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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엔 침대가 지옥" 기부까지 ESG...'15배 성장' 시몬스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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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침대 안 파는 철물점, 경기도 이천의 농·특산물 직거래 시장, 그로서리(식료품) 스토어….

안정호 시몬스 대표 인터뷰

침대 회사 같지 않다. 최근 5~6년간 시몬스가 보여준 활동에는 독특한 면이 있다. 지난 2020년부터 시작한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기부만 해도 그렇다. 침대 회사니 병원에 침대를 기부하는 것이 쉬운 방법일 텐데, 기부를 위해 일명 ‘ESG 침대’를 출시하고 판매 금액의 일부를 적립하는 ‘제품 펀딩’ 방식을 선택했다.

“매일 침대에서 생활하니, 침대가 지옥 같다는 환자들에게 침대를 줄 수는 없겠더라고요. 대신 매년 3억원을 기부하고, ‘뷰티레스트 1925’ 침대가 판매될 때마다 소비자가격의 5%를 적립해 추가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안정호 시몬스 대표가 19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시몬스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안정호 시몬스 대표가 19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시몬스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지난 19일 서울 청담동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안정호(52) 시몬스침대 대표를 만났다. 편안한 캐주얼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안 대표와 요즘 기업들의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부터 가구 업계 불황, 시몬스의 독특한 마케팅 전략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업계 불황이지만, 할 건 한다”

시몬스는 지난해 ‘역성장’을 했다. 최근 몇 년간 고속 성장하며 연 매출 3000억원대의 고지도 넘어섰지만, 지난해 2858억원으로, 전년 대비 6.4%줄어든 매출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엔데믹에 따라 업계 전체가 고전했다. 하지만 안 대표는 “20년 넘게 사업 하면서 외환위기도 겪고, 리먼 사태도 넘겼다(웃음)”며 “1~2년 성적에 그렇게 연연하진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경기가 좋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어떤 활동을 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몬스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환아들의 의료비 지원을 4년째 이어가며 총 누적 기부금 12억원을 달성했다. 사진 시몬스

시몬스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환아들의 의료비 지원을 4년째 이어가며 총 누적 기부금 12억원을 달성했다. 사진 시몬스

실제로 시몬스는 업계 내 대다수 기업이 이익 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운신의 폭을 좁히는 와중에도 ‘제품 가격 동결·36개월 페이(무이자 분납)’ ‘임직원 연봉 인상’ 같은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려워도 할 건 한다”는 게 안 대표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시몬스는 전 점포를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다른 회사들보다 경기를 더 민감하게 반영하는 면도 있다. 지난 2019년부터 전 점포를 직영 체제로 바꾸기 시작, 현재 총 150개의 직영 및 위탁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리점 체제에서는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침대 유통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며 “(직영 체제가) 비용은 더 많이 들지만, 길게 보면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광주광역시 서구에 문을 연 '시몬스 갤러리' 매장. 사진 시몬스

지난 3월 광주광역시 서구에 문을 연 '시몬스 갤러리' 매장. 사진 시몬스

실제로 직영 체제로 바뀌고 나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배송도 직배송으로 2인 배송이 원칙이다. 배송 기사들의 교육에도 신경을 쓴다. 다른 업체들처럼 가구만 팔고 끝내는 게 아니라, 끝까지 좋은 브랜드 경험을 주고 싶어서다.

2001년 대표 취임, 연 매출 15배 성장

안정호 대표는 에이스침대 창업자인 안유수 에이스경암 이사장의 차남이다. 지난 1998년 시몬스에 입사, 2001년 대표 자리에 올랐다. 당시 연 매출은 200억원 남짓. 직원도 제조 직군 포함 130여 명 정도였다. 약 20년 만에 매출은 3000억원에 육박, 직원도 630여 명으로 늘었다. 안 대표는 이 같은 성장에 대해 “세상 변화에 민감하게 따라간 것”을 비결로 꼽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시몬스는 젊은 회사로 통한다. 일단 직원 평균 연령이 34세로, ‘MZ세대’ 직원 비율이 벤처회사 못지않다. 직원이 젊어지면서 시몬스의 고객도 젊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에는 서울 성수동에 시몬스 150주년 기념 팝업 매장 ‘하드웨어 스토어(철물점)’을 열면서 젊은 이미지를 대중에게도 각인시켰다. 약 8개월간 운영한 팝업 스토어에는 6만 명이 몰렸다. 이후 침대는 나오지 않고 ‘매너가 편안함을 만든다’는 메시지의 독특한 광고, 청담동 그로서리 스토어(기념품 판매점) 운영 등 파격 행보로 이목을 끌었다.

소셜라이징 프로젝트 일환으로 대전의 유명 식료품 편집숍인 '퍼블릭 마켓'이 지난 4월 서울 청담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 문을 열었다. 사진 시몬스

소셜라이징 프로젝트 일환으로 대전의 유명 식료품 편집숍인 '퍼블릭 마켓'이 지난 4월 서울 청담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 문을 열었다. 사진 시몬스

안 대표는 이런 시몬스의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광고 스토리 보드도 직접 챙긴다. 아이디어 회의할 때 틀어놓았던 안 대표 취향의 음악을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삼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몬스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고 있다. 본래 이런 ‘튀는’ 행동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세상 변화에 적극적으로 따라가는 중이다. 안 대표는 “도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제일 나쁘다”며 “뭐라도 해야 실패해도 경험이 된다”고 말했다.

ESG도 남다르게…“소비자 즐거워야, 우리도 즐겁다”

안정호 시몬스 대표가 19일 서울 청담에 위치한 '시몬스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안정호 시몬스 대표가 19일 서울 청담에 위치한 '시몬스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소비하는 사람도 즐겁고, 사회 공헌도 하고, 시몬스도 알리고. 요즘 시몬스가 미는 ‘ESG’ 전략이다. 이런 방향성은 경기도 이천 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에서 지난 2018년부터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인 ‘파머스 마켓’으로 확고해졌다. 경기도 시골에서 시몬스가 하는 일들이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젊은 2030이 시몬스 테라스에 몰려 전국구 나들이 명소가 됐다. 시몬스를 ‘힙한 브랜드’로 등극시킨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소셜미디어(SNS)에 ‘시몬스 테라스’ 해시태그(#)로 올라온 게시물은 10만 건에 이른다.

안 대표는 “파머스 마켓을 하고 나서 이런 식으로 기업 활동을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힌트’를 얻었다”며 “소비자들이 즐겁고, 사회에 공헌도 하고, 결과적으로 시몬스에도 좋고, 이렇게 윈윈하는 방향으로 가면 ESG도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에서는 이천 지역의 농산물과 특산물을 판매해 지역 농가 판로 개척에 기여하는 '파머스 마켓'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사진 시몬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에서는 이천 지역의 농산물과 특산물을 판매해 지역 농가 판로 개척에 기여하는 '파머스 마켓'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사진 시몬스

지난 2018년 도입한 난연 매트리스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시몬스는 가정용 스프링·폼 매트리스에 난연(불에 타기 어려운) 기술을 적용해 생산하고 있다. 화재 시 매트리스가 주요 불쏘시개가 되어 실내가 폭발적인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방지하고, 소방관의 안전까지 책임지기 위한 기능이다. 이 난연 특허는 공익을 위해 원하는 기업이 있으면 공개하기로 했다. 안 대표는 “요즘 소비자들은 소비에서도 ‘가치’를 느끼길 원한다”며 “소비자가 즐겁게 돈을 써야 우리도 즐겁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가야 할 길’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방향성은 이미 확고하고, 그에 따른 활동을 묵묵히 해나가겠다는 의미다. 안 대표는 “침대는 한 번 사면 10년을 쓰는 품목”이라며 “세대를 이어가며 물건을 팔아야 하니, 단기적으로 시장을 보기보다 길게 보고 오래 사랑받는 회사·브랜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기업으로서 할 도리를 하는 건데, 요즘 사람들은 그걸 ‘ESG’라고 부릅니다. 돈을 ‘얼마나’ 보다 ‘어떻게’ 버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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