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5시30분쯤 여객선 비욘드트러스트(Beyond Trust) 호가 북위 34도, 동경 125도 부근에 다다랐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상과 비슷한 위도였다. 여객선 갑판 위에서 시계를 바라보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6명의 시선이 선박 좌현(左舷)으로 향했다. 유가족들은 “왼쪽으로 30㎞를 가면 사고 난 지점 이라더라”(김병권씨), “날은 밝은데 파도가 아주 거세네. 그날도 그랬을까”(이용기씨) “애들은 지금 우리랑 마음이 달랐을 거야, 여행 간다는 생각에 들떴을 텐데”(박순남씨)라며 나지막이 되뇌었다.
9년 전 가족을 삼킨 바다를 바라보던 이들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찰나, 누구도 선뜻 꺼내지 못한 말이 허공에 던져졌다. “아이들을 위해선 울지 말아야지.” 김정화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위원장이었다. 출렁이는 파도와 세찬 바닷바람에도 손을 맞잡은 이들은 한동안 갑판을 뜨지 않았다.
“트라우마 이겨내겠다”며 택한 뱃길
2021년 12월 10일 세월호 참사 이후 닫혔던 인천~제주 여행길이 7년 8개월 만에 다시 열렸다. 비욘드 트러스트호를 운항하는 선사는 “안전한 운항으로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의 마음은 최근에서야 열렸다. 유가족들은 지난 3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길이 약 80㎝, 폭 약 30㎝인 도자기 3점을 만들었다. 도자기엔 희생자 304명 이름과 유가족의 메시지, 그림 등이 새겨졌다. “4월의 그 바다는 아무 일 없다는 그대로인데”, “우리 그곳에서 다시 만날 땐 이별이 없기를”,“아들 있는 곳 알려줘. 아빠가 해경 보낼게” 등의 문구가 담겼다. 기증 장소는 세월호 제주기억관으로 정해졌다. 김정화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로 미완에 그친 아이들의 여행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자기를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유가족들은 여객선 운반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지만, 비욘드 트러스트호는 취항 후 엔진 이상 등으로 5차례 운항을 중단한 이력이 있었다. 상당수 유가족이 참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긴 항해 기간(14시간 30분)도 적잖은 부담이었다. “나도 몇 번 타봤는데 괜찮다. 이젠 트라우마를 이겨낼 시기다.” 탑승 경험이 있던 전태호 세월호참사 일반인희생자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이 설득에 나섰다. 장고 끝에 유가족은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선사를 믿어보기로 했다. 여객선 탑승을 고민하던 이들도 “9년 전 악몽에 지지 말자”며 용기를 냈다고 한다.
지난 21일 오후 6시쯤 故 이호진군의 아버지 이용기(54)씨, 故 김빛나라양의 아버지 김병권(58)·김정화 부부, 송지나양의 아버지 송용기(59)씨, 故 선우진군의 어머니 박순남(51)씨, 아버지 전종현씨를 잃은 전태호(46)씨 등 6명이 인천항에서 제주행 여객선에 올랐다. 송용기씨는 “다들 배 타는 걸 두려워했지만 이겨내자고 뜻을 모았다”며 “아이들의 숨결이 서린 뱃길을 지나면서 그 심정을 아로새기겠다는 다짐도 있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22일 오후 세월호 제주기억관에 도자기 기증을 마쳤다. 다시 배에 오르는 유가족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해 보였다. “언젠간 갈 길이었어요. 아픔에만 젖어있는 걸 아이들도 원하지 않을 거예요. 하나하나 이겨내야죠. 물론 아픔은 잊지 말고 사고에 책임을 물어 비극이 반복되는 것도 막아야겠지요. 참사 악몽을 딛고 다시 열린 뱃길인데 여객선도 신뢰를 되찾았으면 합니다.” 지난 16일 딸 김빛나라양의 9주기를 맞은 김정화 위원장의 간절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