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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살려주세요" 10명 집단 학폭…그 모습 웃으며 찍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12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월변교 아래 둔치. 검은색 상의를 입은 A군(14)과 회색 상의를 입은 B군(14)이 한동안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변엔 학생 10여 명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이 모습을 촬영하며 떠들고 웃고 있었다.

B군이 빠지자 둘을 촬영하던 C군이 마치 교대하듯 싸움에 나섰다. 당시 A군은 이미 지쳐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더는 싸울 의지가 없어 보였지만 A군을 향해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주변에 있던 학생 중 일부도 A군의 뺨을 때리는가 하면, 머리채를 쥐었다. B군 주변 인물이 가담한 집단폭행으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A군은 “살려주세요”라고 외치고서야 겨우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지난달 12일 경북 울진군 월변교 아래에서 A군과 B군이 싸우고 있는 가운데 주변에 학생 10여명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일부는 영상을 촬영하고 SNS에 이를 유포했다. 사진 A군 가족

지난달 12일 경북 울진군 월변교 아래에서 A군과 B군이 싸우고 있는 가운데 주변에 학생 10여명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일부는 영상을 촬영하고 SNS에 이를 유포했다. 사진 A군 가족

둘의 말싸움이 10여명 가담한 폭행으로  

A군 측에 따르면, 집단폭행의 시작은 울진 지역 한 중학교 학생 A군이 지난 2월 다른 중학교 학생 B군과 전화상으로 시비가 붙으면서다. A군은 자신의 친구가 B군과 전화로 싸우는 모습을 보고 거들다가 B군과의 말싸움에 휘말렸다.

전화로 한동안 말싸움을 한 A군과 B군. 이날 이후 A군은 B군으로부터 밤낮없이 걸려오는 욕설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시달려야 했다. A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며칠 연속 ‘테러’에 가까운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A군은 결국 B군과 3월 12일 오후에 만나 일종의 ‘결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B군은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A군 앞에 나타났다. A군이 음식을 먹고 있던 식당을 찾아온 B군은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 10여 명과 함께였다. 이들은 B군이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선배들로, 이 중에는 고등학교 3학년도 포함돼 있었다. 식당에서 A군의 머리채를 잡는 등 시비를 걸기 시작한 이들은 이윽고 A군을 월변교 아래로 데려갔다고 한다.

지난달 12일 경북 울진군 월변교 아래에서 A군이 지역 한 고등학생에게 머리채가 잡힌 채 뺨을 맞고 있는 모습. 사진 A군 가족

지난달 12일 경북 울진군 월변교 아래에서 A군이 지역 한 고등학생에게 머리채가 잡힌 채 뺨을 맞고 있는 모습. 사진 A군 가족

단체 대화방서 집단 폭언·협박도 이어져

집단 폭행의 악몽은 이날로 끝나지 않았다. B군과 그의 지인들은 A군을 소셜네트워크(SNS) 단체 대화방에 강제로 참여시켜 여러 차례 폭언과 협박을 했다. “너 죽이고 사망보험금은 내가 가져간다”부터 A군 부모를 지칭하며 심한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A군 어머니 D씨는 폭행 사건 다음날인 지난달 13일 경찰의 전화를 받고 이 사실을 알게 됐다. A군이 가족에게 알리지 않으면서다. D씨는 “경찰관으로부터 ‘폭행 영상을 확인해 조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후 경찰서에서 조사를 두 차례 받았고 현재는 상대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북교육청 측도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6일 울진교육지원청에서 1차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열렸고, 조만간 2차 학폭위가 진행될 예정이다.

A군, 충격으로 한 달 넘게 등교 못 해

A군은 현재 신체·정신적 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한 달 넘게 등교하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전치 3주에 해당하는 상해 진단도 받았다.

A군을 진단한 정신건강의학과 측은 “A군은 10명 이상에게 끌려가 집단으로 폭행당하는 일이 있었고 폭행 당시 가해자들이 찍은 영상이 SNS에 퍼져 2차 정서적 폭력까지 당한 상황”이라며 “사건 이후 불안, 초조, 심한 불면, 우울 등 심리적 반응들을 보여 최소 3개월 이상의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하다. 경과 관찰이 필요하다”고 진단서에 기재했다.

기존에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던 D씨도 이번 일로 상태가 악화해 보다 높은 단계의 약물을 처방받게 됐다고 한다.

D씨는 “경찰 조사 등으로 아들이 폭행당하는 영상을 수차례 볼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도 영상을 보기가 어렵다”며 “가해 학생들과 합의할 생각이 없으며 엄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 이후 민사소송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일부는 사과했지만 일부는 “쌍방폭행” 주장

이와 관련해 상대 학생 측 일부는 A군의 가족에게 찾아가 사과의 뜻을 밝히며 합의를 시도했다고 D씨는 전했다. 반면 일부는 “집단폭행이 아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수사 중인 울진경찰서는 “청소년들이 연루된 사건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은 맞다”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울진교육지원청 측은 “학폭위 개최 결과, 사건 관련 학생의 주장 중 일부 사실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하고 사실관계 보완을 거친 후 학폭위 재심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울진 지역 중·고등학교 4곳이 얽혀있는 만큼 처리에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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