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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잃고 극단선택 시도 8번…"농구 해봐" 그를 살린 한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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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의 장애인종합체육관, 골대 아래서 바퀴 스무 개가 치열하게 뒤얽혔다. 휠체어를 굴리는 선수들의 팔뚝에 연신 울끈불끈한 힘줄이 솟아났다. 매년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기념해 열리는 홀트전국휠체어농구대회 결승전 현장이다. 휠체어 10대가 공수 교대를 위해 코트를 바람처럼 가로지르자 관중석에선 “오오”하는 함성 소리가 터져나왔다. 몸싸움을 하다 넘어진 선수들도 함성 소리에 힘을 얻은 듯 휠체어를 탄 채로 금세 몸을 뒤집어 일으켰다.

지난 20일 홀트전국휠체어농구단 결승전에서 코웨이블루휠스와 춘천시장애인체육회 간에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김정민 기자

지난 20일 홀트전국휠체어농구단 결승전에서 코웨이블루휠스와 춘천시장애인체육회 간에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김정민 기자

올해 휠체어농구대회 결승전에선 코웨이블루휠스(코웨이)와 춘천시장애인체육회(춘천시)가 맞붙었다. 결승전답게 양팀엔 전·현직 국가대표들이 포진했다.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과 2021년 도쿄 패럴림픽에 모두 출전한 현역 차고령자 김호용(51) 선수나 2014년 인천세계선수권 베스트5에 든 오동석(36) 선수가 대표적이다.

승부도 극적이었다. 경기 종료를 5초 남기고 춘천시 조승현 선수가 극적인 3점슛을 터뜨려 64 대 64 동점이 됐다. 그러나 종료 1초를 남긴 찰나, 코웨이 곽준성 선수의 뱅크슛(백보드를 맞고 들어가는 슛)이 터지며 코웨이가 66 대 64로 춘천시를 눌렀다.

(왼쪽부터)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에서 만난 코웨이블루휠스 휠체어농구단 양동길 선수, 오동석 선수, 곽준성 선수, 김호용 선수, 조현석 선수. 김정민 기자

(왼쪽부터)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에서 만난 코웨이블루휠스 휠체어농구단 양동길 선수, 오동석 선수, 곽준성 선수, 김호용 선수, 조현석 선수. 김정민 기자

경기가 끝난 직후 코웨이의 양동길(32·센터), 김호용(51·포워드), 오동석(36·가드), 곽준성(34·가드), 조현석(44·포워드) 선수를 만났다. 모두 휠체어 농구 경력이 짧으면 9년, 길면 29년에 달하는 베테랑 선수들이다. 주장 양동길 선수는 “대부분 후천성 장애를 겪고 농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올초 코웨이에 합류했다는 조현석 선수는 열아홉의 겨울을 잊지 못했다. 1998년 12월 20일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신호 위반 차량에 오토바이가 날아갔다. 동맥이 파열됐고 그대로 왼쪽 다리를 잘라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남들의 시선이 아팠고 ‘이렇게 살아 뭐 하나’ 싶은 순간들이 잦았다. 20대 후반까지 극단적 선택을 8번 시도했다. 택시 운전을 하던 어느 날 만난 휠체어 손님의 “농구 한 번 해보라”는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그 길로 2005년 휠체어 농구에 입문했다.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에서 만난 코웨이블루휠스 휠체어농구단 조현석(왼쪽) 선수와 양동길 선수. 김정민 기자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에서 만난 코웨이블루휠스 휠체어농구단 조현석(왼쪽) 선수와 양동길 선수. 김정민 기자

양동길 선수는 스무 살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음주운전 차량이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던 그를 들이받았다. 2010년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병원 휴게실에서 프로 농구를 보는데 당시 대한장애인농구협회 부회장이 “학생, 농구 좋아하냐”고 말을 걸어왔다. 다치기 전의 양 선수는 스포츠 마니아였다.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했는데 마침 답답하던 찰나였다고 한다.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가장 가까웠던 대전휠체어농구팀에 들어간 뒤부터 “장애가 있어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뛸듯이 기뻤고 내면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양 선수는 전했다.

다른 선수들도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 농구를 시작했다. 오 선수는 12살에, 곽 선수는 24살에 교통사고가 났다. 김 선수는 3살에 소아마비가 왔다. 다섯 선수 모두 “휠체어 농구로 사고를 극복했고 코트 위에서 희망을 찾았다”고 말했다.

코웨이블루휠스 휠체어농구단이 지난 20일 홀트전국휠체어농구단 결승전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김정민 기자

코웨이블루휠스 휠체어농구단이 지난 20일 홀트전국휠체어농구단 결승전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김정민 기자

휠체어 농구는 영구적인 하반신 장애여야만 선수가 될 수 있지만, 비장애인 농구와 경기장 규격이나 경기 시간(40분)이 다르지 않다. 림의 높이도 똑같다. 점프슛이 없으면 상체 근력으로 슛을 쏘면 된다는 게 휠체어 농구의 스포츠 정신이다. 더블 드리블이 가능하고 트래블링(워킹) 반칙 기준이 세 걸음이 아닌 휠체어 세 바퀴란 것 정도가 비장애인 농구와의 차이점이다. 이 때문에 “비장애인 경기와 가장 룰이 유사한 장애인 스포츠(한국휠체어농구연맹)”라는 평가도 있다.

중증장애와 경증장애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특이한 규칙도 있다. 선수마다 1.0포인트(중증장애)부터 4.5포인트(경증장애)까지 기능 등급이 매겨지는데, 팀원 5명의 합이 14포인트 이하여야 한다. 양 선수는 “장애를 입으면 성격이 의기소침해지고 집에만 있게 된다. 우리 모두 그랬다”면서 “농구를 하면서 예전처럼 밝게 웃고 떠들면서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 다른 장애인들이 우리를 보고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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