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술술 읽는 삼국지](29) 죽을 고비를 넘긴 유비와 관우를 애써 놓아준 조조

중앙일보

입력

술술 읽는 삼국지’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관우가 안량을 죽이자 조조군은 여세를 몰아쳐 원소군을 대파했습니다. 원소는 유비의 아우인 관우가 안량을 죽인 것을 알고는 유비를 끌어내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유비는 세상에 비슷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며 위기를 모면합니다.

안량의 원수를 갚기 위해 8척 장신의 문추가 나섰습니다. 저수가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상황을 보면서 대처하는 것이 좋다고 간언했습니다. 원소가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너희들이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날짜를 지연시키기 때문에 큰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군사행동은 아무도 모르게 재빨리 해야 한다는 말도 못 들었느냐?

원소의 무장 문추. [출처=예슝(葉雄) 화백]

원소의 무장 문추. [출처=예슝(葉雄) 화백]

문추는 유비와 함께 황하를 건너 연진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조조는 군량과 마초(馬草)를 미끼로 문추의 군사들을 유인했습니다. 장료와 서황이 나섰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관우가 나섰습니다. 문추는 3합을 겨루고 달아났습니다. 관우의 적토마가 문추를 따라잡자 청룡도가 번쩍이면서 문추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조조군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조조가 문추를 무찌른 계략에 대해 모종강은 이렇게 평했습니다.

‘조조는 군량과 말을 버려 적을 유인하고 황금과 인수(印綬)를 버려 인재를 유인한다. 죽이고 싶어도 유인하고, 등용하고 싶어도 유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추는 조조에게 유인되지만 관우는 유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원소는 안량과 문추를 죽인 자가 관우라는 것을 알고 다시 유비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비는 기죽지 않고 청산유수로 원소를 설득했습니다.

조조는 평소 이 유비를 꺼려왔습니다. 그는 지금 내가 명공의 처소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내가 공을 도울까 봐 일부로 관우를 시켜 두 장수를 죽인 것이오. 이렇게 하면 공은 반드시 화를 낼 것이고, 이것은 공의 손을 빌려 유비를 죽이려는 것이니 명공은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문추를 모신 사당 [사진 허우범 작가]

문추를 모신 사당 [사진 허우범 작가]

원소는 다시 유비와 마주 앉았습니다. 유비는 심복 부하를 시켜 관우에게 밀서를 보내면 반드시 와서 도울 것이니 함께 조조를 토벌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줏대 없는 원소는 매우 기뻤습니다.

내가 관우를 얻는다면 열 사람의 안량과 문추를 얻는 것보다 나을 것이외다.

한편, 조조는 관우의 복심(腹心)을 알고 싶어 장료를 보냈습니다. 장료가 관우에게 물었습니다.

형과 유비의 교분을 이 아우와 형의 사귐에 비교한다면 어떠합니까?

나와 아우는 벗으로 사귀는 것이고, 나와 유비는 벗이고 형제이며 또한 군신인데 어찌 한자리에 놓고 논할 수 있겠소?

묻고 답하는 게 너무나 간단명료하지요? 그런데 리동혁 작가가 함께 번역한 나관중본에는 둘의 대화가 구구절절(句句節節) 옳은 말들입니다. 내용이 조금 길지만, 그 차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공은 『춘추』를 보시는데 관중과 포숙의 사귐을 들려줄 수 있습니까?

관중은 늘 이렇게 말했다 하오. ‘나는 세 번 싸우다가 세 번 물러섰으나 포숙은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심을 알았음이요, 나는 세 번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보지 않았으니,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음이라. 나는 늘 포숙과 이야기하면서 궁지에 몰렸으나 포숙은 나를 미련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사람이란 불리한 때가 있음을 알았음이요. 나는 늘 포숙과 함께 장사하면서 이윤을 나눌 때 많이 챙겼으나 포숙은 내가 욕심이 많다고 하지 않았으니, 내가 가난함을 알았음이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이는 포숙이니라.’ 이것이 바로 관중과 포숙이 서로 마음을 알았다는 사귐이오.

형과 유비의 사귐은 어떠합니까?

나는 형님과 생사를 같이할 사이요. 살면 같이 살고, 죽으면 같이 죽을 것이니 관중과 포숙에 비길 바가 아니오.

저하고 형과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우리야 우연히 만나 사귀는 사이라, 흉한 일에 마주치면 서로 구하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 서로 돕지만, 구할 수 없으면 그만두니 어찌 생사를 같이하는 나와 형님의 정에 비할 수 있겠소?

유비가 전날 소패에서 패했을 때 형은 어찌하여 죽기로써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오. 만약 형님이 돌아가신다면 내가 어찌 홀로 살겠소?

어떻습니까? 나관중본의 내용이 훨씬 진솔함이 배어있지요? 이토록 따뜻한 대화를 단 한 문장으로 줄였으니 이를 읽는 독자들의 느낌은 인정머리 없는 ‘싸늘함’ 그 자체입니다.

원소의 부하인 진진이 몰래 관우에게 유비의 밀서를 전달했습니다. 관우는 답장을 써주며 조조가 윤허하지 않으면 죽기를 각오하고 유비에게 갈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조조는 관우가 떠나려는 것을 알고는 문에다 ‘면회사절’ 팻말을 걸었습니다. 관우는 몇 번을 찾아갔지만 매번 조조를 볼 수 없었습니다. 장료도 병을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관우는 더는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작별의 편지와 함께 한수정후(漢壽亭侯) 인수(印綬)와 그동안 받은 금은(金銀) 등을 모두 봉해놓고 두 형수를 모시고 출발했습니다.

관인과 금은을 봉한 채, 두 형수를 모시고 떠나는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관인과 금은을 봉한 채, 두 형수를 모시고 떠나는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는 관우를 부하로 삼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참모들이 죽이라고 했지만 조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종강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조조는 일생 귀신이나 불여우처럼 간사하고 거짓 되게 살았는데, 갑자기 정정당당해 늠름(凜凜)하고 열렬(烈烈)하여 파란 하늘처럼 티가 없고 태양처럼 밝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자 주옥(珠玉)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자신의 추한 모습을 느끼게 됐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차마 죽이지 못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