.”

정명석은 10년 가까이 해외 도피 생활을 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JMS 내부 조력자 덕분이다. 국내 수사기관의 무관심도 한몫했다. 정명석의 도피 생활을 도운 핵심 인물은 대한삼보연맹 회장 문 모씨다. 문씨 부인은 같은 JMS 신자인 전 모씨다. 전씨는 화장품 업체를 운영한다. ‘샹○○’라는 브랜드 화장품을 만드는 곳이다.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등에 모두 입점한 브랜드다. 수출을 많이 해 문재인 정부 때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돈이 굉장히 많은 이들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왔다는 얘기인가?

“정명석이 홍콩에서 중국 본토로 밀항했을 때다. 정명석이 중국에서 머문 도피처를 만들어준 이가 문씨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안산시에 대저택 6개를 세웠다. 지하로 피신할 수 있는 비밀 통로까지 있는 대 저택이다. 돈이 워낙 많아 정명석 도피처를 지은 것은 물론 중국의 지방 공안까지 매수했을 정도였다. 중국에 있던 정명석에게 여신도들을 바친 이도 문씨다.”

정명석이 중국으로 밀항하기 전 그를 직접 붙잡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

“2003년 7월이었다. 엑소더스 회원들과 현지 정명석의 소재를 미리 파악하고 홍콩 이민국 직원들과 함께 불법 체류하던 정명석을 체포했다. 그런데 정명석이 또 변호사를 선임해 10만 홍콩 달러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버렸다. 그러고선 중국으로 도망간 것이다. 중국에서 대놓고 저와 회원들에 대한 보복을 지시했다. 원격 설교를 통해 ‘가라지를 불태워 죽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성경에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있다. 자기들이 알곡이고 반대 세력이 가라지라는 것이다. 흑암의 세력과 맞서 싸우라는 정명석의 설교를 듣고 저한테 정보를 주던 어떤 분이 조심하라고 귀띔해줬다.”

JMS 측의 공격이 다시 시작됐겠다.

“2003년 8월 한 시사 주간지 기자와 엑소더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도중 JMS 신도들이 다짜고짜 쳐들어와 저는 물론이고 기자까지 폭행했다. 기자라고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쓸데없이 이런 데나 취재하고 있냐’며 때렸다. 그때 또 저는 전치 3주 치료를 요할 정도로 다쳤는데, 여하튼 기자를 때렸으니 해당 매체에 바로 보도가 됐다. 그러니까 이 자들이 일단 멈칫했다. 그러다가 좀 잠잠해지니까 2003년 10월부터 다시 보복을 시작했다. 저희 사무실에 30명쯤 쳐들어와 회원들을 폭행해서 한 명은 쇄골에 금이 갔고, 그해 10월 26일에는 홍콩에서 정명석을 잡는 데 동참했던 대학생 한 명을 전주까지 찾아가 쇠파이프로 가격했다.”

엑소더스 회원은 물론 김 교수 부친도 테러 당해

 반(反) JMS 활동을 해온 김도형 단국대 수학과 교수는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친도 JMS 신도들에게 폭행 테러를 당했다고 재차 언급했다. / 사진:김성태 객원기자

반(反) JMS 활동을 해온 김도형 단국대 수학과 교수는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친도 JMS 신도들에게 폭행 테러를 당했다고 재차 언급했다. / 사진:김성태 객원기자

부친도 JMS로부터 테러를 당했다고 들었다.

“2003년 10월 29일에 벌어진 일이다. 원래 저를 타깃으로 삼았는데, 제가 있는 데를 못 찾으니까 경기도 용인에 계시던 저희 아버지까지 찾아가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로 폭행했다. 왼쪽 얼굴뼈가 함몰되는 등 심하게 다치셨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가셨는데, 응급 처지 후에 성형외과 병실에 입원하셨다. 하루는 아버지 병문안을 갔는데 어머니가 무섭다고 하시더라.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지가 13층 6인실에 입원해 계셨는데, 다른 층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아버지를 찾아와 ‘아저씨가 방송에 나온 그 사람이죠’라고 말하면서 노려보는데, 그 눈빛이 너무 섬뜩하더라는 것이다. JMS 신도 중 간호사가 되게 많다. 여자들을 많이 포섭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JMS 신도가 그렇게 많았나?

“심지어 당시 아버지 주치의도 JMS 소속이었다. 어머니에게 그 얘길 듣고 성형외과 주치의가 회진할 때 ‘선생님! 아버지가 사이비 종교 집단에 테러를 당해 입원했는데 아무 상관도 없는 간호사가 저희 아버지를 찾아왔답니다. 그 집단 신도 중에는 간호사도 많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사가 대뜸 저를 손가락질하며 ‘이것 봐. 당신이 그 따위로 하면 내가 일을 못해. 알았어?’ 이러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사과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주치의도 JMS 신도였다.”

아버지 주치의가 JMS 신도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

“병문안 온 회원 중 한 명이 아버지 침대맡에 적힌 주치의 이름을 보고 알려줬다. 두세 달 전부터 엑소더스 사무실에 찾아와 ‘내 아들이 분당서울대병원 의사인데,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미쳐 돌아간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결혼까지 하려고 한다. 우리 아들 좀 빼내줄 수 없냐’고 부탁하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하필 제 아버지 주치의였던 것이다. 당시 그 주치의가 경찰에 제출한 아버지 상해진단서는 전치 4주였다. 고려대병원으로 아버지를 옮긴 뒤 다시 진료해보니 전치 8주 진단이 나왔다. 그 성형외과 주치의는 아직도 그 병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제 정명석 수감 이후 얘기도 해보자. 정명석은 2008년 2월 중국에서 국내로 송환된 뒤 10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 교주가 교도소에 있는 상황에서도 종교 단체가 유지됐다는 것이 납득이 안 간다.

“신도들에게는 정명석이 억울하게 감옥 갔다고 세뇌시키고 거짓말하면서 버텨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도들에게 그런 세뇌를 시켰던 JMS 간부들에 대해서도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JMS 내부에선 정명석 모방 범죄 사례도 많아

재판을 받고 있는 정명석은 조만간 구속 기간이 만료된다.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신뢰하나?

“지난해 홍콩에 거주하는 영국 국적 피해자와 호주 국적 피해자 두 분이 정명석을 상대로 고소했고, 지난 1월 한국인 피해자 세 분이 또 용기를 내 경찰에 고소했다. 조만간 독일 국적 여성 한 명과 한국인 세 명이 추가로 고소할 것으로 안다. 고소장만 작성되면 경찰에 바로 접수할 예정이다. 피해자 고소가 늘고 있는 만큼 수사기관이 이번에는 허투루 하지 않을 것 같다.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정명석이 과거 밀항한 경력까지 있어 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힘들 것 같다. 얼마 전 재판에서 재판장도 피고인의 특수성 때문에 보석은 불가하다고 밝혔다고 들었다. 사실 이번에 제가 넷플릭스 다큐에 출연한 이유가 정명석을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못 나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저 교단을 무너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검찰과 경찰이 JMS를 압수수색하는 등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다.”

현재 JMS 신도는 얼마나 될까?

“아직도 전국에 3만 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JMS 대학 동아리 현황’ 리스트를 본 적 있다. 제명당한 곳도 있었지만 지금껏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 있다는데 사실인가?

“당연하다. 젊은 대학생들을 포섭하는 게 그들 목적인데, 대학교에 동아리가 없다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이런 일도 있었다. 과거 S대 JMS 동아리 ‘오손도손’이 제명됐다. 그런데 얼마 안 돼 한 신도가 다른 모임을 또 만들었다. 이 신도가 JMS에 완전히 세뇌가 돼버렸다. 정명석이 나중에 만나러 오라고 하자 ‘내가 우리 선생님 결백을 증명해 보이겠다’면서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고서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들었다.”

대학생들은 어떤 식으로 포섭하나?

“신도들 세뇌하는 것과 똑같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재림 예수님이 억울하게 감옥에 가셨다.’ 정명석이 갇힌 10년 동안 내내 같은 논리다.”

최근 전국 JMS 교회 명단이 인터넷과 온라인을 통해 공개됐다.

“문제의 교회 대부분이 간판을 바꿨을 것이다. 그 사람들 특징이 들키면 항상 그랬다. 교회마다 기본적으로 목사들이 다 있다. 정체가 탄로나자 바퀴벌레처럼 이사한 곳도 있을 것이다.”

정명석의 악행을 따라한 자는 없나?

“모방 범죄가 꽤 있었다. JMS에 ‘명동전도단’이란 단체가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 명동 거리에서 여자들을 포섭해 교육시키고 정명석한테 상납하는 데 귀신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김 모라는 자인데, 정명석이 더 잘하라면서 전도단을 만들어 대장 자리에 앉힌 거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사람이 먼저 여성들을 추행하거나 성폭행하다가 들켰다. 정명석 경호원들이 이 사람을 월명동에 데려다가 몇날 며칠을 두들겨 팼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예쁜 여자를 잘 갖다 바치던 자라서 정명석이 용서해주고, 전도단도 유지해줬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명석이 1999년 해외로 도망가자 앙심을 품고 그동안 자신이 갖다 바친 피해자들을 회유해 JMS 측으로보터 배상을 받아주겠다며 고소장을 쓰게 했다. 그렇게 해서 총 2억1000만원을 받아놓고선 정작 피해자들한텐 한 푼도 안 줬다. 그리고는 또 그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정명석 친동생 중 정범석이라는 JMS 목사도 형 따라서 여신도들을 건드리고 그랬다. 성범죄가 친고죄이던 때라 유야무야됐지만…”

피해자들 소송비 충당하기 위해 책 출간해

정명석의 형제는 몇 명인가?

“6남 1녀, 7형제다. 위로 형이 둘 있는데, 한 명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목사하다가 은퇴했고, 또 한 명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였다. 정명석의 동생은 규석, 범석, 용석, 영자 등 4명으로 모두 JMS 목사다. 웃기는 게 정명석 부친상 때 JMS 본부에서 장례식을 치렀는데, 신도들이 어마어마하게 조문을 오니까 두 형이 ‘네가 효자’라며 추켜세워줬다고 한다.”

혹시 정명석의 자식은 없나?

“공식적으로는 없지만, JMS 초창기 멤버들 증언에 따르면 정명석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한 여성들 중 중절 수술을 안 한 이가 있다는 소문은 있다.”

지난해 1월 [잊혀진 계절]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을 펴낸 이유는?

“JMS의 실체를 알리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 소송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출판사도 직접 만들었다. 기존 출판사들이 JMS의 테러나 소송을 우려해 책을 내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판사 이름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정명석을 다시 감옥에 넣는 애프터 서비스를 해주자는 의미에서 ‘도서출판 AS’로 정했다. 2018년에 제가 연구년이어서 미국에 있었는데, 그때 원고는 이미 거의 다 썼다. 그런데 출판 경험이 없다 보니 교정 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여하튼 책 판매비로 외국인 피해자 등의 교통비, 체류비, 변호사비 등을 충당하려고 했는데 너무 안 팔려서 돈 먹는 하마가 돼버렸다. 다행히 넷플릭스 다큐에서 책도 소개해줘 그나마 빚을 갚아나가는 정도는 됐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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