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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0원의 기적…땅값도 뛰었다, 일본 이 도시 보육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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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박경민 기자 중앙일보 차장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 21일 오후 5시 30분쯤 한눈에도 묵직한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이시바시 씨가 종종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마 뒤 그를 반긴 건 5살 아들. 어린이집(보육원) 가방을 둘러맨 아이는 엄마를 만난 즐거움에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곳은 지바(千葉) 현 나가레야마(流山) 시의 송영(送迎) 보육스테이션. 우리 말로 치면 '마중 보육스테이션'인데 지하철역 바로 맞은 편에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아이를 직접 어린이집에서 바로 데려갈 수 없는 부모들을 위해 만든 곳이다.

일본 치바현 나가레야마시 역 앞에 있는 송영 보육스테이션.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려와 부모의 퇴근 시간까지 돌봄을 담당해준다. 하루 100엔, 우리돈 약 1000원이 안되는 돈으로 이용 가능하다. 사진 김현예

일본 치바현 나가레야마시 역 앞에 있는 송영 보육스테이션.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려와 부모의 퇴근 시간까지 돌봄을 담당해준다. 하루 100엔, 우리돈 약 1000원이 안되는 돈으로 이용 가능하다. 사진 김현예

이시바시의 일터는 도쿄(東京) 시부야(渋谷). 일을 마친 건 오후 4시 30분쯤.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퇴근한 참이다. 한숨을 돌린 이시바시가 이렇게 말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애가 있는데,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만 해도 지금처럼 어린이집이 많지 않았어요. 어린이집에 못 들어가면 일을 못 할 수도 있겠구나 했었어요.” 자리가 있다고 한 곳은 한 정거장 거리 어린이집.

하지만 등·하원이 골치였다. 어린이집은 오전 8시에 시작하는데, 아이를 맡기고 출근 시간에 맞추는 일이 간단치 않았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바로 이 송영 보육스테이션. 출근길 오전 7~8시 사이 역 앞에 있는 이곳에 아이를 맡기면, 안전하게 아이를 어린이집까지 버스로 데려다준다는 얘기였다. 하원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어린이집서 데려와 퇴근 때까지 아이를 맡아준다. 이용료는 하루 100엔(약 990원). 한 달 이용료는 2000엔(약 1만9800원)에 불과하다. 이시바시는 “큰아이를 시작으로 둘째까지 7년째 이용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부모 마음 헤아린 1㎜ 지원이 인구를 늘리다

나가레야사미의 송영 보육스테이션. 스쿨버스를 타고 각기 다른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아이들의 승하차는 도로변이 아닌, 주차장에서 이뤄진다. 버스가 들고 나갈 때는 건물 입주자들은 주자창 이용을 하지 않는다. 사진 김현예

나가레야사미의 송영 보육스테이션. 스쿨버스를 타고 각기 다른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아이들의 승하차는 도로변이 아닌, 주차장에서 이뤄진다. 버스가 들고 나갈 때는 건물 입주자들은 주자창 이용을 하지 않는다. 사진 김현예

나가레야마엔 대기업이나 큰 산업이 없다. 신도시 철도인 츠쿠바 익스프레스가 지난 2005년 개통하면서 성장한 신도시로 대부분이 도쿄로 이 철도를 타고 출퇴근한다. '베드타운'인 셈이다. 철도 개통과 함께 역(나가레야마 오타가노모리)이 생겨나면서 도시개발 계획도 함께 만들어졌다. 송영 보육스테이션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다케다 에마(武田愛真) 다카사고스쿨 오타가노모리 원장은 “당시만 해도 이곳은 역 이름처럼 아무것도 없는 '숲’이었을 뿐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나가레야마시는 당시 어린이집이 부족해 아이를 맡길 마땅한 곳이 없거나, 자리가 있어도 먼 거리라 갈 수 없는 ‘보육난민’ 문제가 골치였다. 엔도 츠요시(遠藤剛) 나가레야마시 보육과장은 “여러 시민이 참가하는 마을 만들기 협의회 회의 중 ‘버스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주면 어떠냐’란 이야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걸 계기로 역을 개설하는 것과 동시에 역 앞 대형 건물에 송영 보육스테이션을 만들게 됐다. 어린이집을 하는 다케다 원장이 위탁운영을 하는 식이었다. 2007년 7월의 일이었다.

각기 다른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려온 차량이 지난 21일 주차장을 나서고 있다. 건물 경비원은 무상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교통 정리를 매일 아침 저녁으로 담당해준다. 사진 김현예

각기 다른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려온 차량이 지난 21일 주차장을 나서고 있다. 건물 경비원은 무상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교통 정리를 매일 아침 저녁으로 담당해준다. 사진 김현예

나가레야마시는 이 시설을 아이가 스스로 앉을 수 있고, 가방을 메거나 걸을 수 있는 만 1세 이상이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케다 원장은 “아이가 너무 어려 혼자 앉을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시설 이용을 위해 대기하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가고 데려오는 과정에도 정성을 쏟았다. 건물 입주자들은 아이들의 버스 이용 시간엔 주차장 이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도로변에서 차에 타고 내리는 일이 없도록 배려한 셈이다. 이 덕에 아이들은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걱정 없이 건물 주차장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전하게 보육시설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4월 현재 이곳의 버스 5대는 7개 코스로 나뉘어 24개 어린이집을 지금껏 무사고로 오가고 있다.

밤 9시까지 연장 보육도 한다. 저녁밥도 350엔(약 3400원)에 제공한다. 다케다 원장은 “퇴근해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하면 대부분 시간이 늦는 엄마 입장에선 아이 밥이 가장 걱정인데, 이 부분도 고려해 영양 균형을 맞춘 저녁밥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년간 늘어난 인구 4만명

각기 서로 다른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은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이곳에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진 김현예

각기 서로 다른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은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이곳에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진 김현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첫해 3136명에 불과했던 이용자는 코로나19 전 한 때 5만6004명으로 증가했다. 나가레야마시는 어린이집도 차츰 늘렸다. 2010년 17곳에 불과했던 어린이집은 2022년 100여 개로 늘었다. ‘아이 키우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인구도 증가했다. 2012년 16만6493명이었던 인구는 지난해 4월 20만6137명으로 증가했다. 월 출생아 수도 달라졌다. 2012년 4월에 태어난 아이는 131명에 그쳤지만 지난해 4월엔 161명으로 늘어났다. 다케나카 히로타카(竹中大剛) 나가레야마시 어린이가정부장은 “맞벌이 부부 타깃에 맞춘 정책을 실시하고 지역에서 여성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도시의 변화는 진행형이다. 역 서쪽 출구 인근 이탈리아 음식점은 돌봄사업을 하는 오타카베이스와 손잡고 점심 저녁 시간을 제외하곤 초등학생 아이들을 맡아주는 서비스를 최근 시작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 돌봄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는 엄마들이 많다는 ‘초1의 벽’을 함께 넘어보자는 취지다. 이곳은 “영어를 가르쳐주거나 하진 않지만 함께 숙제나 자습, 보드게임을 하면서 자유롭게 아이들이 부모의 퇴근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가레야마는 대단하다』를 쓴 경제저널리스트 오니시 야스유키는 나가레야마시의 일본서도 손꼽히는 인구증가 성공 원인으로 보육스테이션 외에도 보육사 지원(처우 개선 월 4만3000엔· 집세 지원 최대 6만7000엔), 여성 창업 스쿨과 같은 창업 지원책이 주요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구증가로 부동산 자산가치도 크게 상승해 역에서 10분 정도 거리 토지가 3.3㎡에 110만엔(약 1090만원) 정도로 5년 전의 1.5배로 올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