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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바다 위 마른땅 ‘신비의 바닷길’…4년만에 다시 걸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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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지난 21일 ‘신비의 바닷길축제’가 열린 진도군의 모도 쪽에서 진도 본섬이 있는 회동리 방향으로 바닷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1일 ‘신비의 바닷길축제’가 열린 진도군의 모도 쪽에서 진도 본섬이 있는 회동리 방향으로 바닷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1일 오후 6시쯤 전남 진도군 고군면. 양식장 부표가 떠 있던 바다 한복판에 황토색 길이 나타나자 관광객들이 술렁거렸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진도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관광객 중 일부는 붉은색 장화를 신고 아직 바닷물이 남아있는 바닷길로 들어가 해산물을 잡기도 했다. 올해 신비의 바닷길은 진도 본섬 쪽보다 맞은편 섬인 모도 쪽 바닷길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잠정 중단됐던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4년 만에 재개됐다. 올해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하루 한 차례씩 열렸다.

신비의 바닷길은 진도 본섬인 고군면 회동과 의신면 모도 사이의 바다에 길이 생기는 현상이다. 바다 가운데 폭 30~40m 규모로 2.8㎞가량 길이 드러나는 광경이 장관을 이룬다. 관광객들은 이날 1시간여 동안 바닷길을 걷는 체험을 했다. 올해는 예년보다 바닷길이 열리는 폭이 넓지는 않았지만, 참가자들의 얼굴은 밝았다.

바닷길 체험을 마친 관광객들은 올해 처음 도입된 대형 미디어아트를 감상했다. 바닷물이 갈라지는 모습을 디지털 영상을 통해 표현한 콘텐트다.

바다 한가운데 길이 생기는 현상은 해당 구간의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낮아지는 썰물 때 바다 아래 모래언덕이 발달한 곳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원리다.

회동과 모도 앞바다는 연간 30차례에 걸쳐 바다 일부분이 드러난다. 이중 밀물과 썰물의 차가 가장 큰 음력 3~5월 영등사리때 열리는 행사가 ‘신비의 바닷길축제’다.

바닷길 축제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행사로도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까지 10년간 축제장을 찾은 500여만명 중 56만여명(11.2%)이 외국인이다. 진도는 경기도 화성시(제부도)와 충남 보령시(무창포) 등 바다 갈림 현상이 나타나는 전국 20곳 중 바닷길의 규모가 가장 크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은 프랑스인이다. 1971년부터 5년간 주한 프랑스 대사를 지낸 피에르 랑디(Pierre Landy)가 한국 토종개인 진돗개를 보기 위해 진도를 찾았다가 이를 목격했다.

그는 귀국 후 프랑스 신문에 “나는 한국에서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봤다”며 신비의 바닷길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78년엔 일본 NHK가 ‘세계 10대 기적’ 중 하나로 진도 바닷길을 소개하기도 했다.

바닷길축제는 본래 진도 사람들이 한 해의 풍어와 풍년을 기원하던 영등제(靈登祭)에서 비롯됐다. 바람의 신인 영등신에게 지내던 제사에 ‘뽕할머니 전설’이 맞물리면서 축제 형태로 발전했다.

전설 속 뽕할머니는 먼 옛날 “회동과 묘도 사이에 바닷길을 열어 달라”고 빌었다. 자신이 살던 회동에 출몰하던 호랑이들을 피해 먼저 모도로 떠난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할머니의 정성에 감동한 용왕은 회동과 모도 사이에 바닷길을 내줌으로써 가족과 상봉하게 해준다.

국가명승 제9호인 진도 신비의 바닷길에서는 축제 기간 다양한 공연과 행사도 열렸다. 진도 아리랑과 진도 씻김굿, 남도잡가 등 전통 민속문화 공연이 호평을 받기도 했다. 김희수 진도군수는 “매년 진도 바닷길이 열릴 때면 국내외에서 관광객들이 왔으나 코로나19 후 축제가 중단됐었다”며 “세계인들이 소망을 비는 바닷길 체험과 진도 고유의 민속문화가 어우러진 축제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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