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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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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인류는 머나먼 옛날부터 술을 즐겨 마셨다. 토론토대가 고고학 발굴 중인 흑해 지역 조지아(그루지야)에서 기원전 4000년 신석기 시대의 포도주 양조장이 발견됐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문화의 발생지로 꼽히고 있다.

와인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핵심 요소다. 디오니소스 신을 통한 종교적인 뒷받침도 있었다. 심포지엄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온’은 『플라톤』 대화편의 한 제목으로 유명해졌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술파티’이다. ‘같이(sym) 마시다(posion)’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정치와 철학을 논하고, 에로스를 즐기며, 음악·연기·춤 등의 퍼포먼스가 탄생했다. 그래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연극과 댄스의 신이기도 하다.

아메리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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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신비로운 삶의 원천이었고, 죽음을 초월해 내세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영약이었다. 석관 등의 장례문화에 으뜸가는 장식 또한 디오니소스 신이다.

현대 사회에서 술을 대하는 각 나라의 정책 또한 흥미롭다. 유럽은 음주 문화가 번창한 곳이지만 북미권의 음주 문화는 생각보다 온건하다. 개인당 주량 랭킹에서 캐나다와 미국은 모두 세계 40위권이다. 역사적으로 퓨리터니즘(청교도주의)의 금욕주의에 건국의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요일에는 술을 살 수 없는 곳이 많고, 미국은 금주법 시대의 잔재로 음주 연령이 만 21세부터다.

캐나다는 심지어 모든 술 판매를 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올해 초 캐나다 보건복지부는 코로나 팬데믹 동안 음주 관련 사망률이 20% 증가한 것을 계기로 1주일에 두 잔 이상 마시지 말라는 공식적인 음주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술은 결코 ‘인간세(anthropocene)’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주역』의 마지막 괘의 효사는 ‘음주’를 언급하며 끝난다. 우리 전통의 음주 습관은 성실하게 절제하면서 음양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우주를 관조하는 것이라 한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