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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경쟁 수십년 갈것…한국 경제토대 다시 세워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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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앞으로 몇십 년 더 이어진다. 이런 세계 무질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은 경제의 근본을 더 강화해야 한다.”

세계경제연구원(IGE)을 30년째 이끄는 사공일(사진) 명예이사장의 진단은 엄혹했다. 그는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래 80년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복합위기(polycrisis)를 현재 맞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제경제 분야 민간 주도 싱크탱크 IGE는 26일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지정학적 도전, 기후변화 위기 그리고 세계 경제 미래’를 주제로 특별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공급망 재편, 무역·기술 보호주의의 확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불안, 고물가 위험이 한꺼번에 세계 경제를 덮쳤다. 이런 복합위기의 바탕엔 미·중 패권경쟁이 깔려있다. 사공 이사장은 “마오쩌둥이 공산당 정부를 수립한 게 1949년이니까 2049년이면 100주년이다. (그다음 해인) 2050년에 현 패권국 미국을 추월한다는 전략이 시진핑 정부의 중국몽”이라며 “패권경쟁은 날로 격화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복합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국제공조뿐이며, 한국은 뜻을 같이하는 중간 규모 국가들과 힘을 합쳐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스스로도 살길을 찾아야 한다. 사공 이사장은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라며 “대외 여건이 어려우면 그만큼 충격을 크게 받기 때문에 국제·국내 정책이 따로 있을 수 없다”고 짚었다. 그는 장기화할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제 토대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이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이다.

사공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가 개혁의 우선순위는 잘 정했지만, 취임 1년이 지나도록 실행 동력을 보이지 못했다”며 “여소야대로 정책 수행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걸 핑계로 삼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를 설득하려면 결국 여론이 움직여야 하는데, 정부의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소통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3대 개혁을 속도감 있게 하려면 정부부터 개혁하라는 지적이다.

신상필벌과 인사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장관에게 전권을 주고 대통령실은 거기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사공 이사장은 강조했다. 대통령실 경제수석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최장수 경제수석(1983~87년)을 지낸 그는 “당시 스스로 정한 수석론이 ‘페이스리스, 보이스리스(얼굴 없는, 목소리 없는)’였다”며 “뒤에서 장관과 부처를 돕고 서로 협조하는 역할을 해야지, 대통령실이 앞서면 부처가 손을 놓는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은행과 크레디트스위스를 무너뜨렸고, 이젠 퍼스트리퍼블릭은행으로 번지는 금융 불안에 대해서도 사공 이사장에게 물었다. 그는 “2007~2008년 이후 주요국 금융회사의 건전성은 많이 좋아졌고, 금융 감독기관 역할도 상당히 강화돼 전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할 우려는 작다”면서도 “유동성이 대거 공급된 상황이라서 달러 빚을 많이 쓴 신흥경제국을 중심으로 지역 차원 위기가 올 가능성은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신흥국 문제의 여파는 한국 같은 나라에 일차적으로 오게 돼 있다”며 “경제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한편, 금융·외환 부문에 선제 대응체제를 잘 마련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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