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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긴급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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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폭락과 폭등에만 민감히 반응해서일까. 종말과 붕괴라는 섬뜩한 단어가 국회 토론회서 나오고 국무총리의 긴급지시가 쏟아져도 모두가 어제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종말’을 말한 건 다름 아닌 기상청장이다. 유희동 청장은 지난 11일 국회 국가현안 대토론회에서 “기후변화는 세계 종말에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1912~2020년 사이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10년에 0.2도씩 올랐다. 전 세계 평균 3배에 달하는 수치다. 같은 토론회에 참석한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도 “3도 이상 기온이 오르면 문명이 붕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기록적 폭우로 침수된 서울 강남역 사거리. [뉴스1]

지난해 8월 기록적 폭우로 침수된 서울 강남역 사거리. [뉴스1]

유 청장이 종말을 언급한 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하루에만 두 번의 긴급지시를 발동했다. 최악의 황사와 대형 산불이 이유였다. 지난 4, 6일에도 초미세먼지와 가뭄으로 한 총리의 긴급지시가 떨어졌다. 지난해 겨울엔 한파와 대설로, 여름엔 폭우와 폭염이 한 총리를 긴급하게 만들었다. 긴급지시는 매뉴얼에 따라 발동돼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많지 않다. 총리실 관계자는 “전임 총리보다 긴급지시가 늘었다. 대부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긴급이 일상화된 ‘긴급의 시대’를 마주했지만, 여전히 매연을 내뿜는 대형차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습관처럼 일회용품을 쓰고 버리는 일은 이어지고 있다. 주변에 기후변화를 물어보면 아직도 북극곰의 문제라 여기는 이들이 꽤 있다.

기후변화는 삶의 턱밑까지 차오른 생존의 문제다. 특히 청년 세대에겐 더 그렇다. 총리의 긴급지시가 쏟아진다는 건, 정부도 예측 못 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벚꽃 개화 시기를 놓쳐 축제를 앞당기는 지자체의 허둥대는 모습은 예고편에 가깝다. 지난해 여름엔 115년 만의 폭우로 강남이 물에 잠겼고,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전기료와 난방비까지 올라 폭염과 혹한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지난 10일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를 감축하는 안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언한 걸 지금 정부가 떠안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부터 답답함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관련 회의에서 “과학적 근거나 의견 수렴, 로드맵도 없이 발표했다”며 “어찌 됐든 국제사회에 약속은 했고 이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임 정부에 대한 답답함은 이해하나, 기후변화는 ‘어찌 됐든’ 그 이상의 과제다. 윤 대통령이 매일 외치는 MZ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3대 개혁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종말을 언급한 유 청장은 “불공정과 불감증으로 기후 대응이 국민 개개인의 영역으로 넘어가긴 어렵다”고 했다. 정부가 더 절실하고 더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