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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30) “관운장을 배워 만세에 이름을 드날리도록 하시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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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를 악인으로 묘사한 모종강본, 나관중은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관우는 조조의 극진한 대우를 뿌리치고 유비를 찾아 나섰습니다. 조조의 부하 중 채양이 관우를 뒤쫓아 가서 잡아 오겠다고 하자 조조가 말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허락한 일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옛 주인을 잊지 않고 오고 가는 것이 분명하니 참으로 장부이다. 너희들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내가 옛날에 이미 허락했는데 어찌 신의를 저버릴 수 있겠느냐? 그도 나름대로 자기 주인을 위하는 것이니 추격하지 말라.

조조는 훌쩍 떠난 관우를 전송하겠다며 먼저 장료를 보냈습니다. 관우는 조조의 진심을 알고 비단 전포를 받고는 곧바로 가던 길을 재촉해서 떠났습니다. 조조는 관우의 마음을 잡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돌아갔습니다.

조조가 선물로 준 비단전포를 청룡도로 받는 관우.

조조가 선물로 준 비단전포를 청룡도로 받는 관우.

모종강은 이렇게 평했습니다.

‘재물과 여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재물과 여색은 좋아하지 않더라도 벼슬과 봉록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없다. 벼슬과 봉록은 좋아하지 않더라도 지성으로 대접하고 몸을 굽혀 떠받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조조가 많은 인재를 부리며, 영민하고 준수한 사람들을 농락할 때 믿는 것이라고는 이 몇 가지뿐이다.’

‘관우만이 옛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철석같이 굳어 금은과 미녀를 주어도 변하지 않았고, 편장군(偏將軍)과 한수정후(漢壽亭侯)에 봉해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신분을 떠나 평등한 예절로 대하고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특이한 술수를 써도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자 간웅의 술수도 궁해져서 더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비로소 이 세상에 부릴 수 없고 농락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어찌 이러한 사람에게 감탄하며 우러러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종강은 조조의 행태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나쁜 짓거리로만 일축하고 있습니다. 유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미워도 잘한 점은 인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소설이 더 재미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나관중은 조조에게도 신경을 썼습니다. 나관중이 조조가 관우와 이별하는 장면을 표현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옛날에 이미 허락했으니 오늘 놓아주는 것이다. 쫓아가서 죽인다면 천하 사람들이 다 내가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어찌 신의를 저버릴 수 있겠느냐? 그도 나름대로 자기 주인을 위하는 것이니 추격하지 말라.

조조는 관우를 잘 알아 마음속으로 그 뜻을 갸륵하게 여겼고, 떠나는 사람을 쫓아가지 못하게 해 그 도리를 이루게 했으니 왕패(王覇)의 도량이 없었으면 어찌 이 정도에 이르렀으랴? 이야말로 조 씨의 아름다운 소행이다.

나관중은 위의 문장에 이어 조조를 찬양한 옛사람들의 시 두 수를 실었습니다. 그 시도 살펴보겠습니다.

공을 이룬 후 스스로 유비를 만나러 돌아가니 功成自合歸玄德
인수도 금은도 남겨두고 조조와 헤어지네. 解印封金離許都.
금은보화 부귀로움 부러워하지 않고 不羡金銀光照室
오직 은의만 생각하며 먼 길을 달려가네. 惟思恩義走長途.
천년에도 보기 힘든 준걸이라 말하지만 人言俊杰千年少
스스로의 맹세를 지키는 장군은 만고에도 없도다. 我道將軍萬古无.
추격함이 옳지 않아 철기병을 보내지 않았으니 不是追兵无鐵騎
조조의 뛰어난 도량은 길이 남을 지어라. 曹公尤重去時書.

삼국 초기 쟁투는 세력이 아직 나뉘지 않았는데 三國初爭勢未分
홀로 최상의 책략을 고민하고 전술을 행하였네. 獨行謀策最机深.
관우를 추격하지 않고 주인에게 돌아가게 하니 不追關將令歸主
실로 중원 천하를 다스리고도 남을 마음이로다. 便有中原霸業心.

나관중은 이 시 밑에 조조를 평가하는 문장을 추가했습니다.

‘이 시는 조조 평생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으니, 곧 유비를 죽이지 않고 관우를 쫓지 않았음이다. 조조에게도 너그럽고 인자한 대덕(大德)의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중원의 주인이 될 만하다.’

어떻습니까? 나관중본과 모종강본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지요? 모종강은 조조는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되는 악인이기에 위의 부분을 대거 삭제한 것입니다. 그리고 회평(回評)에 교활한 수단이라고 평가함으로써 ‘조조악인론’을 더욱 공고하게 구축했습니다.

나관중본에은 조조가 관우에게 비단 전포를 주고 돌아가면서 탄식할 때, 조조가 부하 장수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여러 장수도 관운장을 배워 만세(萬世)에 썩지 않을 맑은 이름을 이루어야 할 걸세.

모종강은 조조의 이 말도 삭제했습니다. 조조는 교활하고 사악한 말만 하는 인물이어야 하니까요.

관우는 파릉교에서 조조와 작별인사를 하고 두 형수와 함께 유비를 찾아 떠났습니다. 조조의 명령과는 다르게 관문을 지키는 장수들은 출입허가증이 없는 관우를 쉽게 보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관우는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명의 장수를 죽입니다. 조조도 허락한 마당에 한시 급히 형님에게 가야 하는 관우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조와 관우가 작별한 파릉교의 상황을 묘사한 부조. [사진 허우범 작가]

조조와 관우가 작별한 파릉교의 상황을 묘사한 부조. [사진 허우범 작가]

오늘 살펴본 장면은 우리가 연의를 읽을 때 가장 재미있게 읽는 관우의 ‘천리독주(千里獨走)’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이었습니다. 호쾌하고 충의로운 관우의 행동을 찬양하는 시가 빠질 수 없습니다.

관인 걸고 황금도 봉한 채 조조와 작별하니 挂印封金辭漢相
형님 찾아가는 길, 멀리 돌아가는 길 尋兄遙望遠途還
적토마 타고 천리 길을 내달리고 馬騎赤土行千里
청룡언월도 휘두르며 다섯 관문을 돌파하네 刀偃靑龍出五關
충의기상은 분연하게 하늘까지 오르고 忠義慨然冲宇宙
영웅은 이때부터 천하를 호령하네. 英雄從此震江山
홀로 가며 여섯 장수 베니 누가 나서겠는가 獨行斬將應無敵
옛날부터 시서화의 글감이로다. 今古留題翰墨間

관우는 손건을 만나 원소가 유비를 죽이려 했던 일과 이로 인해 유비가 몸을 피해 여남(汝南)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관우는 하북으로 가던 길을 돌려 즉시 여남으로 향했습니다.

진국사에서의 매복을 피해 변희를 죽이는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진국사에서의 매복을 피해 변희를 죽이는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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