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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진 vs 재진' 따지다 다시 표류 위기…비대면 진료의 운명은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2월 코로나19 때 비대면 진료 사진.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지난해 2월 코로나19 때 비대면 진료 사진.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이르면 5월 코로나19 기간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코로나19의 위기경보 단계가 하향 조정되면서다. 이에 따라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25일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환자·질환 범위, 수가 등을 놓고 의료계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어 단기간 내 결론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입법 공백기 동안 시범사업으로 비대면 진료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복지위는 25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5건을 심사한다. 현재 국회에는 비대면 진료의 근거나 기준 등이 담긴 의료법개정안 5건이 발의돼 있다.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지 않고 문진·처방이 이뤄지는 비대면 진료(원격 의료)는 1988년 원격영상진단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30여년 넘게 시범사업으로 표류해왔다. 의료계 반발이 거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아 한시적으로 자리 잡게 됐다. 재난적 의료 상황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3년간 1379만 명이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오미크론 변이 유행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치솟았던 지난해에만 1272만 명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때문에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는 조만간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현행법은 코로나19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 이상일 때만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게 풀어놨다. 이르면 다음 달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를 발표하면,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하향 조정될 수 있다.

비대면 진료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정부는 법안 처리 전 한시 허용이 끝나 입법 공백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 개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텐데, 그렇다고 국민들이 이미 3년째 이용해온 비대면 진료를 전면 중단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시범사업 형태로 계속 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현재 국회가 논의 중인 법안 취지를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어느정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소아과의 야간·휴일 진료, 감염병 의심 증상 등의 경우 시범사업 기간에도 지금처럼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진료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초진 허용에 의료계 vs 산업계 갈려

비대면 진료를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초진(첫 진료)을 허용하느냐다. 정부와 의료계는 재진 환자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열어두겠다고 합의했지만, 산업계는 초진 환자도 허용해야 한다며 강하게 맞서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 5건 가운데 4건(강병원·최혜영·이종성·신현영 의원)이 재진 환자만 허용하도록 했다.
산업계는 “비대면 진료 앱 이용 환자 99%가 초진”이라며 초진을 불허하면 비대면 진료 업계가 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 2월 24일∼2022년 9월 30일 비대면 진료 989만8995건(초·재진 구분 가능한 진료) 중 초진은 약 9%(89만1529건)으로 집계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의료계는 “환자 안전은 편리함과 바꿀 수 없다”며 재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대부분 국가는 비대면 진료에 있어서 재진을 먼저 허용했다. 코로나19 때 초진을 허용했어도 일상회복에 따라 재진으로 차차 전환하는 추세에 있다. 주요 7개국(G7) 국가 중 초진을 허용하는 국가는 사실상 미국·캐나다밖에 없다. 일본·영국·프랑스는 초진을 허용하더라도 주치의 제도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게 의협 설명이다. 미국은 내년 12월 31일을 끝으로 비대면 진료에서 초진을 종료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본 등에선 소아·장애인 등 필요한 경우 비대면 진료에서의 초진이 허용된다”라며 "논의를 거쳐 예외를 두거나 재진 기준을 넓게 인정하는 등의 방안이 있다"라고 말했다.

남은 쟁점은 

만성질환으로 정한 질병 범위도 쟁점 중 하나다. 국회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 5건 중 3건이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산업계 측은 “감기·소화불량 등 가벼운 증상을 가진 환자를 받지 못해 이용자 수가 급감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의 수가(의료 행위의 대가)도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한시 허용된 비대면 진료 때 수가는 진찰료와 전화 상담 관리료 30%를 더해 기존 외래 진료비의 130%로 책정됐다. 의협은 비대면 진료가 안고 있는 오진 가능성 등을 이유로 진료비 1.5배 향상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23일 열린 의협 대의원총회에서는 ‘비대면 진료 수가 150~200% 인상’ 논의도 거론됐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24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비대면 진료에서 의료인의 수고가 더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비대면 진료에 일반 진료보다 더 높은 수가를 적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밖에 약 배송 문제나 문제 발생 시 책임소재 여부 등도 남아있는 쟁점이다. 정부는 의료계와 의정협의체로 소통하며 제도화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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