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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에 예타완화, 전기·가스료까지…경제정책, '정치'에 휘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년 총선을 앞두고 주요 경제정책이 벌써부터 정무적 판단에 휘둘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수 펑크’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유류세의 단계적 정상화를 시작하지 못했고, 2분기 전기·가스요금도 인상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반대로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의 문턱을 낮추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될 뻔하기도 했다.

23일 기획재정부 등 주요 경제부처에 따르면 2분기 전기·가스요금 결정이 한 달째 지연되고 있다. 전기·가스요금은 원래 2분기 시작 전인 3월 말에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당정이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면서 여전히 1분기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이번 주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만큼 다음 달에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도별 한전 영업손익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전,전력거래소]

연도별 한전 영업손익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전,전력거래소]

원가가 오른 상황에서 요금 인상을 못 한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요금 인상이 지연되는 이유로는 내년 총선과 하락 추세인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꼽힌다. 연초 난방비 대란을 겪은 정부가 이들 공기업의 자구책을 빌미로 결정 시점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정부가 최근 현행 유류세 인하 조치를 8월 말까지 4개월 연장하기로 한 것도 경제정책이 정치에 휘둘린 사례로 분류된다. 올해는 2월까지 국세수입이 작년 동월 대비 15조7000억원이나 부족하다. 유류세 인하 조치로 줄어든 세금(교통·에너지·환경세)이 지난해 한 해만 5조500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 재정 관점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인하율을 추가로 조정해야 했다. 결국 총선이 더 가까워지는 9월에는 정상화가 더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반대로 여야는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다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일단 보류시켰다. 사회간접자본(SOC)·국가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현행 총사업비 500억원ㆍ국가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ㆍ국가재정지원 규모 5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이 통과할 경우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경제성 없는 선심성 사업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지난 13일 국회를 통과한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도 정치권 눈치를 본 사례로 분류된다. 반면 국가 재정에 대한 통제 장치를 강화하는 재정 준칙은 합의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최근 들어 주요 정책 결정이 1년이나 앞둔 총선 영향권으로 진입하는 인상이 강하다”면서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시장이나 국가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선심성 정책이 더 가속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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