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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업 금지’ 없애달라고?…N잡러 고민 커지는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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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대기업 A사는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투잡(Two Job)’ 여부를 조사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재택근무 중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는 직원이 많다는 지적이 그 출발점이었다. 조사 결과, 직원 중 상당수가 재택근무 시간 중 다른 부업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내용도 가지가지였다. 배달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거점 오피스로 출근해 자신의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었다. A사의 취업 규칙은 ‘겸직 금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전체 부업자 및 가구주 부업자 수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전국경제인연합회]

전체 부업자 및 가구주 부업자 수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전국경제인연합회]

결국 이 회사는 관련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하고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26일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회사에서는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뒤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원이 많다니 황당한 지경”이라며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도 전파해 유사한 일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N잡러’(복수의 직업을 가진 이)가 늘면서 기업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소속 임직원이 ‘부업’에 힘쓰다 보니 정작 몸담은 회사 일에는 소홀해질 수 있어서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은 취업 규칙을 통해 ‘겸직 금지’를 의무화하고 있다.

직장인 앱 블라인드 등에는 회사 모르게 부업을 하기 위한 노하우가 올라오기도 한다. 이들은 소득과 고용보험 등의 기록을 피하는 형식으로 일한다. 한 예로 다수의 N잡러들은 ‘일급 형태’(Cash Job)를 선호한다. 연말정산을 할 때 소득으로 잡히는 경우 회사 인사팀이 관련 사실을 알아챌 수 있어서다. 일용직 근로자는 소득세 신고를 본인이 직접 하는데, 이 경우 연말정산에 잡히지 않아 회사에서는 겸업 사실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배달이나 대리기사, 스터디카페 청소 등이 직장인 아르바이트로 인기를 얻는 이유다. 배우자나 부모의 이름을 활용해 임대업 등을 하는 사례도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들 ‘대기업 직장인 알바생’들은 부업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서울 마포구의 한 스터디카페 점주는 “아무래도 직장인 아르바이트생은 목적의식이 뚜렷하다 보니 근무 태도 등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편”이라고 전했다.

기업들은 업무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고심 중이다. 재택근무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익명을 원한 대기업 관계자는 “아무래도 사무실에 모여 있으면 최소한 근무 시간에는 딴짓을 덜 하지 않겠냐”며 “N잡러들이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라면서 겸직 금지 의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 요즘 분위기에선 강하게 징계하기도 어렵다”고 답답해했다.

최근 직장인 유튜버가 늘고 있다는 사실도 기업들을 고민스럽게 한다. 유튜브를 사실상 수익 활동으로 삼는 이들이 많지만 ‘일과 이후의’ 유튜브 활동은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튜브 활동까지 단속하긴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현실도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0년 아예 ‘임직원 소셜미디어 활용 가이드’를 만들어 사내에 공지했다. 가이드에는 ▶회사와 고객, 관계사, 협력회사의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다 ▶타인 소유의 지식 재산권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회사의 기밀 유출, 명예 훼손, 정상 근로에 방해가 된다는 점 등의 이유로 사적인 목적의 겸업 및 유튜브 활동을 공식적으로 불허하고 있다. 노무법인 유엔의 김성중 노무사는 “근로계약이라는 건 전속성이 매우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N잡은 사실 몸담은 회사와 근로계약 상의 충실 의무에 반하는 행위”라며 “부업을 하더라도 제한적으로 소속 기업의 승인을 받아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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