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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분기 6만 가구 안전진단…‘묻지마 투자’ 과열주의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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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호 12면

달아오르는 재건축 시장

“안전진단 통과가 지난해까지 ‘고시’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운전면허’ 정도에요. 너도나도 통과가 확실시 되니 재건축 본격화에 따른 프리미엄은 오히려 빠지고 있습니다.”(서울 노원구 M부동산중개업소 대표)

올해 들어 재건축 첫 관문인 ‘안전진단’을 통과한 서울 아파트가 6만가구를 넘어섰다. 정부가 지난 1월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안 방안을 발표한 이후 불과 3개월여 만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광역시를 중심으로 정비사업이 봇물 터지듯 추진되면서 과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꺼번에 사업이 몰릴 경우 이주 문제 등으로 사업 진척이 더뎌질 수 있으며, 낙오되는 사업장의 자산 가치도 흔들릴 수 있어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와 신속통합 기획 등으로 정비사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1월 5일부터 새롭게 바뀐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에 따라 평가 항목 중 ‘구조 안전성’ 비중이 50%에서 30%로 낮아졌다. 2차 정밀안전진단(적정성 검토)도 지방자치단체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 본궤도에 오르는 단지들이 잇따르고 있다. 양천구에선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단지가 일제히 정비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목동신시가지 14개 단지 중 2020년 유일하게 안전진단을 통과한 6단지에 이어, 올해 총 11개 단지가 안전진단의 문턱을 넘어 재건축 사업의 시동을 걸었다. 9·11단지도 연내 안전진단 통과에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송파구에선 올림픽선수기자촌, 올림픽훼밀리 등 재건축 대어들이 올해 안전진단의 문턱을 넘어섰다. 강남구에선 최근 도곡동 도곡한신 아파트가 안전진단을 신청하며, 안전진단 추진 단지가 12곳에 이른다. 이외에도 정비계획을 수립한 13곳을 비롯해 강남구의 준공 30년 초과 아파트 55곳 중 51개 단지가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강남 노후 아파트 92%가 재건축 추진

매매 거래도 재건축 대상인 노후아파트가 주도하고 있다.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연식별 아파트 거래 비율을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 매매된 서울 아파트 6448건 중 준공 후 30년 초과 아파트는 1198건으로 전체의 19%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13%) 대비 6%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재건축 연한을 앞둔 준공 후 21∼30년 아파트의 매매 비율도 지난해 4분기 20%에서 올해 1분기 24%로 늘었다. 대신 기존 선호도가 높았던 신축과 준신축 아파트의 매매 비중은 줄었다. 이는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면서 재건축 기대감에 구축 매매로 관심이 옮겨간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1분기 30년 초과 아파트가 가장 많이 거래된 곳은 노원구(285건)였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지 않고 특례보금자리론 대상이 되는 9억원 이하 주택이 많아 거래가 활발했다. 이어 강남구 158건, 도봉구 137건, 송파구 128건, 양천구 109건 순으로 집계됐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제도 개선에 따른 재건축 호재와 이전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가격의 영향으로 급매 위주로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부동산업계에선 재건축 첫 관문인 안전진단 완화로 사업에 숨통이 트인 것으로 봤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서울의 새 주택 공급에선 정비사업 비중이 80%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이기에 중장기적으로 정비사업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현재 재건축 시장은 고점 대비 가격이 빠져 있기 때문에 긴 시각에선 저가 매수하기에 좋은 시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초 급매물이 소진된 뒤 재건축 시장에서도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아직 대부분 지역에선 고점 대비 매매가격이 빠져있는 상태이지만, 일부 인기 재건축 주도 단지는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이달 서울 여의도 광장아파트 전용 139.14㎡ 매물이 23억7500만원에 거래됐다. 2021년 4월(21억원) 이후 최고가를 다시 썼다. 지난 1월 17억9500만원에 거래됐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이달엔 20억7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재건축 조합설립이 가시화되면서 석달 만에 3억원 가까이 껑충 뛴 것이다. 현재 전용 76㎡의 호가는 일제히 21억원을 웃돌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재건축 대어인 월계동의 미미삼(미성·미륭·삼호3차) 전용 51㎡의 매매가격은 지난 연말에는 5억8500만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현재 호가는 6억5000만원~7억원 수준이다. 이 단지 상가내 공인중개사 대표는 “지금은 급매물이 거의 없다. 연초에 저가매물이 소진된 뒤 호가가 1억원 이상 올라갔다”고 말했다. 반면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기대에도 거래량은 소폭 늘었으나 가격 반등은 크게 이뤄지지 않았다. 아직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데다, 경기 침체 여파로 관망하는 분위기가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기대감에 들뜬 ‘묻지마’ 추격매수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경기 침체에다 공사비 인상 등으로 재건축의 사업성은 악화되는 추세다. 재건축 사업이 중도에 멈출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재건축 추진 단지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단지간 경쟁 과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목동 신시가지(5만3000여 가구)의 경우 재건축 속도전이 벌어질 조짐이다. 자칫 재건축 순번이 미뤄지면 ‘10년 기다릴 판’이라는 위기감에, 신탁 방식 등 속도를 단축시키기 위한 재건축을 검토하는 단지들이 나타나고 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일시에 재건축 단지가 몰리면 지자체나 정부가 전세난 등을 우려해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사업이 마냥 늦춰지거나 무산되는 사례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핵심지 토허제, 내년 4월까지 연장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와 토지거래허가제도(토허제)는 재건축 시장의 걸림돌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안전진단 완화로 재건축 사업 초기단계에선 진행이 수월해졌는데, 후반기로 갈수록 재초환 등의 걸림돌이 남아있어 지체되는 양상”이라며 “정비사업을 통해 새 주택을 공급하려면 실질적으로 재초환 등의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의 ‘마지막 대못’으로 불리는 재초환은 조합원이 평균 3000만원 이상의 개발이익을 얻게 될 경우 최고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재초환은 사실상 재건축을 하지 말라는 의미와 같다”며 “재초환이 해결돼야 실질적으로 재건축사업의 진척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투기 목적의 거래가 성행하거나 성행할 우려가 있는 지역으로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다. 구역 내 일정 규모 이상 주택을 거래할 때 관할 구청장 허가를 받아야 하고, 2년간 실거주 의무가 있다.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등 서울 핵심지역은 올해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내년 4월 26일까지로 1년 연장됐다. 목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일대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대거 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토허제와 재초환에 묶인 탓에 거래는 거의 없다”면서 “토허제로 기존 전세가 낀 매물은 거래가 어려워, 갈아타기 수요도 주춤한 상태”라고 전했다.

정비사업 전문가 김제경 소장 “용적률·대지지분·입지 따져봐야”

김제경

김제경

“현재 추진 중인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의 절반은 엎어질 수 있다. 옥석 가리기가 중요하다.”

정비사업 전문가인 김제경(사진)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재건축 규제가 완화됐다고 장밋빛 미래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초만 해도 평당 400만~500만원이면 공사가 가능했던 곳이 600만~700만원으로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정비사업 하면 돈 버는 줄 알고 시작했다가 분담금 5억원, 6억원 내라고 하면 엎어질 곳이 많지 않겠나”라며 “끝까지 갈 수 있는 곳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업성이 뛰어나거나 입지가 우수한 곳이 우선 주목할 대상이다. 용적률이 낮고, 대지지분이 많으면 사업성이 우수하다. 목동 신시가지의 경우 용적률이 110~140%로 사업성이 우수한 편이다. 또한 강남·용산처럼 입지가 좋은 곳은 1대1 재건축이라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김 소장은 설명했다. 분담금이 수억원이 나와도 새 집 받는데 동의하는 주민이 많은 곳이어서다. 반면 “용적률도, 입지도, 주민들의 분담금 부담 능력도 애매한 곳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1분기 서울 지역의 매매 거래가 집중된 노원·도봉 지역의 30년 초과 주택에 대해선 “노원구 일대 중층 아파트는 대개 용적률이 170~200% 수준으로 사업성이 우수한 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노후도시 특별법이 아직 국회를 통과한 것이 아니어서, 추후 용적률 인센티브나 기부채납 등의 조건을 주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유투브 등에선 ‘1기 신도시의 미래’에 관한 희망과 파멸편이 화제다. ‘희망편’에선 노후도시 특별법의 수혜로 쾌적한 환경과 정비된 계획도시를 꿈꾸지만, ‘파멸편’에선 과밀 주택 건설로 붕괴된 인프라와 교통 체증, 이주대란으로 갈 곳 잃은 시민들의 모습이 지옥처럼 그려진다. 그는 이러한 1기 신도시의 미래에 대해 “무엇보다 30만가구 10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이주대책이 넘어야할 큰 산”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세밀한 대책없인 희망편으로 나아가긴 쉽지 않다는 진단이다.

과거처럼 ‘언제가는 재건축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버려야한다고 말했다. 예전엔 재건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황이 안좋으면 멈췄다 가다를 반복했지만 이젠 막연히 기다리면 사업이 엎어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추진위원회를 승인 받은 이후 2년 내에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지 않으면 정비구역이 해제된다. 그는 “철저한 사업성 및 리스크 분석 등 기준을 명확히 세운 뒤 투자에 나서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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